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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듯 네 개의 검날이 피워내는 검화(劍花)와 검영(劍影) 속을 마치 물고기가 물 속을 유영하듯 부드럽게 피해 다닐 수 있을까? 더구나 간혹 검날을 타고 오르며 상대의 손목을 가격하는 담천의의 모습은 천신이 하강해 천무(天舞)를 추고 있는 것 같았다.
상엽 삼형제의 합공은 놀라운 것이었다. 더구나 담천의의 예상과는 달리 금색면구를 쓴 사내 역시 적절하게 빈 자리를 메워주고 있어 그들이 펼치는 합공은 완벽해 보였다. 허나 수십 초가 흘렀음에도 담천의의 손끝 하나 건들지 못한 네 사내는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은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병기도 가지고 있지 않은 담천의에게 희롱당하는 느낌이었다.
"으아----!"
갑자기 상엽이 짐승과 같은 고함을 지르며 더욱 난폭하게 공격했다. 자신의 분노에 스스로 참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에 따라 상엽 뿐 아니라 나머지 인물들의 검초도 더욱 위맹해지고 날카로워졌다. 반드시 담천의를 베겠다는 살기가 넘쳐흘렀다.
빠지지직---- 파아---!
가진 공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는지 검 끝에서 검광이 일렁거리며 불꽃을 피워냈다. 흐릿한 어둠 속에서 검광이 난무했다. 어느 한 순간 네 개의 검날이 전후좌우 네 방향에서 일제히 담천의를 찔러왔고 피할 곳은 오직 땅으로 파고들거나 위로 솟구치는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담천의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것은 네 사내가 바라던 바였다. 그들은 담천의의 허리 정도에서 맞닿아 있던 네 자루의 검을 일제히 위로 치켜 올렸다. 검은 도와 달리 양면에 날을 가지고 있다. 팔위로 치켜 올리는 것은 내리치는 것보다 위력이 덜하지만 상엽과 같은 고수들에게는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
허나 결과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들의 움직임을 이미 예측이라도 한 듯 담천의는 몸을 허공에 띠워 올림과 동시에 교차되어 있는 네 개의 검날 위에 사뿐히 내려섰고, 그들이 검을 치켜 올리는 순간 그 탄력으로 더욱 높이 치솟아 올랐던 것이다.
이장 높이의 동굴 천정에는 쇠사슬이 매달려 있었다. 늘어뜨린다면 아마 사람 머리 정도까지 내려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허공에 몸을 띄우는 이전에 쇠사슬이 묶여져 있음을 눈여겨보았던 담천의는 지체 없이 쇠사슬을 잡고 몸을 날려 그들의 포위망을 벗어나려 했다.
"헛…!"
헌데 이게 웬일인가? 쇠사슬을 잡자마자 쇠사슬이 그대로 밑으로 늘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담천의는 빠르게 몸을 거꾸로 뒤집었다. 그 순간 놀랄만한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촤르르륵---- 파다닥----!
주위에서 천들이 요란하게 파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갑자기 지하광장의 주위에 갖가지 색깔의 깃발과 천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지하광장의 벽 쪽으로 둥글게 원을 형성하며 천의 장막을 이룬 것 같았다. 동시에 담천의가 잡고 있다가 흘러내린 쇠사슬에도 커다란 천이 천정 위로 펼쳐졌다. 놀라운 것은 그 천에 한 자의 글씨가 쓰여 있었다는 점이었다.
<천(天)>
어디 그뿐이랴! 주위에 흘러내린 형형색색의 깃발과 늘어진 천에도 용사비등한 서체로 글씨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음덕양보 陰德陽報>
<불비불명 不蜚不鳴>
<대의멸친 大義滅親>
<사생취의 捨生取義>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선행을 베풀면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라던가 '대의를 위해 때를 기다리고, 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는 등의 의미였는데 그 외에도 만민을 구제한다는 등의 거창한 내용의 글귀가 무수히 걸려있었다.
아마 천정에 매달려 있었던 쇠사슬이 일종의 기관장치였던 모양이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담천의가 잡아당긴 것이고 그로 인해 이 모든 장관이 펼쳐졌던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상엽을 비롯한 세 사내들도 어찌해 볼 틈이 없었고, 오히려 그들의 얼굴에는 당혹스런 표정이 역력하게 떠올라 있었다. 지하광장의 중앙 허공에 떠있는 천이란 글자와 지하광장을 감싸듯 둥그런 원을 그리며 내려져 있는 천들.....
더구나 물이 흐르는 쪽에 내려진 천은 다른 천과는 달리 붉은 천에 금사(金絲)를 수놓았는데, 모두 다섯 개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화수목금토(火水木金土)의 오행(五行)을 의미하는 글자가 하나씩 써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이 지하광장이 어떠한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이곳은 어떠한 단체나 문파가 사용하는 장소였다. 그들 문파의 제자들이나 조직에 속한 인물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아마 이곳에서 전체적인 회합도 하고 의식도 치렀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기습으로 목숨을 잃은 금색면구를 쓴 두 사내가 말하던 오행기(五行旗)란 것도 그 조직의 주력이 되어 저 다섯 개의 늘어진 천 앞에 도열했으리라!
하지만 그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더욱 광폭해진 상엽과 세 사내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왔다. 담천의는 잉어가 폭포수를 거슬러 오르듯 검의 폭포 사이를 파고 들어갔다. 오히려 주위에 무수히 흘러내려져 있는 깃발과 천들이 그에게는 매우 좋은 은신도구가 되고 있었다. 쫓고 쫓기는 그들은 마치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았다.
"……!"
허나 정작 경악스러움에 몸이 굳어있는 인물은 백결이었다. 그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는데 담천의가 위기에 처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마치 천의 장막처럼 쳐져있는 모든 깃발과 천들을 훑고는 천정 가운데에 걸려있는 천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랬군… 그랬어… 세상에…."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너무나 엄청난 사실에 그는 둔기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정신이 멍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조각들이 한꺼번에 모여들어 하나의 형체를 갖추고 있었다.
"연동 아래에… 천동(天洞)이 존재하고 있었다니…."
이제야 중원에 흐르고 있었던 그 기류가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았다. 이제야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이 왜 이런 방향으로 흘러왔는지도 알 것 같았다. 지금 담천의를 공격하고 있는 상엽의 검초도 왜 중원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한 것인지를 이해했다.
왜 자신의 사형제들 간에 다른 마음을 먹게 되었는지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백련교에 위기가 닥친 이유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머리 속에서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의문들이 한순간에 풀려나갔다.
"헛…!"
그러다 문득 그는 시선을 돌리다가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목격하고는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담천의에게 결정적인 위기가 닥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일어난 결과는 백결이 비명소리를 지를 만큼 뜻밖의 것이었다.
상엽의 검이 담천의의 우측 가슴을 베고 있었다. 그것은 꼼짝없이 담천의의 가슴을 헤집는 듯 했는데 담천의가 부드럽게 몸을 살짝 비틀자 검날은 담천의의 가슴을 헤집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가슴을 타고 미끄러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담천의의 우수가 검날을 잡아채며 가볍게 튕기듯 밀었다.
그러자 상엽의 검은 담천의를 찌르던 속도의 배가 되었고, 한순간 중심을 잃은 상엽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천장에서 늘어뜨려진 붉은색 천을 빠르게 찌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공교롭게도 합공을 하던 금색면구의 사내는 담천의 등 뒤로 파고드는 순간이었고, 상엽의 검은 어찌해 볼 사이도 없이 붉은 천을 지나 공격해 오던 금색면구를 쓴 사내의 가슴에 꽂히고 있었다. 동시에 담천의와 몸이 맞닿을 정도로 넘어지듯 다가들었던 상엽의 낭심에 담천의의 무릎이 작렬하고 있었다.
퍽---!
그것은 담천의가 상엽의 낭심을 걷어찬 것이 아니라 담천의의 무릎에 상엽 스스로가 낭심을 갖다댄 것처럼 보였다. 비명과 함께 그의 등이 새우처럼 구부러지자 담천의의 오른 팔꿈치가 상엽의 명문혈을 가격했다. 무릎으로 낭심을 차고 팔꿈치로 명문혈을 가격한 담천의의 동작은 너무 자연스러워 하나의 동작처럼 보였다.
"꺽--! 끄르르---"
명문혈은 사혈이었고, 상엽은 피를 토하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의 입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나고 있었지만 숨을 쉬지 못하는 듯했다. 나동그라진 그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곧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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