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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9년전 화물차 도난상황을 재연하고 있는 유추근씨.
ⓒ 최연종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착각했겠지….'

1997년 5월 어느 날 오전 6시, 전남 화순 부영1차 아파트 주변 골목길.

유추근(46)씨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신이 주차해놓은 12t 차량을 찾고 있다. 차량에는 쌀 800포대가 실려 있었다. 당시 시가로 치면 3400여만 원어치다. 유씨는 주차 위치를 착각한 것으로 알고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차량은 보이질 않았다.

차량을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황당해 할 말을 잃은 유씨지만 경찰에 도난신고부터 했다.

'이 사실을 아내에게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 11층에서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다며 당시 사는 곳을 가리키고 있다.
ⓒ 최연종
아내는 당시 만성신부전증으로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한참 망설였습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아내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당시 11층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몇 번이고 떨어져 죽을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쌀값 3400여만 원과 중고 화물차량 구입비 2400만원 등 6천여만 원의 큰돈을 하루아침에 도둑맞은 유씨 부부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아내 간호를 위해 출퇴근이 자유로운 직업만 전전하다 보니 정규 직업을 갖지 못한 유씨는 당시 쌀을 운반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유씨의 수입은 고스란히 아내의 치료비에 쓰이던 터라 차량의 도난은 아내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상황이었다.

도난 차량은 나중에 충남 아산 하천변에서 발견됐다. 쌀만 털어 달아난 것이다.

▲ 화물차량을 찾기 위해 뛰어가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 최연종
10여 년이 지난 16일 부영1차 아파트 주변 골목길. 똑같은 현장에서 유추근씨는 당시를 재연하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MBC TV <가족愛 발견> 제작팀이 유씨의 가족사랑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몇 번이고 NG(?)를 낸 것. 그는 당황한 나머지 허둥대는 모습부터 뛰어다니는 모습을 재연했다.

MBC는 '태진이 가족의 힘겨운 투병 생활'(<오마이뉴스> 2006년 1월 10일 '만성신부전증 아들에게 신장 떼어줍니다') 보도를 접하고 유씨에게 인터뷰를 요청, 프로그램 제작에 들어갔다.

MBC 방송국에서 프로그램 제작을 하고 싶다며 연락이 왔을 때는 처음에는 거절했다는 유씨.

"우리보다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처음에는 고사했습니다. 방송국에서 가족애를 다룬 프로그램이라며 인터뷰 요청을 하기에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 인터뷰에 응했지요."

▲ 인터뷰하는 유추근씨.
ⓒ 최연종
제작팀은 현재 그가 살고 있는 부영3차 아파트에서 가족사진 촬영에서부터 나주 노안에서 돼지를 트럭에 싣는 모습, 처가인 무안읍에서 장인 장모님까지 인터뷰했다.

이에 앞서 유전성 만성신부전증으로 투병 중 아버지의 신장이식을 받기 위해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준비하는 큰 아들 태진(20)이와 9년 전에 만성신부전증으로 투병중인 아내 박정숙(45)씨 간병하는 얘기 등 인터뷰를 마친 상태.

태진이는 아버지로부터 신장이식을 받기 위해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가 비염과 치주염 때문에 서너 차례 수술이 연기된 채 현재 기약 없는 수술날짜만을 기다리고 있다.

애가 타는 건 태진이 아버지다. 몇 달째 서울대병원과 아들의 자취방을 오가며 수술 날만을 기다리다 지쳤다. 하지만 자신보다 태진이가 우선이다. 신장 이식 수술 전에 태진이의 질병은 반드시 치료를 끝내야 만이 수술을 할 수 있기 때문.

9년 전에 태진이 엄마가 만성신부전증으로 고생하다 뇌사자의 장기를 무료로 이식받은 뒤 3년간 합병증으로 고생한 경험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 MBC 제작팀이 유씨집에서 가족 앨범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최연종
문제는 수술비다. 아들에게 자신의 장기를 떼어주려고 해도 3천여만 원의 수술비가 필요하지만 아직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했다. 보험 하나 믿고 수술부터 하기로 했지만 암보험이라 보험혜택이 안 된다는 말에 힘이 빠졌다. 다행히 심장재단에서 일부 보조한 데다 공동모금회 등 여러 곳에서 도움을 줘 수술비 일부는 마련된 상태.

"도움을 받은 수술비는 나중에라도 꼭 벌어서 갚을 생각입니다. 태진이 엄마 수술 때도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아 미안했는데…."

이번에 제작된 태진이 가족의 사랑이야기는 오는 30일(목) 오후 7시 20분 MBC TV <가족애 발견> 프로그램을 통해 30여 분간 수도권 지역에 방영된다. 태진이가 아버지의 신장을 이식받은 뒤에는 2부가 나갈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남도뉴스(http://www.namdonews.co.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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