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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인사 청문회장에 들어선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는 은색 테 안경을 쓰고, 갈색빛 도는 회색 양복에 짙은 갈색 줄이 사선으로 '좍좍' 쳐진 하늘색 넥타이를 맸다. 양복과 코디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선명하게 가르마를 탄 머리를 한 올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게 옆으로 넘겼다. 새까만 머리가 반짝반짝 빛났다.
전체적인 인상은 깔끔했다. 그가 베이지색 면바지에 넥타이도 매지 않고 국회에 첫 등원했던 사람이란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생활 한복을 입고 국회에 나타났던 인물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사뭇 달라보였다.
캐주얼 등원, 생활한복 등원했던 그 유시민 맞어?
일단 그는 왠지 늙수그레했다. 젊은 게 두렵다는 듯 나이들어 보이려 한 티가 역력했다. 하지만 도리어 이상해 보였다. 마치 아버지 양복을 입고 나온 막내아들 같다고 할까? 신뢰감 있고 중후해 보이려 애쓴 건 알겠는데, 어색했다.
40대인 나이가 부담스러운 건가? 정치판에선 젊음이 미안한가? 왠지 안쓰러웠다. 상당히 위축되고 긴장한 게 눈에 보였다. 한 선배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김종필은 40대에 총리가 됐는데, 왜 저러냐?"
패기있고 소신있어 보이던 그가 이제 연륜있어 보이고, 부드러워 보이고 싶은 것 같다. 오늘의 유시민은 유시민 같지 않았다. 그가 원한 건 그거겠지만.
단호하고 타협없고 자기 주장 강하고 하고픈 말은 하는 이미지, 그가 여태 쌓아온 그 이미지가 싫다고 온 몸으로 말하는 거 같았다. "부드럽게 봐주세요. 남들과 똑같이 봐주세요."
[의원의 머리는] 박정희 아니면 전두환 아니면 노태우
열심히 뭔가 바르신 듯, 한 올 흐트러짐 없이 싹싹 옆으로 발라 넘기신 머리, 솔직히 부담스럽다. 자연스럽지 않다. 너무 인위적으로 보인다.
바깥에서 말잘하고 일 잘하던 사람이 정치인만 되면 달라 보이는 것도 어쩌면 그래서다. 앞머리가 홀랑 옆으로 넘어가니까. 서민같던 사람도 모두 권위적으로 보인다. 실제 '권위적'이 된 것도 있겠지만. 머리 스타일이야말로 사람이 변하는 징표 같다.
물론 다른 모든 남성 국회의원들이 하나같이 한올이라도 이마에 쏟아질라 싹싹 발라 옆으로 넘기셨다. 그건 정치인과 아나운서 스타일이다. 현실을 보라. 지금 내 주위를 둘러보니, 이마를 훌렁 넘긴 머리 스타일 남성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아, 한 명 있다. 그는 머리를 거의 밀었다.
현실에선 전혀 하지 않는 일명 '아나운서 머리'.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아나운서인 남자주인공도 평소엔 앞머리로 이마를 덮다가 뉴스 진행만 하면 머리를 훌렁 깐다.) 권위있게 보이고픈 남성 분이 가차없이 하는 머리다.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선호하는 머리다. 저러니 얼굴이 조금만 작고 갸름하면 박정희가 되는 거다. 그리고 머리숱이 없으면 전두환이 되는 거고, 머리숱이 많으면 노태우가 된다. 정치인들의 선택은 셋 중에 하나밖에 없다.
[의원의 복장은] 단체로 맞춰입은 '의원맞춤형 검정색 원단'
오늘 질의하러 나온 남성 의원들은 유시민 내정자와 양복 색깔부터 사뭇 달랐다. 국회의원회관에는 의원맞춤형 검정색 원단이라도 있는 걸까? 의원들은 단체로 양복을 맞추는 걸까? 한결같이 푸른빛 도는 검정색이다.
깔끔해 보이고 세련돼 보이는 색깔이다. 그만치 똑 떨어져 보이고, 돈도 있어 보인다. 물론 의원들이야 워낙 돈있는 분들이니, 돈있어 보이는 게 당연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너무 똑같다. 양복 색깔부터 '일반서민 접근 금지' 푯말 같다.
넥타이를 보자. 한 분은 빨간색에 무늬가 있었고, 또 다른 분도 주홍색, 다른 분은 분홍색이었다. 컬러풀한 넥타이는 젊어보이고 싶다는 표시다. 나이드신 그 분들은 유시민 내정자와 달리 젊어보이고, 화사해 보이고 싶으셨나? 아니면 강한 이미지로 밀어붙이는 질문을 하고 싶으셨던 걸까? 아니면 시청자들 눈에 확 띄고 싶으셨나?
확 띄긴 하는데, 어느 분 넥타이는 사실 보기 괴로웠다. 컬러 감각을 키우시길 바라는 마음이 삐죽 올라왔다. 이왕 있어 보이는 거, 돈보단 패션 감각이 있어 보이는 게 낫지 않을까? "남자가 무슨 옷?" 이러신다면, 존 F. 케네디를 떠올려 보시라.
[여성의원들은] 자켓 안 티셔츠만은 강금실이라오
재밌는 것. 남성 의원들이 검정색에 가까운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 화려한 넥타이, 그리고 무테 안경을 썼다면 여성 의원들은 전혀 달랐다.
물론 안경은 역시 무테였지만, 하지만 옷은 대개 목을 덮는 티셔츠에 재킷을 입었다. 색깔도 남성 의원들이 하나같이 맞춰입은 검정색은 한 명도 없었다. 다들 회색이나 갈색 등 탁한 색깔 일색이었다. 수더분해 보였다.
하지만 안에 입은 티셔츠는 연두색, 분홍색. 화사하고 싶지만, 그래선 안 될 거 같은 마음 속 싸움이 보인다고나 할까? 제2의 강금실이 되고 싶지만, 그랬다간 강 전 장관과 달리 화려한 옷차림이 구설수에 오를까 두려운 마음?
여성의원들 머리 스타일도 짧은 커트 아니면 단발머리였다. 짧은 커트 머리는 남성 의원들처럼 모두 이마에 내려오지 않게 싹싹 넘겼다.
뜻밖에 김선미 의원만 단발머리에 자연스럽게 앞머리를 내렸다. 옷도 회색 정장 안에 목을 깔끔하게 드러내는 옷을 받쳐 입었다. 가장 세련돼 보였고, 전문성이 있어보였다. 그야말로 '프리젠테이션' 나오는 커리어 우먼 스타일로 입었다고 할까. 그만큼 전문성있어 보였다.
이미지는 말보다 빠르다
이미지란 이런 거다. 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다. 눈에 들어와, 그가 어떤 사람일 거다, 멋대로 짐작하게 만든다.
정치인이야말로 이미지로 먹고 사는 종족 아닐까? 그들은 자기가 현재 어떻게 보이는지 알고 있을까? 무심코 차려입은 옷이 어떤 걸 (솔직하게) 말해주는지 알고 있을까? 정치 9단이 아닌 이들에게?
정치 문외한이자 정치 9급도 안 되는 나 같은 인간은 그런 생각을 했다. 인사 청문회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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