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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의 사진촬영
가족들과의 사진촬영 ⓒ 이선미
"나이 들어서 결혼하면 손해야. 다들 솔로일 때 누릴 것 다 누리고 결혼은 나중에 하라고 하지만 난 반대야. 일찍 결혼해서 애 낳고 아이들 독립시키고, 장년 이후에 속편하게 살아야지. 늙어서 어떻게 애를 키워."

결혼을 얼마 앞두고 있는 선배가 3년 전 한 카페에서 한 말이다. 어두침침한 조명 탓에 연인들이 즐겨 찾던 카페에서 결혼을 앞둔 선배와 결혼에 대해서 문외한인 후배가 만나 '현실결혼'과 '이상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로부터 3년. 세월은 참 빠르다. 그 선배의 둘째가 어느덧 돌이다. 돌잔치 하루 전날 느닷없이 전화해 "바쁘냐? 와서 부조금 대신 사진이나 찍어라"라고 말을 건넨 선배.

가족들과 케이크 절단식
가족들과 케이크 절단식 ⓒ 이선미
후배 만나러 서울 가는 약속도 취소하고 기꺼이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그동안 돌잔치에 가면 늘 음식만 먹고 나왔기에, 가족들 표정이나 잔치를 지켜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 돌잔치 주인공인 소휘는 어렸을 적 '이쁘다'라는 말보다 '건강하다'라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모 우량아 대회에도 참가한 바 있는데, 굳이 대회를 얘기하지 않아도 누가 봐도 '우량아'였다.

여름철 살이 포동포동, 올록볼록 겹쳐져 있던 소휘를 보면 안쓰러운 느낌마저 들었는데, 이제 제법 커서 무지막지한 젖살이 어느 정도 빠져보였다.

보통 백일 때는 머리도 없어 엄마 바람대로 이것저것 꾸미기 미안한 나이인데, 돌이 되니 제법 머리가 자라 깜찍하게 묶을 수도 있고 의젓한 태가 났다.

돌잡이를 하는 소휘
돌잡이를 하는 소휘 ⓒ 이선미
엄마의 바람은 마이크…아기는 관심이 없고…

돌잔치의 핵심은 당연히 돌잡이 때 무엇을 잡는가이다. 소휘 엄마는 아이가 마이크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소휘는 관심이 없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소휘의 손길에 집중하고 있던 탓이었을까. 소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얼마 후 뒷수습의 임무를 맡은 엄마가 소휘의 팔을 조정(?)해 간신히 마이크를 잡았다. 다들 박수를 쳤고, 돌잔치는 무사히 끝났다.

소휘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불현듯, 내가 알던 선배가 진짜 아빠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둘째를 토닥이며 네 가족을 꾸리는 아빠라는 자리.

돌잔치는 어쩌면 아이가 1년을 건강하게 지낸 것을 축하해주는 의미도 있지만, 아이를 부둥켜안고 씨름한 부모들에게 한 고비를 넘긴 축하도 되지 않을까 싶다.

엄마와 아빠가 시간을 쪼개며 아이를 위한, 아이에 의한 생활을 지탱하고 그 틀을 짜는 그 첫 단추와 같은 1년의 시간.

마이크를 잡은 소휘
마이크를 잡은 소휘 ⓒ 이선미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을까?

우리 엄마, 아빠는 겨울에 태어난 나를 따뜻하게 해준다고 보일러를 너무 세게 들어 방바닥이 탈 뻔도 했다는데, 선배네 부부도 그런 소소한 해프닝들이 많았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할라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으앙~" 울음을 터뜨리고는 엄마, 아빠를 찾는 작은 아이.

이 아이가 우리와 같이 커서, 어느 덧 부모 품을 뒤로 하고, 사춘기다 뭐다 말하기 싫어하다 어느 순간 덜컥 결혼을 하겠다고 말하겠지.

어깨너머 소휘의 모습
어깨너머 소휘의 모습 ⓒ 이선미
요즘은 세상이 달라지고, 부모도 달라져서 열린 사춘기를 보낸다는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나 또한 어느덧 결혼을 할 시기가 다가오고, 친구들의 결혼 청첩장에, 임신소식에, 눈물 젖은 아빠의 나이든 목소리를 자주 접하게 되니 갖은 상념에 사로잡혔다.

돌잔치를 맞은 예쁜 조카를 보면서,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 부모의 큰 기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부모에게 큰 기쁨을 주는 것은 아마 방긋방긋 웃어주는 아기였을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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