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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수선공 한일수씨는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미싱에서 삶의 진지함을 배우고 있다.
구두수선공 한일수씨는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미싱에서 삶의 진지함을 배우고 있다. ⓒ 정종인
스승의 손때가 묻은 미싱을 돌리며 살아가는 한일수씨(40). 전북 정읍시 중심가인 구 태양백화점 뒤편에서 구두수선공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단골고객들을 맞고 있다. 그는 20여 년 전 자신에게 구두수선을 가르쳐 준 스승의 자리에 둥지를 틀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전북 정읍지역에서 구두수선공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4,5명 정도 된다. 정읍극장 사거리, 연지아파트 입구 등지에 가면 구두를 고칠 수 있다. 요즘 제화 기술이 뛰어나 구두수선공들의 수입이 예전 같지 않다. 수선보다는 구두를 닦아 버는 수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구 태양백화점 후문 쪽 구두수선소를 찾았을 때 칼바람 때문인지 새시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다니던 그 곳은, 인자함이 묻어나는 70대 가까운 노인 한 분이 돋보기 너머로 어려운 세상살이에 지쳐 너절해진 구두를 어루만지며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던 곳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구두수선으로 평생을 보낸 분은 최차열옹이었다. 지난 7년 전 70세를 일기로 최옹이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그의 제자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를 머뭇거리던 한씨는 스승에 대한 아련한 추억에 대해 관심을 보이자 슬그머니 말문을 열었다.

약관 20세에 지인의 소개로 스승을 만나

작고한 스승으로 부터 물려받은 구두수선미싱.
작고한 스승으로 부터 물려받은 구두수선미싱. ⓒ 정종인
지금도 제자에 의해 힘있게 돌아가는 구두수선 미싱을 어루만지며 한 씨는 잠시 회상에 젖어 들었다.

한씨가 스승 최 옹을 만난 것은 약관 20세였다. 학교를 마치고 뚜렷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던 한씨는 지인의 소개로 스승인 최옹을 만나 구두수선을 배웠다.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인 최옹은 내제자로 삼은 한씨에게 미싱 닦는 법과 실 꿰는 법부터 자상하게 가르치며 기술을 전수했다.

"마음이 편해야 발이 편하고 발이 편해야 마음이 편하다."

구두 수선을 배우며 당시 유행했던 양말 선전 카피를 늘 입에 갖고 살던 스승의 당부를 잊지 않은 한씨도 기대에 부응했다. 2년 정도 기술을 연마한 한씨는 새로운 인생 항해를 위해 영광터미널을 무대(?)로 창업했다. 당신만 해도 구두수선을 하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괜찮은 벌이가 됐다.

이후 한씨는 영광터미널과 고창 등지에서 구두를 수선하다 지난 90년대 후반 정읍동초등학교 부근 도로에 가게를 차리고 영업을 하다 스승 최옹의 사망소식을 접했다.

외롭게 살아가던 스승 최옹이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가까이 했던 술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결국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는 것. 한씨는 말년에 육체가 쇠해진 스승 곁에서 잠깐이나마 일을 도와드린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됐다고 말했다. 그 당시 스승 최옹은 자신의 사후, 분신이나 다름없었던 중고 미싱을 제자에게 물려준다는 당부를 남겼다.

결혼해 번듯한 업소 만들고 싶어

노총각인 한씨는 올해는 결혼하고 싶다는 바람을 토로했다.
노총각인 한씨는 올해는 결혼하고 싶다는 바람을 토로했다. ⓒ 정종인
"시집 오려는 여자가 없네요."

한씨는 미혼이다. 40대 중반의 나이지만 천생 배필을 만나지 못해 솔직히 말하면 외로움이 사무친다. 타고난 효자인 한씨는 할머니(95·김영례)에게 손자를 빨리 안겨드리고 싶지만 "여건이 호락호락하지 않는다"며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매장에서 만난 한씨의 후배인 한인철씨(40)는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능력 있는 선배인데 여자들이 사람을 제대로 볼 줄 모른다"며 거들었다.

"저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승님의 손때 묻은 중고 미싱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도 큰 보람입니다."

'착하게 살자'고 늘 다짐하며 살아가는 구두수선공 한씨는 스승의 은혜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괜찮은 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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