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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검찰의 각 수사분야 중 이른바 '통'으로 꼽히는 검사를 발굴하는 '기획-한국의 검사들'을 연재합니다. 공안검사에 이어 친일파 후손들의 국유지반환청구소송에서 국가승소판결을 받아낸 공판송무부 검사를 두번째로 소개합니다. 앞으로 게이트 사건, 대기업 비리, 금융, 마약, 조폭 등을 전담했던 검사들의 인터뷰도 이어집니다. <편집자주>
25일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 사무실에서 만난 송강 검사.
25일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 사무실에서 만난 송강 검사. ⓒ 오마이뉴스 안홍기

2005년 11월 15일은 송강 검사(32·현 충주지청)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대한제국 법무대신을 지냈고 을사오적 이근택의 친형인 이근호의 후손이 국가를 상대로 낸 국유지 반환청구소송에서 국가승소 판결(소각하)를 이끌어 낸 것. 이전까지 법원은 "친일파 후손이라고 해서 소유권을 부당하게 제약해서는 안된다"는 판결을 내놓고 있었다.

송 검사가 이 사건을 처음 맡은 것은 수원지검 공판송무부에 배속된 지 2개월 뒤인 2004년 10월. 공판송무부는 6개월 순환보직으로 검사들에게는 이른바 '그냥 거쳐가는' 부서로 통했다. 그러나 송 검사는 친일파 후손이 낸 소송을 손에 받아들고 '그냥 넘기지' 못했다. 국가가 계속 지자 "속이 상했다"는 것이다.

"'헌법정신, 이거 되겠다'는 느낌이 딱 오더라"

송 검사는 지난 25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그 땐 '친일파 재산 문제가 입법적으로 해결되기 전까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국가패소 판결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담당 법무관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에 돌입한 송 검사는 친일파 이재극 후손이 2001년 제기한 소송에서 1심 재판부가 '헌법정신'을 언급했던 사례를 떠올렸다.

송 검사는 "헌법 정신이라는 얘기가 나오니까 '이거 되겠다'는 느낌이 딱 오더라"며 "현행 헌법은 '친일파 재산의 몰수와 국유화'를 건국강령으로 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친일파 후손의 재산권 청구소송은 헌법이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친일파 재산환수법이 통과됐지만 당시에도 친일파 후손의 재산을 환수하겠다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었는데 국가가 수십년 간 평온하게 관리하고 있던 땅을 돌려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며 "매국의 대가로 땅을 사고 부를 축적한 것인데, 그런 재산권을 어떻게 인정해 주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공판송무부 임기가 끝날 즈음인 2005년 2월 검찰 내부 통신망에 '친일파 후손 국유지반환 청구 법리에 대한 검토 문건'을 올려 친일파 소송이 진행 중인 다른 지검·청의 검사들에게도 국민의 법 감정에 충실할 것을 독려했다.

현재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은 모두 중단됐다. 법무부와 검찰은 지난 26일 이근호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 확인소송 등 8건 가운데 수원지법 등에 계류 중인 1심과 항소심 5건에 대해 소송중지 신청을 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친일파 후손이 국가를 상대로 낸 국유지 반환청구소송은 모두 26건으로 국가승소 5건, 국가일부패소 5건, 국가패소 3건, 소취하 4건이고, 9건이 심리 중이었다.

송강 검사와의 인터뷰는 25일 오전 충주지검 검사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송 검사와의 일문일답.

"일제시대 토지 반환소송 맡으면서 속상했다"

"친일파 재산에 대한 문제가 입법적으로 해결되기 전까지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국가 패소 판결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친일파 재산에 대한 문제가 입법적으로 해결되기 전까지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국가 패소 판결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 검찰 송무부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검사의 업무가 수사인 것은 맞지만, 공익 대표자로서의 역할이 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서 법률상 대표자는 법무부 장관으로 규정돼 있고, 장관이 법무부 직원이나 각 청 검사·공익 법무관을 소송 수행자로 지정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검사가 국가 송무를 진행하는 것이고, 행정기관이 대상이 되는 행정소송도 법무부 장관이 지휘하도록 돼 있다."

- 1990년대 들어 친일파 후손들의 국유지 반환청구소송이 늘어난 배경은 무엇인가.
"대법원의 판례 변화가 있었다. 일제로부터 소유권을 확정받아 토지조사부에 올려놓는 것을 사정이라고 한다. 유신헌법 이전에는 사정의 효력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였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사정의 효력이 반드시 우월한 것은 아니라며 애매하게 배척했다.

그러다 1986년 대법원이 "토지조사부의 토지소유자로 등재되어 있는 자는 사정 내용이 변경되었다는 것을 상대방이 입증하지 못하는 한 토지소유자로 확정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일제의 사정은 1920년대고, 소유권보존등기는 1950년대 이후 일이다.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물권변동도 많았고, 한국전쟁 등으로 관련 서류가 많이 소실됐다. 그럼에도 대법원이 사정의 효력을 인정하는 바람에 일제시대 때 토지조사부상 사정받은 것을 이유로 조상 땅을 찾겠다는 소송이 늘어난 것이다."

- 그렇다면 대법원의 판례가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대법원 판례가 꼭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국가라도 일제시대에 누군가 정당하게 취득했고 후손에게 내려왔는데 공부가 소실됐다고 해서 무조건 국가가 토지를 가져야 한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당시 대법원의 판례는 원고가 친일파가 아니었다. 친일파 후손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아직 한 건도 없었다."

- 대법원은 아니지만 1992년 이완용 후손이 낸 소송에 대해 서부지법은 "친일파 후손이라고 해서 소유권을 부당하게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판결했는데.
"당시 피고 측은 '이완용 후손이 재산회복을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의관념에 반한다, 민법상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재판부는 '재산권 제한에 대한 법률이 없는 상황에서 정의관념만 내세워 문제삼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피고가 패소해 이완용 후손이 시가 30억원 상당의 땅에 대한 소유권을 회복했다.

이 소송은 국가를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사인간의 소송이었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은 공익적인 측면이 강하다.

2001년 친일파인 이재극 후손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재판부는 헌법정신을 언급하면서 '반민족 행위는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이 사건 소는 정의와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기 때문에 부적법하다'며 각하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에서는 '민족감정이나 국민정서 등 추상적인 사유로 특정 범주의 사람이 청구하는 재판을 거부할 수 없다'며 이를 다시 파기환송했다."

- 담당했던 2004년 친일파 이근호 후손의 토지소송은 기존의 '재산권보호 우선' 판례를 뒤집는데 분기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소송을 적극적으로 이끌었던 계기는.
"법무관 시절 1년간 일제시대 토지 반환소송 업무를 전담하면서 속이 많이 상했다. 자료도 옛날 것이고 위조된 흔적도 보이는데, 그것을 밝힐 만한 단서가 없었다. 많게는 수만 평의 땅을 그냥 내주고 있었다.

그런 관심이 많은 터에 2004년 8월 공판송무부를 지원했고, 2개월 뒤 친일파 후손이 낸 소송에서 패소판결을 받았다. '항소심에서 뒤집어야겠다, 뒤집진 못하더라도 친일파 재산 문제가 입법적으로 해결되기 전까지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국가패소 판결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현행 헌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계승"

- 친일파 후손의 재산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는.
"민법의 일반원칙인 신의칙 위반 내지는 소권남용, 권리남용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논거를 개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판결을 연구해보니 이재극 후손이 낸 소송 1심판결에서 재판부가 헌법정신을 언급했다. 그것이 계기가 됐다. 속된 말로 헌법정신이라는 얘기가 나오니까 '이거 되겠다'는 느낌이 딱 오더라.

그동안은 친일파에 대한 개념 정리가 안됐다. 그러다보니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법원에서도 대법원 판례에 따라 판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당시 국회에서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에 친일파에 대한 개념이 정확히 규정돼 있었다. '을사조약, 한일합병조약, 그밖의 국권을 침해하는 조약을 체결하거나 조인 또는 이를 모의한 행위,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계승한 행위' 등이 그것이다.

우리가 패소한 사건은 (원고 조상이)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경우다. 적어도 친일파라는 개념은 똑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친일반민족 행위자가 취득했던 재산을 찾겠다는 후손들의 주장을 어떻게 배척할 것인지 검토했다. 현행 헌법의 입장은 '친일파 재산의 몰수와 국유화'를 건국강령으로 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친일파 후손의 재산권을 인정해 달라는 것은 헌법이념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친일파 후손들의 국유지 반환청구소송은 일종의 소권남용이고, 부당한 이득획득을 위한 권리행사로서 권리남용이다."
"친일파 후손들의 국유지 반환청구소송은 일종의 소권남용이고, 부당한 이득획득을 위한 권리행사로서 권리남용이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 친일파 후손들은 '만인은 법앞에 평등하다, 조상 잘못 둔 자손은 법률상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는 헌법정신은 없다'고 항변하는데.
"조상이 잘못한 것에 대해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국가가 50년 이상 공연하게 점유하고 관리해온 땅을 후손들이 조상 땅이라며 돌려달라고 주장하는 것이지, 국가가 피해를 주거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16대 국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환수하겠다는 법안이 상정된 상태여서 더 자신이 있었다.

지금은 그 법안이 통과돼 시행되고 있지만, 당시에도 친일파 후손의 재산을 환수하겠다는 법안이 상정된 마당에 국가가 수십년 간 평온하게 관리하고 있던 땅을 돌려달라고 하는 게 어불성설 아닌가. 친일파 후손들의 국유지 반환청구소송은 일종의 소권남용이고, 부당한 이득획득을 위한 권리행사로서 권리남용이다. 이것이야말로 법적 안정성을 침해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을 법원에 냈다."

- 친일파 후손 측에서는 그 토지가 자신의 조상들이 친일행위로 축재한 재산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대부분의 친일파 국유지 반환소송은 대한제국 말기 을사조약, 한일합병조약에 관여했던 자들의 후손들이 낸 소송이다. 그 때 재산형성 과정의 대다수가 일제로부터 은사금을 받은 것이다. 은사금은 매국에 대한 대가다. 한일합병조약에 참여한 대신들이나 송병준 등은 10만엔, 지금으로 치면 70억원을 은사금으로 받았다. 매국 대가로 땅을 사고 부를 축적한 것이다. 그런 재산권을 어떻게 인정해 주나? 말도 안 된다."

- 전문적인 토지브로커에 의한 사기소송 사례도 많은가.
"서울고검에 있을 때는 소송이 많다 보니까 토지 사기단 일당을 몇 십명씩 검거하기도 했다. 특히 일제시대 때의 땅을 찾겠다는 소송이 문제다. 가끔 소송을 수행하다가 원고에게 뭘 물어보면 소송내용을 모른다. 토지브로커가 개입했기 때문이다. 토지 브로커들은 일제시대 토지조사부 등을 입수한 다음, 그 중 국가에게 보존등기가 된 경우를 찾는다. 그리고 그 땅을 사정받았던 후손을 찾아가서 '소송에 이길 수 있으니까 해보자'고 회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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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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