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인정, 남북 모두 곤경에 빠진다>(<오마이뉴스> 4월 10일자 기사)와 관련하여 일부 독자분들께서 상당한 이의를 갖고 계신 듯하여, 위 기사를 보충하는 글을 다시 쓰기로 한다...글쓴이 주
'그분들'의 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은 시급
위 기사의 기본 취지는, '한국전쟁 및 그 이후 시기에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분들'의 가족 상봉 및 고향 방문을 추진하는 것은 시급하고 바람직하다는 전제하에, 지금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추진하는 '납북자 지원법'과 같은 방식으로는 남북 협력 하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6자회담 정국에서 우리 민족이 미·일에 끌려다니는 빌미를 제공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납북자'라는 표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만한 합리적 근거도 얼마든지 있다. 이것은 필자의 소신에 따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난 2월 23일 금강산 제7차 남북적십자회담 합의서에서 남북 양측이 '한국전쟁 및 그 이후 시기에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분들'을 '이산가족'에 포함시키기로 분명히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합의서 제4조의 내용을 다시 소개하기로 한다.
"4. 쌍방은 이산가족 문제에 전쟁시기 및 그 이후 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에 대한 생사확인문제를 포함시켜 협의·해결해나가기로 한다."
7차 적십자회담에서는 분명히 '이산가족'에 포함
이에 따르면, 남북 양측은 분명히 '그분들'을 '이산가족'에 포함시키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므로 '그분들'과 관련된 문제 역시 이산가족에 준하여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단계로서는 가장 무난한 방법인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이산가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도 더 '유용'하다. 왜냐하면, 그 말 속에는 기본적으로 '민족의 비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에 관한 문제를 '이산가족' 문제로 처리하면, 남과 북 양측이 서로 '모양새'를 갖추면서 얼마든지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납북자'라는 표현은 본질적으로 '이산가족'이라는 표현과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서는 민족적 정서 같은 것을 찾을 수 없고, 과거 냉전시대의 살벌한 분위기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남과 북이 이미 이 문제를 '이산가족' 문제에 포함시키기로 약속했다는 점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남북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지난 2월에는 이산가족 문제에 포함시키기로 해놓고, 이제 와서 '납북자' 문제로 처리하겠다는 것은 한국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표현 하나 때문에 외세에 이용당할 수는 없어
그리고 위의 기사에서 언급하였듯이, 이 문제를 '납북자' 문제로 처리하면 6자회담 정국에서 우리 민족이 미국·일본에 끌려다닐 위험성마저 있다. 잘못하면 미국의 패권전략과 일본의 군국주의 야욕 때문에 민족과 나라를 빼앗길 수도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민족의 분열을 자초할 이유가 있겠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돈을 얼마든지 쓰더라도 '그분들'을 데려오겠다는 식의 발언을 보면서, 이 문제가 과연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인지 하는 의구심을 지울 길이 없었다. 돈이면 뭐든지 될 거라는 자본주의적 발상을 보면서, 아직 가야 할 길이 참으로 멀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납북'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도 모양새 좋은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이제 와서 상대방을 무시하고 '납북자'로 단정 짓는 것도 모양새 좋은 일은 아니다.
남과 북의 적십자회담 대표들이 이 문제를 '이산가족' 범주에 넣기로 합의하였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현명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이산가족' 같은 중립적 표현을 쓰는 것이 남과 북의 진심어린 협력을 이끌어내는 지혜로운 방법이 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개인적 사안이건 국가적 사안이건 간에 '지식'만으로는 문제를 올바로 해결할 수 없다. '지혜'가 지식보다 더 유용할 때도 많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