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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리 들판의 논길/ 멀리 낭산 아래, 빈 논에 불이 붙는다
보문리 들판의 논길/ 멀리 낭산 아래, 빈 논에 불이 붙는다 ⓒ 남병직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중략-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접혔나 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진평왕릉 가는 길1/ 보문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보문들판
진평왕릉 가는 길1/ 보문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보문들판 ⓒ 남병직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구를 흥얼거리며 들판을 따라 걷는다. 나도 저이처럼 봄 신령이 접혔나 보다. 이맘때면 한번쯤 입에 오르내리는 시인데, 좋은 시는 좋은 노래로 다시금 불리게 마련이다. 발목이 시리도록 밟고 싶은 빼앗긴 들도 되찾았고, 그토록 기다리던 봄도 이미 오래전에 돌아왔다. 하지만, 저들에 봄이 오기 전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흙을 쓰다듬으며 반드시 다녀올 곳이 있다.

어머니 같은 시인의 마음을 가슴 가득 품고서 말이다….

진평왕릉 가는 길2/ 보문리 들판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길
진평왕릉 가는 길2/ 보문리 들판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길 ⓒ 남병직
진평왕릉 가는 길은 내가 사랑하는 경주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다. 그러한 연유로 나는 이곳을 찾을라치면 가능한 한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너른 들판을 마음껏 유영하거나, 마을입구에 내려 논둑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저만큼 아득한 낭산(狼山)의 기슭을 지긋이 바라보며, 신라의 애달픈 사연들을 하나 둘 곱씹어보면 아스라이 나무숲에 포근히 둘러싸인 진평왕릉이 어느새 성큼 눈앞에 다가선다.

사적 제180호/ 신라진평왕릉(新羅眞平王陵)
사적 제180호/ 신라진평왕릉(新羅眞平王陵) ⓒ 남병직
신라 제26대 진평왕(眞平王)(579-632)은 본명이 백정(白淨)이고, 진흥왕(眞興王)의 태자 동윤(銅輪)의 아들이며, 왕비는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632년 1월에 왕이 죽자 시호(諡號)를 진평(眞平)이라 하고, 한지(漢只)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한지의 위치에 대한 정확한 고증 없이 1730년경 경주김씨들은 이 능을 진평왕릉으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아직 그 진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왕은 TV드라마 '서동요'에서 선화공주의 아버지로 등장한다. 요즘 선화공주 덕분에 드라마삼매경에 빠진 필자로서는 더욱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진평왕의 큰딸인 선덕여왕의 능이 저만큼 바라보이는 이곳은 경주 최고의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이다. 일단 해넘이 즈음 다시 찾을 요량으로 보문 들판으로 발길을 주섬주섬 옮긴다.

논에 물이 빠지고, 보문리사지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논에 물이 빠지고, 보문리사지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 남병직
추수가 끝난 겨울들판의 중심에 보문리사지(普門里寺址)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문리사지는 논 한가운데 있어, 추수가 끝난 가을부터 이듬해 봄 논에 물이 들기 전까지 찾기가 용이하다.

지난 여름 멀리 언덕 위에서 바라만보다 돌아섰던 기억이 있다. 그날의 아쉬움이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마치 섬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이 열리는 듯, 가을날 무성했던 황금 들녘 사이로 연화문 당간지주로 향하는 고운 길들이 잔잔히 펼쳐진다.

추수가 끝난 논둑에 모습을 드러낸 석탑부재
추수가 끝난 논둑에 모습을 드러낸 석탑부재 ⓒ 남병직
행정 구역 상으로 이 일대는 보문동(普門洞)이라 불린다. 이렇게 불리는 이유는 벌판 동쪽으로 통일신라시대에 보문사(普門寺)가 조영되었으며, 현재도 그 유지가 있고, 많은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1916년 조선고적조사시 발견된 와편 중 '보문사(普門寺)'라 새겨진 명문와편(銘文瓦片)이 확인된 바 있다.

들판 가득 탐스런 연꽃이 피어난다. 연화문당간지주 아래 가까이 다가섰다.

보물 제910호/ 경주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慶州普門洞蓮華文幢竿支柱)
보물 제910호/ 경주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慶州普門洞蓮華文幢竿支柱) ⓒ 남병직
허균은 여덟 장의 잎을 가진 중대팔엽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8엽 연꽃의 중앙은 불성자체인 대일여래를, 주변 8엽은 법신불의 방편으로 나타난 네 부처와 네 보살을 의미하는데, 꽃잎이 모두 중심에 붙어 있어 네 부처와 네 보살은 결국 하나의 법으로 귀결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불성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음을 8엽의 심장 곧 마음의 연꽃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그러면 보문(普門)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은 세상의 고통받는 모든 중생의 소리를 살펴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인데, 중생의 교화를 위해 중생의 근기에 따라 33가지의 형상으로 몸을 나타낸다. 이를 불가에서는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 부른다. 관음보살은 그 종류가 많지만, 성관음(聖觀音)만이 본신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보문시현의 변화에 의해 나타난 화신이다.

보문은 <삼국유사> 사복불언조(蛇福不言條)와도 관계가 있는 이름이다. 경주대 이근직 선생은 원효와 사복이 사복의 어머니를 장사 지내면서 그의 어머니를 등에 업고 활리산(活里山) 연화장세계로 들어간 이야기에서 보문의 이름 유래를 설명하기도 한다.

나락이 걷힌 논둑어귀에 한 줄로 모습을 드러낸 주춧돌들
나락이 걷힌 논둑어귀에 한 줄로 모습을 드러낸 주춧돌들 ⓒ 남병직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상상은 끝없이 날개를 편다. 그렇다. 나는 보문 들판에서 관음의 화신과 마주한 것이다. 돌에 새겨진 연꽃은 보문시현의 화신으로, 천년세월의 비바람을 견디며 지금껏 빈들을 지켜왔다. 그것은 불성이고, 우리의 마음이며, 관음보살의 자비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듯 보살은 그 몸을 바꾸어 보문 들판의 이곳저곳에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지곤 하였다. 때로는 당간지주에 화려한 연꽃으로 피어나는가 싶더니, 나락이 걷힌 들녘에서는 논둑 어귀에 투박한 밑돌도 되었다가, 봄날 논에 물이 들면 살며시 그 모습을 감추어버린다.

석등받침과 금당 터/ 들판 곳곳엔 폐사지의 흔적이 완연하다
석등받침과 금당 터/ 들판 곳곳엔 폐사지의 흔적이 완연하다 ⓒ 남병직
빈들 한 쪽에 불길이 인다. 일 년 농사를 새로이 준비하는 농심(農心)은 분주하다. 이제 머지않아 보문 들판은 다시 물에 잠기고, 지난겨울 살며시 얼굴을 내민 폐사지의 잔영은 눈앞에서 사라진다. 꾸불꾸불한 논길을 따라 진평왕릉으로 돌아오자, 해는 벌써 저만치 산자락에 기대었다. 오색의 신령스런 빛을 발하는 신유림(神遊林)의 하늘은 점점 더 짙은 핏빛으로 붉게 노을져간다.

진평왕릉가 하늘에 핏빛 노을이 붉게 물들어간다.
진평왕릉가 하늘에 핏빛 노을이 붉게 물들어간다. ⓒ 남병직
보문 들판을 지나는 한줄기 바람이 일렁이더니, 관음보살의 노랫소리가 가만히 귓전을 두드린다.

"여보게, 불성(佛性)은 먼 데 있지 않으이, 신심(信心)이 깃들면 저 돌에도 꽃이 여무는 법이라오."

- 2006.02.20/ 경주보문리사지에서 -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및 사이트

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허균. 돌베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http://www.gc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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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지역 대학생문학연합(효가대 난문학회) 동인/ 문화유산답사회 우리얼 문화지킴이간사/ 국립문화재연구소 복원기술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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