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는 것일 텐데 나루세도 그렇다. 낙천주의자 기질이 다분한 그는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탐정사무소에 발을 들여놓기도 했다. 멋진 탐정이 되어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해보겠다는 심보, 오직 그것 하나 갖고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었던 것인데 이것만 봐도 그의 녹록치 않은 경험을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런 나루세에게 후배가 부탁을 해온다. 부탁이란 소위 ‘탐정’의 모습을 회복해달라는 것이다. 후배가 마음에 두는 여자의 가족 중 한 명이 건강 물품을 파는 업체에 위장 살인을 당한 것 같다며 긴급히 나루세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즐겨야 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은 나루세지만 흔쾌히 후배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사건에 뛰어들 준비를 한다.
한편 사건을 부탁받는 비슷한 시기에 나루세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된다. 지하철에서 자살하려는 여자를 구해주게 되는 것. 여자가 철로에 뛰어들자 본능적으로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데 여자는 꿈쩍도 않고 죽으려고 한다. 나루세는 억지로 여자를 구한 뒤 ‘그래도 살아보라’고 말하고 헤어지는데 이 일을 계기로 여자를 계속 만나게 되고 점차 빠져들게 된다. ‘알고 보니’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랑하고픈 여자였던 것이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이색적이라면 이색적인 두 개의 사건으로 시작하는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추리소설인 만큼 사건들이 엮어질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동 떨어진 것 같은 사건들은 기찻길의 평행선처럼 달리다가 종착역에 이르러서야 만나게 되는데 그 만남은 효과적인 반전을 이루어내고 있다. 에로스인줄 알고 붙잡았는데 알고 보니 타나토스임을 알게 된 것과 같은 반전이라고 할까. ‘사랑’과 ‘죽음’으로 허를 찌르는 만큼 사건들이 엮어질 때 공개되는 사실들은 반전으로 유명한 추리소설에 못지않다.
하지만 사건들이 엮음으로써 생기는 반전은 진짜 반전에 비한다면 ‘새발에 피’다. 무슨 뜻일까? 그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추리소설의 상식처럼 여겨지는 사실들을 떠올려보자. 먼저 캐릭터.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주인공과 겨루는 악의 세력들은 ‘젊고 잘 생겼으며 똑똑하고 패기만만’하다. 최근에는 변덕을 잘 부리고 투정도 곧잘 내며 뭐든지 신경질 내는 독특한 성격의 주인공들도 나름대로 부각되고 있지만 이들도 상식선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진짜 반전’을 통해 이것을 단번에 깨버렸다. 시종일관 상식선으로 주인공을 판단하게 되지만 ‘알고 보면’ 그 상식이라는 것이 올가미라는 걸 알게 된다. 상식이 진짜 반전을 만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반전의 방향은 그동안 타자화 했던 존재에 스며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영화 <디 아더스>나 <식스 센스>를 떠올려보자. 작품들은 인간이라 믿게 만들었지만 ‘알고 보니’ 그 정체가 타자화의 대명사인 유령이었던 것처럼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도 ‘알고 보니’ 그 정체는, 상식처럼 생각하던 주인공의 모습에서 비껴난 이들이다. 이 작품 또한 타자화의 주인공화를 꿈꾼 셈인데 우타노 쇼고는 그것을 대단히 성공적으로 풀어냈다. 그러니 사건들이 엮일 때 맛볼 수 있는 그 대단한 반전을 하찮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추리소설의 상식을 떠올려보면 그것은 완벽한 마무리를 필수조건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래서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기로 했습니다’라는 결말은 추리소설에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런데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그러한 결말을 끌어왔다. 덕분에 사건의 결말이 정확히 어떠할지, 등장인물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됐는지를 알 도리가 없다.
이것은 사회 문제와 결부된 주인공들의 독특한 특징 때문에 비롯된 것인데 흥미롭게도 그것이 작품의 아름다운 여운을 만드는 기폭제가 된다. 낯설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비롯된 ‘선입견’을 배제하고 개인 나름대로 작품의 다음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미완성 로맨스 소설이라고 할까? 결말만큼은 추리소설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따뜻한 사랑이야기로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테다.
반전은 얼마만큼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책 한 권을,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까지 모조리 뒤집을 수 있다면 확실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그것이 그렇다. 더욱이 사회문제 의식을 건드리는 효과까지 있는 만큼, 삶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마법까지 있는 만큼 가히 그 맛이 일품이라 할 만하다. 반전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상상불허’라는 수식어가 꼭 들어맞는 진짜배기 추리소설을 맛볼 기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