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책의 표지와 제목만 보고 연애소설인 줄 알았다. 물론 사랑이야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두 줄기로 흘러가는 내용 가운데 더 큰 폭을 차지하는 것은 로맨스가 아니었다. 추리소설을 읽을 생각은 없었는데 책은 결국 추리 소설 쪽으로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었다.
내용을 떠나 책의 표지와 제목은 독자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한다. 파스텔 톤으로 그려진 여성의 얼굴 표정은 무언가 베일에 싸인 듯 신비로운 효과를 뿜어내고 있다. 할 말이 많지만 아끼고 있는 듯, 어느 곳을 응시하고 있는지 왠지 슬퍼 보이는 듯한 눈빛.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여성은 책에 등장하는 여 주인공 세쓰코를 연상시킨다. 눈 밑의 점이 그 사실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주인공 나루세는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프리터족이다. 컴퓨터를 가르치는 강사, 경비, 영화의 엑스트라, 탐정 사무실에서 일하기도 했다. 비정규직으로 여러 가지 일을 했던 주인공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불안정한 그의 직업만큼이나 가볍다. 연애도 마찬가지. 한 사람에게 푹 빠져서 진지한 연애를 하기보다 상대를 바꿔가며 쉽게 욕구를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그런 연애에 왜 회의가 없겠는가. 가벼운 연애도 이제 지쳐 진정한 사랑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막연히 품어보기도 한다.
나루세는 어느 날 지하철 역 아래로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하는 한 여성을 구해준다. 이 여성과 나중에 어떤 식으로 얽히게 되는지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저자는 지루하지 않게 독자들을 추리소설의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나루세는 보험금을 노린 살인 사건의 배후를 캐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탐정 사무실에서 일한 이력이 있던 그이기에 힘들지 않게 지인의 부탁에 응했는데 점점 실상을 파고드니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급기야 야쿠자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기까지. 처음에는 두려움도 없지 않았지만 점점 진실에 가까워지자 되도록 빨리 세상에 알려 더 이상 피해자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그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소설을 다 읽게 되면 독자들은 매우 황당할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나루세와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등장하는 웬만한 사람들은 나루세를 열외시키고 다 자기네들끼리 알고 있다. 굳이 나루세를 통하지 않아도 이미 그들끼리는 일면식을 치르고 다양한 일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추리소설의 묘미를 알게 되었다고 할까. 다음에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독자들은 긴장하게 되고 실제로 자신이 탐정이 된 것 같은 기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잠시 현실을 잊고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진실을 캐고 다니는 기분. 추리 소설이 아니면 경험하기 힘들 것 같다.
71세가 된 나루세는 과거를 회상하며 세쓰코와 지난날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또한 과거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지금부터 시작하려한다. 안경이 없으면 신문도 보지 못하고 중력으로 피부도 늘어졌고 무엇보다 기력이 약해졌음을 몸소 느끼고 있지만, 스무 살 때나 지금이나 탐정 일을 좋아하고 발놀림도 빠르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도 여전하다고 읊조린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세쓰코를 사랑할 수 없겠지만 이미 사랑하게 되고 나서 세쓰코가 '그런 여자'인 줄 알았단다. 어쩌겠는가. 사랑한다는데.
벚꽃이 한창 피어있을 때는 아름답다. 누가 권하지 않아도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기 십상이지만 벚꽃이 지고 나면 아무도 벚나무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다.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초록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단풍도 든단다. 벚꽃나무에 단풍이 든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외양이 아무리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20대의 사랑과 70대의 사랑은 외양만 다를 뿐 그 본질은 같다.
처음과 결말은 로맨스, 가운데 부분은 박진감 넘치는 느와르.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이 둘을 묘하게 섞어 놓은 소설이다. 소설을 통해서 저자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족 문제나 인간 소외, 다단계에 빠지는 사람들의 심리, 노인 문제 등 다양한 주제들을 간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독자들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에 정신을 쏙 빼앗기고 말 것이다. 속았다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이 들려주는 뼈있는 이야기들로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