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의 눈물>은 <창가의 토토>로 널리 알려진 작가 구로야나기 데츠코가 아프리카를 다녀와서 쓴 책이다. 당시 유니세프 명예대사였던 그녀가 바라본 아프리카는 통곡의 땅이었다. 아이들의 울부짖음과 여성들의 고통소리가 뒤섞여서 절망에 가까운 상태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데도 아프리카 동물을 알지 못한답니다. 왜냐고요? 동물원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고 그림책도 없기 때문이지요. 저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아프리카의 야생동물을 모른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본문 13페이지 중
<토토의 눈물>은 이런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아프고도 아픈 현실을 담고 있다. 책에는 가난, 영양실조, 내전, 가뭄, 사막화 그리고 죽음으로 귀결되는 절망의 언어가 가득했다. 가난 때문에 한 아이가 죽고, 내전 때문에 또 다른 아이가 죽는 현실이 아로 새겨져 있다. 부모를 잃은 아이의 절규, 살고 싶어 하는 아이의 눈물로 책을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아무 죄도 없고,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아이들이 왜 배고픔 속에서 헐벗고 스러져야만 하는가? 너무 못 먹어서 살이 뼈에 달라 붙어있고 배만 불쑥 튀어나온 그들의 사진을 보며 필자는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 즉 가뭄, 홍수 등의 원인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어른의 욕심이 빚어낸 결과였다. 아주 사소한 이유로 서로 죽고 죽이는 르완다의 경우처럼 아이들은 어른들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현실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른다. 자신들이 그런 내전과 죽음에서 아무런 죄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자는 "아이들은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울고 있다"고 했다. 전쟁으로 죽은 부모, 형제들을 생각하며 아이들은 당연히 자신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죽고 말았다 할 것이다. 그것은 분명 평생의 짐이 될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 이른 아프리카 어린이들, 어른들이 서로 이해하고 조금만 타협했으면 되었을 것을 이런 왜 이런 비극으로 만들어야 했을까? "지금 악마는 지옥에 없다. 모두 르완다에 가 있기 때문이다"라는 책의 구절처럼, 사람들을 죽음의 광기에 휩싸이게 했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아니 그것이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을지 모른다. 이런 현실에 바꿀 용기가 과연 어른들에겐 남아있을까?
그녀는 망원경을 내전중인 한 대통령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걸로, 게릴라들을 찾아주세요."
"아니오, 미래를 봅시다." -본문 중에서
미래를 보자는 그 대통령의 말에, 필자는 가슴이 뛰었다. 그래, 비극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고 생각했다. 희망은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나를 감동시킨 것은 그런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나가려는 아프리카 인들의 모습이었다.
비라도 한 번 내리면 곧 말라버릴 고향 땅에 곡식을 심은 아프리카인들의 열정, 조금이나마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아프리카인들의 모습은 정말 대단했다. 누가 이런 아프리카 인들에게 게을러서 가난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기에, 그 가난과 고통의 땅에서도 분명 언젠가는 희망이 꽃필 날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배불리 먹고 즐겁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날이 올 것이다.
다만 그들은 지금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도움을 전해 줘야만 한다. <창가의 토토>의 구로야나기 데츠코가 희망을 걸고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의 김혜자씨나 한비야씨가 그토록 부탁했던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살 수 있다. 우리의 아이들과 같은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말이다. <토토의 눈물>은 우리에게 그 간결한 메시지를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