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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4일 제주에서 열린 제17차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권호웅 단장과 남측 정동영 수석대표를 비롯한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14일 제주에서 열린 제17차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권호웅 단장과 남측 정동영 수석대표를 비롯한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박항구

'그분들'의 고향 방문과 가족 상봉은 물론 시급하지만...

'한국전쟁 과정에서 고향을 잃게 된 분들'의 연령이 이미 70대 이상을 넘어섰기 때문에, 이분들의 고향 방문 혹은 가족 상봉을 서두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또 바람직한 일이다. 그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절박성에도, 통일부의 접근법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납북자'의 존재를 인정할 리도 없거니와, 지금 상태에서 북한이 만약 '납북자'의 존재를 인정하면 남북 모두가 앞으로 미-일의 페이스에 휘말릴 위험마저 있다.

북한은 웬만해선 '납북자' 인정 안할 것

'납북' 사실의 존재 여부를 떠나, 북한이 과연 '납북자'의 존재를 인정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납북자'의 존재를 인정시키기 위해 한국정부가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 해도, 그것은 다 '헛수고'에 불과할 것이다. 그 점은 지난 2월 23일 금강산에서 채택된 제7차 남북 적십자회담 합의서에서도 잘 드러나는 것이다. 합의서의 제4항은 다음과 같다.

"쌍방은 이산가족 문제에 전쟁시기 및 그 이후 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에 대한 생사확인문제를 포함시켜 협의·해결해 나가기로 한다."

여기서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는 표현은 통일부에서 말하는 '납북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이 '납북자'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해 한국과 협력할 수는 있어도, 그 어떤 경우에도 '납북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납북자'에 대해 신중함을 보이는 데에는 최근 북일관계의 경험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2002년 평양 북·일 정상회담 당시 일본의 페이스에 휘말려 '납치자' 문제를 인정한 북한은 지금까지도 그 문제로 일본의 압박을 받고 있다.

일본이 순수하게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줄로 잘못 판단한 북한의 대일(對日) 외교라인이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가 그만 함정에 걸려든 것이다. 일본은 북한이 자국의 요구를 들어주었음에도 아직까지 '납치자'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납치자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는 식의 말을 흘려보내고 있다.

일본인 '납치자' 인정으로 곤경에 빠진 북한

당시 북한이 어떤 식으로 '납치자' 문제를 인정했는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북한은 북일평양선언문(2002. 9. 17) 문건에서는 '납치자' 문제를 직접 인정하지 않았다. 선언문 제3조(일본어판)는 다음과 같이 우회적으로 이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일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현안 문제와 관련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은 일본·조선이 비정상적 관계에 있었을 때에 생긴 유감스러운 문제가 금후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확인한다"

선언문 문건에는 '납치자' 문제가 "일본·조선이 비정상적 관계에 있었을 때에 생긴 유감스러운 문제"로 우회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때에 생겼다. 대일 외교라인의 건의를 받아들인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회담 자리에서 구두로 북한의 책임을 인정했던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것은 오늘날 북한이 일본의 압박을 받게 된 요인 중의 하나다.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이를 빌미로 대북 압박을 가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당시 북한의 대일 외교라인은 충분히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이 있는 북한에 있어서, 지금 통일부 장관이 추진하고 있는 '납북자 지원법'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에 충분한 것이다. 지금처럼 미-일이 소위 '인권'을 빌미로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인권과 연계될 수 있는 '납북자'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북한의 의심을 사고도 남을 만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납북자'를 놓고 사실상 금전 거래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납북자 지원법'은 북한 지도부의 심기를 상하게 하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은 그렇다고 자신들의 명분을 뒤집으면서까지 돈을 받으려 하지는 않는다.

사실, 돈을 제시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는 일이 많음에도, 한국 스스로 매사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 측면이 있다. 한국이 지금처럼 매사를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한국이 써야 할 금액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는 한국의 자업자득일 것이다.

'납북자' 인정하면 미·일의 대북 압박 강화

돈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이고, 북한이 '납북자'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는 데는 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납북자'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앞으로 미국의 대북 압박이 한층 더 명분을 얻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부는 순수한 인도적 차원에서 이 일을 추진할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미국과 일본은 이를 대북 압박의 명분으로 삼으려 할 것이다. '납북자'는 얼마든지 '인권'과 연계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미·일은 이를 빌미로 북한을 '파렴치범'으로 몰며 대북 압박의 강도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핵문제 ▲탈북자 문제 ▲일본인 '납치자' 문제와 더불어 ▲'납북자' 문제까지 대북 압박의 '단골 이슈'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는 미·일의 대북 압박이 '연중무휴'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납북자 지원법'은 한국의 자승자박

'납북자' 문제의 이슈화는 북한에게만 당혹스러운 게 아니다. 한국정부도 이로 인해 외교적 곤경에 처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납북자' 문제가 이슈화되면, 미국정부가 한국정부를 대북 압박에 동원할 수 있는 명분과 구실이 생기게 된다. 한국정부가 '납북자' 문제를 철저히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 역시 '파렴치범' 북한을 돕는 국가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 한국정부는 6자회담과 한반도 정세에 있어서 미·일에게 끌려다니는 처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납북자 지원법'은 한국정부를 스스로 옭아매는 '자승자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납북자 지원법'이라는 '밥상'이 차려지는 그 순간부터 '밥상'의 주인은 미·일이 될 것이다.

한국정부가 '납북자 지원법' 때문에 미·일에 끌려다니게 되면, 미국의 대북 압박이 한층 더 힘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민족공조도 한층 더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정부의 '핵심'은 지금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추진하고 있는 '납북자 지원법'의 적절성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한국전쟁 과정에서 고향을 잃게 된 분들'을 그저 외면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분들의 가족 상봉이나 고향 방문은 신속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다만, 그 방법은 '납북자 지원법'과 같은 식이어서는 안 된다.

'납북자 지원법' 같은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외세의 간섭을 초래하는 빌미만 제공할 뿐이다. 외세의 간섭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이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북한의 협력 없이는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북한의 '비위'를 건드리는 방법으로는 절대로 북한의 협력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추진하고 있는 '납북자 지원법'은 자칫하면 남과 북 양쪽을 외교적 곤경에 빠뜨리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장관 개인의 '충심'이 아무리 지극하다 하여도, 그것만으로 중대한 '과오'를 씻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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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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