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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훈련소에 입소한 훈련병들이 교관으로부터 교육내용 전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육군훈련소에 입소한 훈련병들이 교관으로부터 교육내용 전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국방홍보원 국방화보

눈이 끊임없이 내리는 2월 7일 오전 10시, 서초동 서울 지방 법원으로 향했다. 작년 10월 평화주의의 신념에 의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오정록씨의 판결을 방청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사안에 대한 판결이 끝나고 바로 오정록씨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판결은 1분도 넘지 않고 끝났다. 판사는 병역법 위반에 근거해 1년6개월 징역을 선고한 뒤 물었다.

"항소할 여지가 있는데 하실 겁니까?"
"아니오."
"재판 결과를 통지할 수 있는데 알리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어머니께…."


판사는 시종 담담하지만 정중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가 법조계에서도 인지돼 있는 것을 느꼈다. 오씨는 바로 법정 구속되어 친구와 지지자들이 있는 방청석을 되돌아볼 새도 없이 옆 방에 들어갔다.

평화네트워크에서 일하면서 알게된 오씨는 이라크파병 반대운동과 평택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면서 나와 친구가 됐다. 20대라는 귀중한 때에 1년6개월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 친구의 뒷모습을 보니 안타까움에 한숨이 나왔다. 동시에 감옥에서 나올 때에는 부디 심신이 더 건강해져 있기를 갈구하는 심정이 됐다.

"항소할 여지가 있는데 하실 겁니까?" - "아니오"

지난해 10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오정록씨의 모습. 오씨는 눈이 끊임없이 내리는 7일 결국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지난해 10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오정록씨의 모습. 오씨는 눈이 끊임없이 내리는 7일 결국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 효도 케이지
내가 2000년 한국에 처음으로 왔을 때 관심을 가진 것은 군대 문제였다. 나와 같은 세대의 젊은이가 학업이나 취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 2년 이상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군에 복무하는 것은 징병제가 없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 상상 외의 일이었다.

한국의 남성은 누구나 중·고교생 때부터 군대에 대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들었다. 수험이나 취직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것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같지만 군대까지 고민해야 하는 한국 젊은이들은 더 힘들겠다고만 느꼈다. 그 때는 그 것뿐이었다.

그 후 2003년에 다시 한국에 왔을 때, 오태양씨를 비롯해 평화주의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젊은이들이 나타난 것을 알게 됐다. 나는 그들 중 한 명에게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왜 거부를 했는지 가족의 반대는 있었는지 등 나의 소박한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해주었는데, 그 중 한마디가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지금 일본도 유사 입법 등 군사 대국화가 진행되고 있잖아요. 주변국의 군사력 확대는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에 불을 붙이고 있는 요인들 중 하나입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남자는 누구나 군대에 가야 된다는 듯이…."

한국의 징병제는 이웃나라의 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일본의 군사 대국화와 한국의 징병제 문제가 관계가 있다는 그의 지적에 당황하면서도 일본사회를 돌아볼 계기가 됐다.

한국과 일본 모두에 필요한 것

최초의 양심적병역거부자로 한국사회에 화두를 던진 오태양씨.
최초의 양심적병역거부자로 한국사회에 화두를 던진 오태양씨.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일본에서 한국의 징병제는 거의 자신과 무관하듯 이야기되고 있다. "한국 남자들은 군대에 갔다오기 때문에 일본 남자들보다 남자답고 어른스럽다"고도 흔히 이야기되고 있다. 보수 정치인은 일하지 않는 젊은이들에 대해 "한국의 징병제에서 본받아야 된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 속에는 군대가 있는 사회가 어떤 것인지, 거기서 젊은이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상상력이 전혀 없다. 60년 전만 해도 일본은 말할 것없이 징병제 사회였는데도 불구하고….

2003년, 일본 주변에서의 유사 시 의료·수송 등을 비롯한 일본의 공공기관·민간기관이 미군과 자위대에 협력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유사 법안이 국민적인 큰 반대 운동 없이 국회를 통과했다. 2003년 전쟁 협력 체제의 길을 열려고 하는 일본과 전쟁 거부자의 출현과 함께 대체 복무제가 공론화되고 있는 한국은 대조적이었다.

그 후 2006년 현재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대체 복무제는 도입되지 않고, 일본에서는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승격하는 자위대법 개정이나 헌법 9조의 개정 등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의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를 동아시아 차원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군사력 경쟁과 깊게 관련되는 하나의 인권문제로서 공유해 나가는 시각이 일본 사회나 한국 사회 모두에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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