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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바라 헨드릭스
ⓒ 어드밴스드뮤직프로덕션
소프라노의 흑진주 바바라 헨드릭스는 팝, 재즈 그리고 오페라를 넘나드는 세계적인 음악인으로서 명성뿐 아니라 인권운동의 열성적인 옹호자이자 실천가로도 알려진 인물이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옛 유고인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진 그녀가 폭격이 진행되던 사라예보에서 망년일인 12월 31일, 마치 전쟁의 공포와 피폐함을 음악으로 어루만지듯 진행한 공연은 그녀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그런데 바바라 헨드릭스는 지난 3월 28일 세종문화회관 공연에서 서곡을 이렇게 시작했다.

"여러분, 이 공연의 수익금이 정말 북한의 인권을 위해 쓰이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공연이 북한 인권을 위한 공연이라고 홍보되는 것을 서울에 도착해서야 알았습니다. 이 사실에 놀라서 유엔 관계기구에 주최 측인 크라이 프리덤을 아느냐 문의했으나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공연의 목적에 대해 확인하고 속았다고 생각되어 환불받고자 한다면 환불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3천여 관중이 어리둥절해 하는 가운데 그녀는 말을 이었다.

"이 공연을 취소할까 생각했으나 음악으로 맺어진 한국 친구들과의 우정을 생각해 결국은 무대에 서기로 했습니다."

공연은 일단 시작되었으나 그녀의 인사말은 마치 도발적인 퍼포먼스(?)처럼 관람객을 뻘쭘하게 만들었다.

상술과 정치 속에 등 터지는 예술과 관객

이에 대해 공연 관계자는 "매니저와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초대받은 예술가가 모르는 공연 기획이라면 이 알량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는 이유를 막론하고 이 공연을 기획한 기획사 측 책임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이니 주최 측인 크라이 프리덤은 그야말로 '프리덤'한 진행으로 '크라이'하게 생겼다.

그러나 바바라 헨드릭스의 북한 인권 관련 입장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녀는 일주일 전 한국의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해서 부시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미국의 일부 정치인들의 말은 너무 근시안적이고 위선에 가득 차 있다"는 말로 일축해 버렸다.

그럼에도 기획사는 이번 콘서트의 수익금은 북한 인권을 위해 UN 산하 인권기구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팸플릿과 언론을 통해 일방적으로 홍보했으니 그야말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생쇼'를 한 셈이다.

기획팀에게 '북한 인권'을 이렇게까지 팔아서 뭘 얻으려고 했는지 묻고 싶다. 기획사측과 초대한 예술가 사이에 공연 성격에 대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한 덕에 관객들은 바바라 헨드릭스의 음악 세계에 푹 빠져 보려 했다가 예상치 못한 바바라 헨드릭스의 기습적인 퍼포먼스(?)를 감상하게 되었다.

정치적인 일부 언론은 유엔 난민 명예대사이자 유네스코 특별고문직까지 맡고 있는 바바라 헨드릭스의 위치를 의식한 듯, 차기 유엔 사무총장에 출마할 한국 측 후보의 선출 문제와 관련해서 이번 공연 해프닝에 대한 외교당국의 정확한 사건 진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무리 유명세와 위력적인 예술가인들 언론이 예술가의 목소리에 이만큼 숨을 죽인 적이 있었던가! 정치적 입장의 면죄부로서 우위를 차지하는 '국익'을 의식한 언론의 눈엔 바바라 헨드릭스의 불쾌함은 한 예술가의 공연 차질에 대한 실망감으로만 치부하기에 위압적이기까지 한가 보다.

이런 해프닝으로 유엔 사무총장 득표에 노심초사하는 언론이나, 용돈 아껴서 모처럼 문화생활을 향유해 보려다가 바바라 헨드릭스의 진가를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고 돌아온 소시민 관객이나, 모든 것을 떠나 음악으로 관객을 만나려던 바바라 헨드릭스나 망가진 하루이긴 마찬가지다.

이번 관객들은 '공연의 목적에 속았다'는 이유부터 무분별한 상술로 바바라 헨드릭스의 원본이 일그러진 공연을 봐야 했던 이유까지 문제를 야기한 관계자 측에서 보상받아 마땅하다.

바바라 헨드릭스 퍼포먼스의 'VVIP'

그럼에도 바바라 헨드릭스의 퍼포먼스는 훌륭했다. 그녀의 예술가적 연륜이 바로 여기에서 느껴진다. 그녀는 쇼맨십 강한 예술가로서 정치적 선전에 얼굴마담으로 단골 동원되는 광고 모델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이번 퍼포먼스에서 음악부터 정치적인 현실로 관통하는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그녀가 서방세계의 인권 옹호자 중 한 사람으로 북한 인권까지 싸잡아 문제 삼을 줄 알았던 우리 측 기획사의 추리력은 한 음악인의 세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한반도 주민이 아닌 그녀지만 역시 북한의 인권을 문제 삼기 이전에 일부 미국 정치가들의 근시안적이고 위선적인 태도를 먼저 지적했다.

그러니 이번 바바라 헨드릭스의 퍼포먼스에 있어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는 재즈 마니아가 아니라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그 공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공연 기획자와 국내외 일부 정치가들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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