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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한다. 오죽하면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말이 나왔을까. 하긴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디 우리나라 사람뿐이겠는가. 이곳 미국에도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다.

대형마트 앞에서 어쩌다 보게 되는 유명 햄버거 회사의 판촉 행사. 판촉요원들이 토요일 아침에 '모닝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있는 쿠폰을 나눠준다. 사람들은 "땡큐"를 연발하며 쿠폰을 받아간다. 그런데 그냥 한 장만 받아가는 게 아니라 한 장이라도 더 받아 가려고 손을 다시 내미는 사람들이 있다.

공짜를 좋아하는 건 동서양을 불문하고 세계 모든 나라의 공통적인 현상인 듯하다. 하지만 이런 상술로서의 공짜는 이곳 미국에도 많이 있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공짜를 외면하는 것이 또한 미국인 것 같다.

우리 가족은 큰딸이 출연한 교내 뮤지컬 공연을 '두 번' 보면서 모두 52달러(30달러+22달러)를 썼다. 한국에서라면 프로도 아닌 순수 아마추어, 그것도 고등학교의 학내 행사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공짜로 구경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공적인 행사에 공짜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학교 행사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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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도 아니면서 왜 돈을 받는대?"

고등학생들의 뮤지컬이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선 사람들. 예약석이 표시되어 있다.
고등학생들의 뮤지컬이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선 사람들. 예약석이 표시되어 있다. ⓒ 한나영
얼마 전, 작은 딸이 농구시합을 보러 가자고 했다. 어디서, 누가 하는 경기냐고 물으니 자기네 중학교에서 선생님과 농구부 학생들이 하는 경기라고 했다. 농구부 학생들은 NBA를 꿈꾸는 키가 큰 '미래의 프로선수'들이 아니었다. 그저 취미로 하는 순수 아마추어들이었다.

그런 아마추어들이 또 다른 아마추어인 선생님들과 벌이는 그저 그런 경기였다. 그런데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 시시한 경기를 보러 가자고? 나로서는 별 구미(?)가 안 당기는 경기였다. 그런데 그 때 딸아이가 한 말이 나를 놀라게 했다.

"엄마, 돈 내고 보는 경기야."
"에엥, 그깟 시시한 경기를 보면서 돈까지 내라고? 아니, 봐주기만 해도 감지덕지일 판에 무슨 돈을 내라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벌이는 농구 시합은 입장료가 1달러였다. 물론 입장료라고 할 만한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미국에서는 학교 행사에 돈을 받는 경우가 많다. 공짜가 별로 없다. 수요자가 철저하게 돈을 내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미국, 아마추어 공연도 입장료 내야... 공짜는 없다

집에서 가까운 JMU(제임스 메디슨 대학교) 음악대학은 딸의 퍼커션 레슨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꼭 가게 되는 곳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혹시라도 볼 만한 공연이 있을까 하여 잊지 않고 늘 게시판을 들여다본다.

그런데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공짜 공연은 별로 없다. 음악과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하는 공연이라 하더라도 대개는 돈을 받는다. 입장료가 5달러, 8달러, 10달러, 많게는 20달러까지 있다. '공짜(FREE)'라고 씌어진 공연은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있을 뿐이다.

공짜가 별로 없는 미국 생활을 경험해 보니 이곳 사람들에게 향응문화, 접대문화라는 것이 없는 것은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학습된' 이런 공짜 없는 문화에 기인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에 들었던 에피소드다. 한 미국인 교수가 이곳 대학에 방문교수로 와 있는 한국인 교수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한국인 교수는 이곳에 오래 살았던 다른 한국인 교수에게 물어 보았다.

"미국인 교수가 밥을 먹자고 하는데 밥값은 누가 내나요?"
"여기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기 먹은 것은 다 자기가 내요."

학교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미국인 교수였지만 그는 예상했던(?) 대로 자기 밥값만 계산하고 나갔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밥을 먹자고 한 사람이 밥값을 내는 게 상식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각자가 부담하는 '더치페이'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남의 신세를 지는 법이 별로 없다. 속된 말로 모두 '제 코로 숨을 쉬면서'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남의 것을 '덥석' 받아먹는 경우도 별로 없는 것 같다.

'황제골프' '황제테니스' 모두 공짜문화의 한 단면

'황제골프'에 이어 또 다시 '황제테니스'가 사람들의 입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왕조 체제도 아닌 21세기 민주 국가 체제에 느닷없이 등장한 '황제'라는 말은 우리네 평민들을 분노케 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황제가 군림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나는 '황제'라는 이름 속에 내포된 높은 분들의 고약한 특권의식을 꼬집고 싶다. 이들은 그 특권을 이용하여 공짜로 대접을 받는다. 골프접대, 테니스접대도 받고 술자리접대에 심지어 여자접대까지 받기도 한다. 이런 추악한 '공짜접대'에는 예외없이 접대한 사람에게 '은밀한 대가'가 건네진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고 비밀이다. 왜냐하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은 오랜 세월 시퍼렇게 살아 있었던 '관습헌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공짜문화'가 저들 황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 전반에 '공짜문화'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공짜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흥청망청한 '부적절한' 회식 자리, 법인카드를 내 주머니 돈처럼 여기저기에 함부로 쓰는 '부도덕한' 행동 -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우리 사회가 키워 온 공짜 문화의 단면이자 치부일 것이다.

공짜나 눈먼 돈이 별로 없는 미국 사회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투명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우선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공짜'를 추방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이제는 무임승차하려는 못된 습관이나 관행은 버려야 한다. 정말이지, 이제는 제발 남의 코로 숨 쉬지 말고 제 코로 숨 쉬는 맑은 사회가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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