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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짓하는 봄을 시샘하는 듯 눈이 내린 월요일. 2월 들어 첫 성취프로그램이 있는 날 눈이 내리는데 다들 오시려나, 걱정이 앞선다. 다른 날보다 20분 일찍 집을 나선다. 우려했던 것보다는 길이 덜 미끄럽다. 일단 마음을 살포시 내려놓는다. 5층 프로그램실로 내려가니 아직 아무도 없다. 다과준비를 해 놓고, 노트북과 빔을 켜 놓고 있으니, 한 분, 두 분 들어오신다.

9시 20분까지 15분이 오셨다. 참여인원, 남녀비율, 연령대가 일부러 짜 맞추기라도 한 듯 조화롭다. 5일 동안도 희망 전주곡이 울려 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한 시간 가량 프로그램이 끝난 후 59세 어르신이 친구 분도 꼭 참가했으면 좋겠다며 오라고 하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신다. 그렇게 하시라고 했더니 바로 전화를 하신다.

▲ 여덟 개의 징검다리 단기취업특강프로그램
ⓒ 이명숙
20대가 4명, 30대가 4명, 40대가 4명, 50대가 3명, 60대가 1명이다. 참가하게 된 경로도 다양하다. 실업급여를 받으러 오셨다가 담당자의 권유로 참가하게 된 구직자, 단기취업특강프로그램을 받고 난 후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구직기술을 습득하고 싶어 참가한 구직자, 고용안정센터에서 연수를 받던 중 프로그램 수료 후 취업을 해서 찾아오신 분들을 보고 도대체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해 참여를 하게 되었다는 구직자, 취업지원담당자의 권유로 참가하게 된 구직자, 청년층 직업지도프로그램을 수료한 딸의 권유로 참가하게 된 구직자, 수료를 한 친구의 추천으로 참가한 구직자 등 16명의 참여자들이 취업을 향한 항해를 시작한다.

참가자 16명 중 현재 실업급여를 받고 계신 분들이 9명이나 된다. 실업급여수급자들에 대한 제도가 달라진 후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구직자들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예전에는 수급자개인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2주 1회로 획일화되었던 실업인정 주기를 올해부터는 특성에 따라 1주~4주 범위 내에서 탄력적으로 지정하도록 변경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수급자의 개별적 특성(취업의욕, 취업기술, 취업능력 등)과 구인 상황 등을 고려하여 구직자에 대한 심층 상담을 통해 특성에 적합한 재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개인별 재취업활동계획(IAP: Individual Action Plan)을 수립한 것이다.

수급자들이 재취업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 또한 다양해졌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구직기술이 필요한 분들에게는 성취프로그램을, 자신감 향상이나 대인관계기술이 필요한 분들에게는 취업희망프로그램을, 진로·직업선택 및 구직기술 향상이 필요한 청년층에게는 CAP을 비롯한 집단상담프로그램과 직업심리검사, 취업알선, 고용정보제공, 직업훈련 상담, 사회봉사활동, 동행면접 등 고용안정센터를 통해 자신의 특성에 맞는 맞춤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 단기취업특강에 참여한 구직자들
ⓒ 이명숙
9명 중에는 단기취업특강프로그램 중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면접에 대한 강의를 받고 난 후, 좀 더 심화된 구직기술을 익히고 싶어 오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고용안정센터에서 받을 수 있는 정보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올 때는 솔직히 짜증이 나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단기취업특강프로그램, 취업희망프로그램에다 성취프로그램까지,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들과 접할 수 있다니, 어찌되었든 실직을 한 것은 힘든 일이지만,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어 한편으로는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국가기관에서 이런 일도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가 참, 많이 변했어요."

50대 어르신이 내 평생에 국가에서 이런 서비스를 받기는 처음이라며, 자녀들에게도 꼭 권해야겠다고 하자, 다른 참가자들도 나도 처음이라며 맞장구를 친다.

▲ 취업희망프로그램 참가 구직자들
ⓒ 이명숙
그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구직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국가기관에서 이렇게 수준 높은 서비스를 한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는 거였다. 말로는 서비스한다고 해 놓고, 막상 가서 보면 허울뿐인 경우가 많아서, 고용안정센터도 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각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고 보니,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는 거였다.

"내 평생 살면서 국기기관에서 밥 얻어먹기는 군대생활 빼놓고 처음이여. 세상이 좋아지긴 좋아졌어.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별 것을 다하고 살 것 같은디."

좋은 교육에 그것도 모자라 밥까지 주니 이보다 더 금상첨화가 어디 있겠냐는 어르신은 젊은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라고 말씀하신다.

같은 또래가 모인 것보다는 다양한 연령층이 있을 때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또래만 있을 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을 프로그램에 참가하다 보면 이십대는 사오십 대의 고민을 이해하게 되고 사오십 대는 이십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비록 연령과 성은 다르지만 서로의 아픔을 주고받으며 어느새 동지의식이 생기는 거다.

▲ 고용동향과 취업관련 뉴스
ⓒ 이명숙
진로 설정에 대해 도움을 받고 싶다는 20대 구직자에게 삶의 경험이 풍부한 사오십 대의 조언은 살아 있는 약이 된다. 주택관리소장을 하다 권고사직을 당한 후, 부동산 컨설턴트를 하고 싶다는 40대 기혼 여성 구직자에게는 부동산사업을 했던 50대 어르신의 경험이 도움이 된다.

이력서 제출을 했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다며 다른 것은 놔두고 이력서 쓰는 법 하나라도 정확하게 배웠으면 좋겠다는 30대 기혼 여성 구직자는 잘 쓴 이력서와 잘 못 쓴 이력서 사례를 보면서, 이력서 쓰는 법을 하나씩 알아간다.

27년간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다 명예퇴직을 한 후, 다시 시작을 하고 싶다는 50대 가장, 사업을 하다 실패를 하고 생산현장에서 2년 7개월 근무를 하다 권고사직을 당한 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59세 가장은 서로의 처지를 다독거리며 재기의 의지를 다진다.

딸의 권유로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올해 60세 어머니는 다른 참가자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어머니는 대학 일어과 졸업반이기도 하다. 21년간 농촌진흥원에서 생활지도사로 근무를 한 경력과 초등학교 급식 조리사 경력이 있는 어머니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은 다른 참가자들의 귀감이 된다.

21세에 직장생활을 시작해 36세에 결혼을 해서 37세에 첫 딸을 낳고 42세에 아들을 낳은 후 10년간 자녀교육에 전념했다는 어머니는 52세에 초등학교조리사시험에 도전해 성공을 했다.

학교에서 6년간 근무를 하다 58세에 정년퇴직을 한 어머니의 꿈은 관광가이드다. 관광가이드를 희망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퇴직 후 일본여행을 갔는데, 관광가이드를 하신 분들이 한결같이 우리나라와는 달리 나이 드신 분들이었다. 그것을 보고,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고령자들이 관광가이드를 할 날이 오겠구나라는 생각에 준비를 한 것이다.

▲ 취업희망카드
ⓒ 이명숙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고. 이십대는 이십대대로, 삼십대는 삼십대대로, 사십대는 사십대대로, 오십대는 오십대대로, 육십 대는 육십대대로 나이가 어찌되었든 지금 이 순간 시작을 하면 그것이 가장 빠른 것이다. 이십대 참가자는 육십대 어머니를 보면서, 시작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육십대 어머니는 이십대를 보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한다.

성취프로그램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간다.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데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 단지, 늦었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의 벽이 있을 뿐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오롯이 간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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