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청앞 광장에서 묵상에 잠긴 점성가
시청앞 광장에서 묵상에 잠긴 점성가 ⓒ 코비스
날파리가 윙윙거리며 끈적끈적한 살갗에 붙어 성가셔도 윤회를 벗어 던지고자 해탈을 향해 가는 힌두교도의 신심(信心)은 지극해 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에 띈 것은 거지들의 구걸 행각이었다. 길거리 인파의 반은 걸인으로 보였는데 그들의 행위는 오히려 거침없이 당당했다. 일상에 배인 몸짓으로 바싹 다가서며 치근대는 그들이 그다지 밉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촌 한 가족인 것을 어쩌랴.

때마침 흰색 휘장을 두른 마차 한 대가 정장을 곱게 차려입은 중년 커플을 태우고 럭셔리한 기품을 뽐내며 도도하게 납시는데 지나던 사람들이 정중히 길을 비켜선다. 잔존한 카스트제도가 만든 크샤트리아(귀족층 계급)일가의 행차던가. 어쩌면 이렇듯 암담한 상황을 헤치고 어떻게 저렇게 태연히 지날 수 있단 말인가. 빈부의 차이가 극명하게 교차되는 장면이었다. 빈부가 철저히 공존하는 세상.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사람들에 치여 이리 저리 밀리다시피 도심을 배회하다 겨우 승합버스를 타고 부두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거리의 풍경이 차창을 통해 투명하게 들어왔다. 코를 찌르는 도시 특유의 악취가 바람을 타고 함께 쏟아져 들어와 온전히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날이 무덥기도 하였지만 웃통을 벗는 것은 예사요, 삶에 찌든 육신은 곳곳에 널빤지처럼 누워서 신음하고 있었다. 생존보다는 연명의 나날을 보내는 그들의 고뇌 속에 내일은 없었으며 미래의 등불은 꺼져 다만 캄캄한 암흑의 터널만 보였다.

길거리에서 아이를 돌보는 걸인의 모습
길거리에서 아이를 돌보는 걸인의 모습 ⓒ 코비스
부두에 내려서자 아이들이 몰려왔다. 아이들은 뜻 모를 노래를 불렀다. 어디선가 들어본 가락, 언젠가 불러본 멜로디라는 느낌이 들었다. 만트라(神歌)라는 힌두 음악이었던 것 같다. 언제 어디였을까. 아하, 그러고 보니 어쩌면 나는 전생에 힌두교도였는지 모른다. 지난 생애의 한 부분을 이 고장 어딘가에서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황토빛 실루엣 속에 감춰진 과거가 뿌연 빛으로 떠올랐다. 정겨운 가락 속에는 그런데 경쾌한 슬픔이라고 표현해야 할 묘한 애상(哀傷)이 배어 있었다. 인도 태생 음악가인 야니(Yanni)의 음악에서 흐르던 바로 그 엄숙한 신비감이 호소력을 뿜어내며 뇌리에 서서히 밀려 왔다.

바람이 불자 흙먼지가 일건만 동네 꼬마 녀석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터 한편에서 팬티만 걸친 채 맨발로 공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맑은 눈망울을 덮치던 모래 바람 속에서 그들은 마냥 웃어대며 넘어져 뒹굴고 있었다. 코리안 네이비(Navy)를 알아본 듯 재빨리 선착순으로 달려와 “헬로-”를 외치며 손을 벌린다. 동전 몇 닢을 받아들고 인사하며 환하게 웃던, 가난 속에 꽃피던 건강한 동심이여.

그것이 그 당시 내가 본 인도의 모습이었다. 식민지배 영국의 옷을 벗은 그들의 궁핍한 실상이었다. 그러나 인도는 정녕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빈곤 속에 풍요로움이 있었다. 가난을 흔쾌히 수용하며 무소유의 상념을 통해 그들은 여유로운 평상심을 즐기고 있었다. 담담히 즐기던 구도의 자태 속에 그들의 저력은 꿈틀대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이 인도를 성장시킨 원동력이었을 게다.

21세기의 인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이미 변화의 단계를 넘어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연3%에 불과하던 성장률이 최근에는 8%로 뛰어 올랐다. 2030년도에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골드만삭스사가 이미 내놓은 바 있다.

인도 경제는 오래전부터 충분한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던 터였다. 11억 인구와 막대한 부존자원을 자산으로 기초과학과 IT 산업을 이끌었다. 마하트마 간디의 민족주의는 비폭력 불복종이라는 구호로 다양한 인도제국을 결속했고 마침내 1947년 독립을 달성했음이다. 인도는 중국과 함께 세계 인구의 반을 넘는 노동력을 과시하며 경제의 중원에 자리 잡았다. 그들은 고대 문명 때부터 중국과 더불어 세계를 이끄는 견인차였다. 다만 식민지 시절이 오점으로 남았을 뿐, 이제 옛날 영화의 시대로 확연하게 회귀하고 있음을 본다.

강물 위에서 기도를 올리는 자세를 취하며 떠가는 주술사
강물 위에서 기도를 올리는 자세를 취하며 떠가는 주술사 ⓒ 코비스
그래도 미래의 부강한 인도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 아직은 생경한 일이요, 초라했던 과거의 형상이 강렬히 뇌리에 남아 있어서인지 오히려 옛 것이 더욱 인도답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도심에서 만났던 주술사와 걸인의 후예들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켜 나가고 있으리라. 흙먼지 속에서 뛰놀던 동심들은 어엿한 성년이 되어 사회인으로 열심히 살아가겠지만 지나온 고난과 역경 속에 핀 결실의 꽃은 그들 놀이터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 우리가 전생을 통해 어차피 동향인으로 만났다면 우리의 우정도 그대로 지속되리라.

이제 그로부터 강산이 수차례 바뀐 지금, 타국 땅에 남아 있어 아직도 맘 붙일 터를 정하지 못하고 허공을 부초처럼 떠다니는 하릴없는 생의 한 가운데에 서서 나 자신의 오늘을 차분히 둘러본다. 수도의 길을 꿈꾸었던 전생이 있었다면 이제 무거운 업보의 봇짐을 짊어지고 긴 여행을 떠나야겠다.

그 여정의 끝에 다다르는 날, 이승에서의 모든 애증을 털고 첩첩산중에 소리 없이 묻혀 사는 이름 없는 힌두 스님으로 홀연히 환생되기를 나는 간절히 기도할 따름이다. 끝도 없는 망망대해를 바람 따라 떠다니는 나뭇잎처럼 부질없이 왔다 가는 내 인생의 덧없음이여. 깊은 산중, 헐벗은 겨울 가지에 사르르- 낙엽 지는 소리가 들린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준하 기자는 미조리 주립대애서 신문방송학을 수학하고 뉴욕의 <미주 매일 신문>과 하와이의 <한국일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시사 주간신문의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로스엔젤레스의 부동산 분양 개발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라스베가스의 부활을 꿈 꾸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