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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그림을 잘 보고 망줍기에 나섭시다. 규칙이 다소 까다로우니 읽다가 잊게되면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자, 이 그림을 잘 보고 망줍기에 나섭시다. 규칙이 다소 까다로우니 읽다가 잊게되면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 sigoli 고향-맛객
얼었던 뒤뜰도 살살 풀리기 시작했다. 교실과 교실 사이 아이들이 자주 다니는 볕 잘 드는 곳에 여자아이 몇 명이 몰려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야, 가시내들아 뭤허냐?"
"보면 몰라. 할방하는 것이여."
"미화야 재밌냐?"
"인자 시작할라고 헌디야. 니도 찡겨달라고?"
"가시내야 고건 아니고 그냥 재밌냐고 물어본 것이여."

내가 망차기와 유사한 망줍기, 할방, 모까놀이(일본식 표현) 놀이판에 끼면 남자애들이 온갖 구실을 붙여 뭣달린 놈이 가스나들이랑 어울린다며 동네로 돌아가서는 흙벽에 '귀때기×일순이'라고 커다랗게 써놓고 '붙어먹었다'고 떠벌릴 것이 두려워 그냥 어떻게 하는지만 지켜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남자애들이 운동장과 교실을 난장판 만들며 쓸고 다니는 동안 납작하고 조그마한 돌을 찾는다. 영임이는 강례마을에서 사금파리를 주로 쓰는지 사기그릇 조각을 들고 있다. 돌이 맘에 들면 자신만의 애장품인 듯 신발장이나 자신만이 알고 있는 바깥에 몰래 숨기거나 주머니에 넣어서 애지중지 다룬다.

막가지를 주워 길쭉하게 사각형을 그리고 맨 위쪽에 지붕 같은 하늘을 그린다. 아래쪽은 두칸이고 가운데 넓은 방엔 대각선으로 가새표를 치고 지붕 쪽 위 칸을 또 둘로 나눈다. 앞에 가로로 두칸에 가새표 안에 네칸, 위쪽에 두칸, 하늘 한칸까지 도합 아홉칸이다.

사람 수는 홀수거나 짝수여도 상관없이 둘 이상만 있으면 즐기던 놀이지만 남자들은 학교에 간 뒤로 여자애들 전유물인 듯 놀이에서 조금은 비켜나 뒷짐지고 구경하는 게 다였다.

손을 비틀어 편을 가르고 순서를 정한다. 자그마한 체구의 미화와 일순이가 한편이고 꺽다리 영임이와 순자가 다른 편이다. 일순이가 먼저 시작했다.

돌을 아래쪽 왼쪽 첫 칸에 던지고 깨금발로 돌이 없는 둘째 칸부터 밟아 찍고 가새표 칸 첫 번째는 또 한발로 그 다음엔 금에 묻지 않게 가로로 두 발을 쫙 편다. 그 다음 칸에서는 또 한발로 서고 마지막 옆으로 된 제일 위 두 칸에서 가랑이를 펴서 짚었다가 다시 뒤로 돌았다.

이제 내려올 차례다. 반대로 순식간에 앙감질과 두발로 도장을 찍듯 두루 살피며 "툭" "짝" "톡" 내려오다가 "툭" 두 번째 칸에 머물러 출발할 때 던져놓았던 돌을 줍기 위해 깨금발 상태로 머리를 숙인다. 거뜬히 돌을 줍는다.

처음에 적당한 거리에 놓았기에 수월했다. 처음 시작하는 곳에 내려오는 방향에서 그대로 엉거주춤 앉아서 자세를 고친다. 이윽고 손에 들고 있는 망 돌을 뒤쪽 머리 위로 살짝 던졌다. 셋째 칸에 돌이 빙그르르 돌다가 멈췄다.

"일순아, 좋은 자리 차지했다. 잘했어."

일순이가 걸어가서 돌로 그 자리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제부터 이 땅은 일순이와 미화편 땅이 되었다. 그 자리는 힘들여 깨금발을 디딜 필요도 없이 두발로 편안히 서 있으면서 모든 걸 할 수 있는 자유지대다.

하지만 상대편에겐 통행금지구역이다. 그 자리에 돌이 들어가서도 안 되고 그 땅은 아예 건너뛰어야 하니 진짜로 가랑이가 찢어지는 아픔을 느껴야 하는 상고시대 향이나 소, 부곡 같은 치외법권지역이다.

좋은 자리를 차지한 일순이는 신이 나서 더 '통통통' '톡톡톡' 찍으며 자기 땅에 가서는 한껏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계속해서 둘째 칸에 돌을 던지고 같은 요령으로 반복해나간다. 역시 거침없이 두 번째를 넘겼지만 뒤로 살며시 던진 돌이 어깨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3번 사이를 빙그르르 돌더니 2번 방에서 가까스로 멈춰 선다.

"휴-. 큰일 날 뻔 했네."
"잘 했다. 우리편 잘 헌다."
"아이구 아까워라. 죽는 줄 알았잖아."

옆에서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영임이가 아쉬워한다. 이제 2번과 3번 방은 던질 필요가 없다. 암초는 별로 없다. 넷째 번에 돌을 던지고 1번 찍고 2번은 걷듯 지나치고 넓은 3번 방에서 거드름피우듯 쉬었다 간다. 다섯 째 방에서 돌을 주워 넷째 방에서 한숨 고르고 유유히 내려와 뒤로 던진다.

"어매, 너무 뽀짝 떤졌어야."
"야, 순자야 니가 먼저 해라."

일순이가 손에 있는 흙을 터는 사이 편이 바뀌었다. 순자가 먼저 한 건 이 편에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때 4, 5, 6번 방을 모두 내주면 제아무리 황새라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여자애들 중에 키가 제일 크고 야무진 순자다.

얼굴이 하얀 순자는 2, 3번 방을 밟지 않고 4, 5번 방에 힘껏 뛰어 착지를 한다. 다 찍고 나서 4번 방에 도착해 1번 쪽에 있는 조금 멀리 떨어진 돌을 세 번에 나눠 끙끙거리면서 끌어당겨 손에 쥐었다.

훌쩍 뛰어 건너온다. 온 신경을 집중하여 조금 멀리 약간 비틀어 던진다. 왼쪽 4번을 먹어 교두보로 활용하려 했으나 6번을 따먹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편은 X자로 표시를 한다.

"괜찮아 잘 될 것이여."

그때 숯검둥이들이 몰려왔다.

"야 귀때기 너 거그서 뭤하냐?"
"잉, 가시내들 노는 것 본다. 남이사."
"야색꺄, 여깄지 말고 공이나 차로 가자."
"됐어야 니기들이나 놀아. 오늘은 째까 거시기 헝께 니기들끼리 해라."
"염병허네. 그래 가시내들이랑 잘 놀아봐라."

장난꾼 해섭이가 돌을 툭 차버렸다.

"야, 너 죽을래?"
"어디 잡아봐라. 내가 잽힐 줄 알고?"
"너 안 갖다놔. 잡히면 카만 안 둘 겨."

소용돌이는 금세 끝이 났다. 잠잠해지자 자기들이 따먹은 땅에 정확히 표시를 하고 다시 놀이를 계속했다. 4번에 던지고는 1번에서 5번으로 한발로 뛰었다. 거리야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좁은 모서리가 살짝 걸리는 통에 금을 밟으며 툭 미끄러지고 말았다.

망차기는 망줍기와 비슷하지만 발로 차면서 건너는 게 다릅니다. 잘 봐뒀다가 아이들에게 알려주세요.
망차기는 망줍기와 비슷하지만 발로 차면서 건너는 게 다릅니다. 잘 봐뒀다가 아이들에게 알려주세요. ⓒ sigoli 고향-맛객
일사천리 순식간에 긴 팔과 긴 다리를 이용해 해치울 듯했지만 여기까지 밖에 못했으니 영임이 편이 걱정이었지만 처음부터 일순이를 응원하기로 한 이상 속으론 잘됐다 싶었다.

마음에 숨은 뜻도 쉬 들키고 마는 법. "미화야, 니 차례다. 얼렁 해"라고 했다.

"야, 규환이 너 한쪽 편들고 있구나."
"아니랑께. 내가 왜?"
"알았당께."
"잔소리 말고 놀이나 잘 해봐."

똘똘한 미화도 꽁지머리를 촐랑촐랑 대며 뛰논다. 엉거주춤 앉아서 자세를 고친다. 이윽고 손에 들고 있는 망 돌을 머리 위로 "휙-" 던졌다. 이번엔 4번 방을 차지했다.

이러다간 한쪽으로 세가 급속히 기울고 만다. 편이 바뀌어도 영임이가 5번에서 1번으로 깨금발로 곧장 뛰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보다 먼저 자기편 사금파리를 손에 쥘 수 있느냐가 문제다.

일순이는 주위를 빙 둘러보고 있다. 시무룩한 둘은 이번엔 제발 돌이 다른 금에 놓이거나 밖으로 나가길 바라고 있다. 그도 아니면 방심한 아이가 순서를 까먹기를 바라며 온 신경을 집중하여 쳐다본다.

"야, 미화 너 왜 우리 방에 떤지냐?"

이제 영임이다. 5번에 사기를 던지고 1번을 밟고 6번으로 훌쩍 뛰어 두발로 섰다. 멀리 뛰다 보면 허벅지가 찢어지는 느낌에 자칫 금을 밟을 수도 있지만 요행인가. 땅을 짚을 수도 있었지만 살았으니 두고 봐야겠다.

끝을 찍고 아래로 내려와 여섯째 칸에서 들고 아래쪽에 있는 1번에 한발로 서기가 문제다.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새처럼 날았지만 1번에서 금을 밟고 말았다.

대개가 시합은 기세싸움인데 망 줍기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덩치 큰 애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형국이라니. 차라리 1번을 누구라도 먹으면 더 편할 텐데 미화랑 일순이는 그곳을 공략하지 않았다.

몇 번 해도 순자와 영임이는 매번 실패다. 둘이 번갈아가며 5번만 집중하자 이제는 더는 마지막까지 갈 필요도 없이 시합이 끝나고 말았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그 자리에서 조금 더 큰 돌을 발로 툭툭 차며 노는 망차기로 조금 방식이 바뀌어 놀다가 학교종이 땡땡땡 울리자 두레박에서 물을 퍼서 손을 씻고 교실로 들어갔다.

"니기들이 이겼응께 좋겠다."
"하다봉께 이긴 것인디 뭐."
"나도 헐줄 안께 담엔 나도 껴주라."
"생각혀 보고."

2학년 어느 날 나는 완전히 구경꾼 신세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못이나 한 개 들고 왔으면 좋으련만….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우리 전통놀이에 관심이 많다.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에서 더 많은 놀이와 어릴 적 추억을 캘 수 있다. 귀향하여 산채원을 만들어 '추억의 장난감박물관'을 만들 생각이다. 삽화를 그린 김용철 기자는 '맛객'으로 활동하며 40권이 넘는 만화책을 냈다. 'U포터'에도 송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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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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