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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한중관계를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 고전인 <춘추좌씨전>에 처음 나오는 ‘순망치한’이라는 표현은 ‘입술(脣)이 없으면(亡) 이(齒)가 시리다(寒)’라는 뜻으로서, 입술과 치아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리킬 때에 사용되는 말이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중국이 한반도를 지원한 것도 바로 그러한 인식에 기인한 것이다. 오늘날 중국이 북·미 핵문제를 자국 안보상의 중대 현안으로 인식하는 것도, 한반도의 정세 변경이 자국의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판단에 기인한 것이다.
지금 미국이 북한을 끊임없이 압박하고 있고 또 조만간 새로운 대북 제재조치를 선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이러한 대북 압박은 중국에게도 직간접적인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이는 미국의 대북 압박이 결국에는 큰 실효를 거두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을 낳는 근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은 미국이 북한 급변 사태를 조장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 할 것이다. 북한 급변 사태를 빌미로 중국이 북한을 점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미국·일본의 견제 때문에 중국이 단독으로 그런 행동을 취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중국 외교 라인은 한반도에서 가급적 예측불허의 환경이 조성되지 않도록 예방적 조치를 강구하려 할 것이다.
중국은 예측불허 상태 원치 않아
그럼, 오늘날의 중국 외교라인은 어떤 점들을 근거로 북중관계를 순망치한 관계로 인식하고 있을까? 그들의 판단 자료로는 임진왜란·청일전쟁·한국전쟁 등의 사례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규모 전쟁 못지않게 중국 외교라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1900년 의화단운동 당시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외교라인은, 중국에서 발생한 급변사태(의화단운동)로 인해 바로 옆에 있는 한반도 북부가 직접적인 위험에 처한 적이 있다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거꾸로 한반도 북부에서 발생한 급변 사태 역시 중국을 직접적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는 점을 추론해 내고 있다.
그럼, 의화단운동 당시 중국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또 그로 인해 한반도는 어떤 위기에 처했을까? 이에 관한 구체적 실증자료는, 중국사 학자인 차경애 박사가 <중국근현대사연구> 제23집에 발표한 <의화단운동진압전쟁이 한국의 사회·경제에 미친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년간 경기대 연구교수 등을 역임한 차경애 박사는 의화단운동이 한국에 미친 영향에 관하여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 한중관계사 전문가다.
1898년 말 중국 산동에서 시작된 의화단운동은 반제국주의적 애국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1900년 5월경 이 운동은 텐진·베이징으로까지 확대되었으며, 의화단 세력은 전선을 끊고 철도를 파괴하며 교회에 불을 지르는 등 과격한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거기에다가 6월에는 정부군까지 가세하여 베이징의 외국 공사관들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서양 제국주의에 대해 그동안 쌓였던 중국인들의 감정이 일순간에 폭발한 것이다.
이에 맞서 미국·일본·영국·러시아·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이탈리아 8개국은, 요즘 말로 하면 중국을 소위 ‘불량국가’로 규정하고 중국에 대한 대대적 응징에 나섰다. 8개국은 자국의 외교관 및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연합군(소위 다국적군)을 조직하여 텐진·베이징 등으로 진격하였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중국에 대해 ‘집단 응징’에 나선 것이다.
의화단운동 터지자 한반도에 피난민 대거 유입
그럼, 중국에서 발생한 이러한 급변사태는 바로 옆에 있는 대한제국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승정원일기>와 <황성신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당시 대한제국정부와 언론에서는 ‘순망치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고조되었다.
위 논문을 보면, 의화단운동으로 인해 대한제국이 입은 피해는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한 가지는 한-중 국경이 뚫림으로써 대한제국 북부 지역이 혼란에 빠졌다는 측면이고, 또 한 가지는 서구 열강이 자국민 보호니 한국 보호니 하면서 한국을 압박하는 한편 이 기회에 한국에서 더 많은 이권을 빼앗으려 했다는 측면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 중 첫 번째 측면에 대해서만 소개하기로 한다.
최근 대하드라마 <신돈>에서, 중국에서 궐기한 홍건적이 고려로 밀려와 공민왕이 복주(지금의 안동)까지 피난을 갔다는 내용이 방영된 적이 있다. 의화단운동 당시 조선도 중국에서 밀려온 피난민들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
위 논문에 따르면, 전운이 감돌던 1900년 6월까지 최소한 12000~13000명의 산동 주민들이 대한제국에 유입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전쟁이 정식으로 발발한 6월 21일부터는 중국 거주 외국인들과 중국 기독교인들이 의주를 통해 밀려왔으며, 러시아군이 만주를 침략한 7월 23일 이후에는 중국 병사들은 물론 러시아 병사들까지 대한제국 국경을 넘어 밀려왔다고 한다.
이때 경원·온성·경성·무산·갑산·종성·경흥 등 한반도 북부의 주요 지역이 한꺼번에 피해를 입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리고 간도에 거주하던 한국인들까지 덩달아 쫓겨 온 점을 감안하면, 의화단운동 당시 한-중 국경을 넘은 피난민의 숫자는 대략 수만 명 정도 될 것이라는 게 차경애 교수의 추정이다.
그런데 이때 국경을 넘어온 중국·러시아 피난민들은 그저 ‘얌전한 손님’으로만 있지는 않았다. 이들에 의한 약탈·방화는 한반도 북부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8월 20일에는 훈춘에서 한국인 2000명이 살해되었고, 8월 초 초산군에서도 무수한 인명 살상이 벌어졌다. 그리고 9월 17일에는 간도 땅의 한국인 기독교인들이 모두 살해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의주는 물론 평양에서까지 피난 소동이 벌어졌다.
한국인 인명 피해 극심, 피난 소동까지 발생
이 외에도 한국이 그 당시 입은 피해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했다. 이 기사에서는 그 일부만 간략히 소개했을 뿐이다.
이처럼 한국과 중국은 지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있는 이웃이므로, 어느 한쪽에서 발생한 급변사태는 필연적으로 다른 쪽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이 임진왜란·한국전쟁 때에 지원군을 파견한 것도 바로 그러한 판단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미국이 북한 급변사태를 목표로 대북 압박을 가중한다면 이는 중국 동북지방의 안보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이 북한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중국이 북한의 급변사태를 어떻게든 막으려 할 것임을 쉽게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대북압박은 중국까지 압박하는 것
그러므로 미국이 대북 압박을 가중하는 것은 단순히 북한을 압박하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나아가 중국까지 압박하는 것이 된다. 미국이 지금의 경제적 대북압박을 양적으로 크게 강화하거나 혹은 질적으로 한 단계 높은 새로운 대북 제재조치를 강구한다면, 이는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까지 반발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다. 중국까지 미국에 반발한다면, 6자회담은 미국이 의도했던 것과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나가게 될 것이다.
미국의 대북 압박으로 인해 설령 김정일 정권이 붕괴된다 하여도, 김정일 정권의 붕괴는 중국은 물론 전 동북아 지역에 예측불허의 상태를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동북아에서의 예측불허는 중동정세의 예측불허로 연결될 것이며, 이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전반적인 차질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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