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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작곡집>에 수록된 이재호 사진
<이재호작곡집>에 수록된 이재호 사진 ⓒ 이준희
이발소 모델로 사진이 걸릴 만큼 외모가 출중했던 이재호가 <반도의 봄>에서 맡은 역은 조연도 아닌 단역에 가까운 것이긴 하다.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술집에서 아코디언을 메고 <목포의 눈물>과 <타향(타향살이)>를 홀로 연주하는 젊은 악사가 바로 이재호다. 대사는 물론 한 마디도 없다. 하지만 얼마 되지도 않는 그 장면이야말로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이재호 동영상'이다.

<나그네 설움> <불효자는 웁니다> <번지 없는 주막> <대지의 항구> <꽃마차> <귀국선> <물방아 도는 내력>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어라 기타줄> <산유화> 등 읊자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이재호의 작품이다. 46년 전 화려하고도 불우한 삶을 폐병으로 일찍 마감했던 그를 박제된 듯한 사진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영상으로 만난다는 것은 분명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중음악 측면에서 볼 때 <반도의 봄>에서 놓칠 수 없는 또 다른 장면 하나는 여주인공이 <망향초 사랑>을 무대에서 부르는 대목. 배우 김소원이 입을 벙긋벙긋하는 가운데 가수 백난아의 청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립싱크가 상당히 어색하기는 했지만, 10인조 악단이 등장하는 무대는 일제시대 말기 대중음악 공연의 생생한 일면을 보여주었다.

이른바 종합예술이라는 영화의 속성상 거기서 대중음악 요소를 발견한다는 것이 무슨 특이한 일은 아니겠으나, 자료가 극히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동영상'을 만난다는 것은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자료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해도, 당장 어렵지 않게 발굴할 수 있는 것이 적지 않다. 일본 국립근대미술관 필름센터에 소장되어 있는 <思ひつき夫人>은 전설적인 조선악극단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다. 조만간 '이난영 동영상', '이화자 동영상'을 만날 날이 오기를 목 늘이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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