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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으로 돌아 왔었다면 워드는 거지밖에 안 됐을 것.”

미국 수퍼볼 MVP로 우뚝선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가 한국을 방문해서 던진 진심이다. 왜 하인스 워드가 한국에 살았다면 거지밖에 될 것이 없었을까? 그것은 하인스 워드의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그가 단지 흑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다.

그렇다.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으로 미식축구의 종주국에서 최고의 선수가 된 사람을 그의 재능과 삶에 대한 열정이 어떠하든 거지밖에는 할일이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꿈을 펼쳐보지 못하는 사회가 과연 하인스 워드, 더 나아가 많은 ‘혼혈인’들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관심과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우리’들이 하인스 워드로 말미암아 볼썽사납게 ‘혼혈인에 대한 차별폐지’ 운운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 사회의 불치병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한국이라는 사회가 참으로 무섭게도 ‘다른 삶’이 불가능하다는 곳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다른 삶’이 불가능한 아니 백보 양보해서 아주 많이 불편하고 불안한 사회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죽도록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우리보다 못사는 다른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말도 안되는 폭력과 인권유린에 시달리고 있는 이주노동자, 다른 가치관을 가졌다는 이유로 강의실에 설 수 없는 교수, 다른 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대학원 입학시험에서 감점을 당하는 학생, 조금 많은 나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일해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취업준비생, 술을 먹지 않는다고 중요한 정보교류에서 제외되는 사람, 머리를 길렀다고 학생답지 못하다는 비난을 듣는 학생들로 가득찬 나라가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이름 대.한.민.국이다.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그래, 많은 것들에 변화가 있었고 진보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다른 삶을 사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은 만족보다 반성, 자랑스러움보다는 부끄러움이다. 그렇기에 하인스 워드를 통해 혼혈차별금지법이니 뭐니 일시적인 호들갑을 떨게 아니라 다른 삶이 불가능한 우리의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통합’과 ‘효율’의 이름으로 다른 삶을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행정자치부의 전자주민증 사업이다.

▲ 전자주민증 시안
ⓒ 조선일보
4월 14일로 3차공청회를 앞두고 있는 전자주민증의 개요는 이렇다. 현행 주민등록증을 IC칩을 탑재하도록 바꾸고, 이 IC칩안에 주민등록번호와 지문 외에 교통카드, 의료보험증, 금융거래와 공문서발급이 가능한 공인인증서, 경로우대증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정보와 기능들을 넣어서 전자주민증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모든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개인의 모든 정보를 하나의 카드에 다 넣어서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정보인권의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에 행자부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원하는 사람에게만 이런 기능들을 제공할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허구적인 논리이다. 행자부의 전자주민증 장기 발전계획에 이러한 목표들이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자주민증이 발급되기 시작하면 전자주민증을 중심으로 모든 제반 인프라가 구축될 것이기 때문에 전자주민증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큰 불편을 겪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에서 교통카드를 이용해서 버스를 이용하는 것과 현금을 가지고 버스를 이용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사항이다. 그러나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은 현금을 사용하는 사람보다 100원이 저렴하게 버스에 탈 수 있고, 다른 버스로 갈아탈 때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개인의 선택권이 존재한다고 말하며, 바보처럼 현금을 사용하겠는가?

전자주민증을 만들지 않거나, 이를 사용해서 생활을 영위하지 않는 사람들은 매우 불편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전자주민증이 활성화되고 보편화되어 갈수록 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생존이 불가능한 사회가 올 수도 있다.

비록, 전자주민증을 만들지 않는 사람들이 한줌에 지나지 않더라도 이들이 살아가기가 불가능한 사회라면 그 사회는 하인스 워드가 거지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의 ‘계속’일 수밖에 없다. 하인스 워드를 통해 우리가 반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다른 삶이 불가능한 부끄러운 현실에 대한 직시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전자주민증의 도래 앞에 반성의 빈곤함을 절감하는 것은 너무 과민한 생각인가?

대한민국이 수많은 수퍼볼 MVP들을 거지로 만드는 어리석은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전자주민증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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