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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산비탈 밭 가장자리에 마련한 야외 똥 수간에서 똥을 퍼냈습니다. 작년 여름부터 속에 것을 비워 놓은 똥거름이었습니다. 똥을 누고 나면 거기에 풀을 덮고 쌀겨를 뿌려 놓았습니다.

그렇게 족보에도 없는 내 방식대로의 거름을 만들었습니다. 제대로 된 거름인지는 가을쯤 돼 봐야 알겠지요. 아무튼 똥거름을 호박 심을 구덩이에 낑낑거리며 퍼나르고 있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신문지를 들고 산비탈 밭으로 올라왔습니다. 단체로 똥 누러 올 일도 없고, 갑자기 뭔 일인가 싶었습니다.

"뭔 일여?"
"그러는 인효 아빠는?"
"나? 똥 푼다. 워쩔래?"
"뭐? 에이 저리가, 옷에 똥 묻겠다."

"뭔 일로 우르르 올라왔어?"
"오늘은 산에서 하려고."
"뭘?"
"명상."
"그려, 거기 아무데서나 퍼질러 앉아서 혀, 난 똥이나 풀게."

아내하고 큰 아이 인효는 대나무로 만든 비닐 하우스 위쪽 둑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인상이 녀석은 비닐 하우스 끝자락에 자리한 연못가 바위 위에 나 보란 듯이 턱하니 올라앉았습니다.

▲ 아내와 큰 아이 인효, 작은 아이 인상이는 하우스 저 끝자락에 앉아 있다.
ⓒ 송성영
우리 식구는 몇 개월 전부터 다시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9년 전 시골로 이사 오고 나서 아내는 사랑방 옆 창고를 수리해 명상실로 꾸미기도 했었습니다. 아내는 명상을 통해 시골 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 얼마간의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명상실은 오래 전에 이미 창고로 되돌아갔습니다. 시골 생활에 안정감을 찾아가면서 아내는 더 이상 명상실이 필요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마 석 달 전쯤이었을 것입니다. 아내가 뭔 맘을 먹었는지 갑자기 명상을 시작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다 하게 뚜렷한 계기도 없이 아내는 밤마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듯한 아주 느리고 조용한 명상 음악을 틀어 놓았습니다.

"갑자기 어쩐 일여?"
"얘들한티도 좋을 거 같구해서."
"그려, 좋지. 밥 먹듯이 하믄 좋지, 며칠 하다가 그만두지 말고."

그렇게 매일 밤마다 우리 식구는 잠들기 전에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허리를 펴고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앉았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누가 더 오랫동안 앉아 있나를 시합이라도 하듯 꼼지락 거리며 버티고 있었습니다.

어떤 명상이냐구요? '우주의 기운'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심오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숨고르기를 하는 것입니다.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그 생각을 쫒아가 보는 것입니다. 생각이 안나면요? 그럼 더 좋지요. 아랫배, 단전으로 숨을 내쉬고 들이쉬면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어떤 꼬라지로 앉아 있는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만가지 명상법이 있는데 우리 식구의 명상법은 대충 그렇습니다.

'명상에 도가 텄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상중하 단전이 어쩌구 저쩌구 분석하는 '심오한 명상법'은 다 접어두고, 우리집 명상법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저 맘 편하게 앉아 있는 것이지요.

앉아 있다가 스르르 잠을 자는 것입니다. 늘어지게 잠을 잡니다. 땀 흘려 일하거나 공부하다가 밥 잘 먹고 그냥 그렇게 지친 숨을 편하게 내쉬면서 뱃속 편한 생각을 하다가 '자빠져 자는' 것입니다.

어쨌든 명상이라는 것을 하다 보니 아내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꿈자리가 아주 좋아졌다고 합니다. 힘든 꿈보다는 편한 꿈, 나쁜 꿈보다는 좋은 꿈을 더 많이 꾼다고 합니다. 어느 날 밤 명상을 하다 말고 큰 아이 인효가 그럽니다.

"어? 아빠! 이거 봐. 전에는 한 손을 어께 너머로 해서 깍지를 낄 수 없었는데 이젠 잘 돼."
"어? 나두..."
"야, 엄마도 돼는데."
"아빠두 한번 해봐봐."

숨고르기를 시작한 지 1개월쯤 되던 어느 날, 우리 식구 모두가 예전보다 몸이 훨씬 유연해졌던 것입니다.

나는 어쩌다 기분 좋을 때 숨고르기를 하곤 하지만 아내는 요즘 하루도 빠짐없이 명상을 합니다. 꾸준히 명상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예전에 비해 화도 잘 안냅니다. 땅 투기꾼들 때문에 심통 가득한 나를 다독여 주고 있습니다. 불 같던 성격이 눈에 뛸 정도로 느긋해졌습니다.

얼마 전에는 자신의 얼굴이 탱탱해졌다며 이상하다고 합니다. 아내는 살이 쪄서 그렇다고 하는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명상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음자리가 느긋해지고 편해지니 잘 먹게 되고 몸 또한 자연스럽게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 모양입니다.

명상에 재미들린 아내가 얼마 전 부터는 낮에도 '마음 가라앉히기'를 하고 싶다고 하더니 오늘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나섰던 것입니다. 바람은 불었지만 오후의 볕이 좋았습니다. 따사로운 봄볕 아래, 명상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그림 같아서 나는 똥을 푸다 말고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집에 가서 디카 좀 가져와라!"

바위에 앉아 품 잡고 있던 인상이 녀석이 군소리 없이 벌떡 일어섰습니다.

"내가 가지고 올게!"
"사랑방, 컴퓨터 앞에 있을껴."
"알았어!"

녀석은 바람개비처럼 휙 갔다가 다시 획 돌아옵니다. 디카를 건네주고 다시 둠벙 옆 바위 위에 앉습니다. 나는 똥 푸던 삽자루 대신 디카를 들었습니다. 아내와 인효는 나무처럼 앉아 있었고 인상이 녀석은 둠벙 속에 있었습니다.

▲ 둠벙가 바위에 앉아 명상하는 인상이 녀석의 물 그림자.
ⓒ 송성영
그날 밤 아내는 뜬금없이 그럽니다.

"명상이 뭘까?"
"나도 잘 몰라, 똥 푸다가 생각난 것 인디, 명상이란, 거시기, 똥 누고 나면 시원한 기분처럼 그냥 속엣 거 싹 비워내는, 뭐 그런 거 아닐까?"
"나는 명상을 하면서 여유가 많이 생긴 거 같어."

아내 말대로 명상을 다시 시작하면서 아내는 예전보다 여유만만해졌습니다. 당장 땅 투기꾼들에게 떠밀려 보금자리를 잃게 된다 해도 두렵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 식구는 언제 어느 때고 훌훌 털고 가볍게 떠날 수 있지만 땅 투기꾼들과 같은 인간들은 언제나 똥 같은 욕심의 무게에 짓눌려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으니 불쌍하기 그지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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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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