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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선전물 내용, 프랑스 배우가 왜 취화선에 주목하는지 잘 나와 있다. 한국의 오랜 문화가 외국인들에게는 신선할 수밖에 없다.
ⓒ 이창기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를 외치는 영화인들이 문화다양성이 말살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어쩌면 스크린쿼터 싸움의 본질중 하나가 바로 이 문화다양성 문제일지 모른다.

외국에서 알아주는 우리나라 록 음악가는 별로 없다. 우리가 아무리 록을 잘 해도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신들이 만든 것을 따라하는 것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름 없는 우리 풍물패의 공연엔 외국인들이 열광한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문화지만 외국인에겐 처음 보는 신기한 소리기 때문이다.

현대음악을 주도하는 서양음악계에선 작곡가 윤이상을 주저 없이 세계적인 3대 현대음악 작곡가에 속한다고 평가한다. 자신들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동양적인 미의식을 음악에 담아냄으로서 독특한 울림을 만들어냈다는 게 이유다. 윤이상이 서양음악만 쫒아갔다면 서양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세계적인 예술은 모두 어느 한 민족의 문화를 바탕에 두고 있다. 셰익스피어 문학은 영국의 고전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고, 클래식 음악은 독일 고전 음악에서 나온 것이며 오페라는 이탈리아 가극에서 나온 것이다. 황석영의 '장길산'도 설화가 없었다면 흥미가 뚝 떨어졌을 것이다.

세계적인 음식도 마찬가지다. 카레는 인도에서 나왔다. 우리가 즐겨 먹는 자장면도 결국 중국의 원조 자장면에서 나왔다. 언젠가 중국에 가서 원조 자장면을 먹어 보았는데 짜고 기름기가 너무 많아 느끼했다. 그러나 그런 자장면도 다듬으면 우리의 자장면처럼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김치, 된장, 간장, 고추장, 홍어, 젓갈, 식혜와 같은 음식들도 얼마든지 세계적인 음식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왜 영화가 중요한가

영화는 종합예술로서 그 민족의 고유한 문화를 종합적으로 반영해 낼 수 있는 훌륭한 장르다. '서편제'라는 영화는 전통 우리 민요가 얼마나 사람들의 정서에 잘 맞는 음악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돌담길을 돌아 나오는 소리꾼 아버지와 딸이 '진도아리랑'에 맞춰 신명난 춤을 추는 장면에서 신세대 젊은이들도 우리 민족의 멋과 낭만에 흠뻑 취했었다. 그 영화의 성공 이후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에서 부쩍 늘었다.

드라마 <대장금>이 성공한 뒤에는 궁중음식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 한국 음식, 한국 옷에 대한 열풍이 생겨났다.

우리 민족 문화의 정서를 영화에 오롯이 담아내는 일은 서양 사람들은 죽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감독이 과연 서편제의 정서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결국 멋스런 우리 민족 문화를 영화화시켜 내는 일은 결국 된장국을 먹고 자란 우리 영화인들이 할 수밖에 없다.

▲ 쌀과 스크린쿼터 사수 결의 대회
ⓒ 자주민보 박준영기자
영화인들의 자성도 필요하다

여기서 영화인들의 반성도 필요하다.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정서를 바탕으로 세계를 선도하려고 하지 않고 외국 문화만 따라 다니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영화화시킨답시고 서양 영화를 따라하면서 알아먹지도 못할 화면만 보여준 경우도 없지 않다. 사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표현한 영화를 꼽자면 '서편제', '취화선' 등 몇몇 작품 외엔 없다. 차라리 '꽃파는 처녀' 등 북한에 민족적 색채가 강한 영화들이 많은 실정이다.

문화의 다양성을 근거로 스크린쿼터 사수를 부끄럽지 않게 외치려면 우리 영화인들이 민족문화를 꽃피우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표현한다고 사극만 다루라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다루면서도 우리 민족의 기질, 우리 민족의 자연친화적인 서정, 우리 민족의 풍경, 우리 민족의 가치 있는 사고방식, 우리 민족의 애국 애민주의 등을 다루는 것도 민족문화의 창조라고 생각된다.

분명한 것은 인류역사 발전에 의미를 던지는 영화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그저 다양성을 외치고 그저 스크린쿼터축소 반대를 외친다면 밥그릇 싸움이란 오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스크린쿼터는 영화뿐만 민족문화 전반의 파수꾼

스크린쿼터는 바로 우리 영화인들이 마음 놓고 우리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안전망이다. 미국이 아무리 돈벌이에 피눈(혈안)이 되었다고 해도, 세계 문화 발전의 원천이자 자양분인 각국의 민족문화를 지키기 위해 쳐놓은 스크린쿼터라는 안전망을 찢어버리는 행위는 결국 자신들의 파멸을 초래하는 일이다.

보자, 한 실험에서 김치가 조류독감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성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사스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국의 김치가 혹시 찾아올지 모를 무서운 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제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민족음악, 또 그리고 우리의 영화에 정신적으로 병들어 삭막해져가는 미국인들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

동식물도 종 다양성이 상실되면 진화가 멈추거나 결국 멸종하게 된다. 같은 종에서도 근친교미는 열성인자를 유전시켜 결국 멸종으로 이끈다. 이름 없는 야생화도 근친교배를 막고자 몸부림을 친다.

쌀을 우리가 지키는 이유는 그것이 무기화될 경우 우리는 노예가 되거나 굶어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 다양성을 지키려는 것은 우리들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의 정서적 풍요로움과 건강한 생명을 위해서다.

쌀과 영화를 모두 강탈하겠다는 미국은 지금 정신 나간 제국주의임을 자인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자주민보에 함께 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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