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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지난 10일 <중앙일보>와의 취임 1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토지임대 건물분양 방식이 한국인 정서에 맞지 않다며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지난 10일 <중앙일보>와의 취임 1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토지임대 건물분양 방식이 한국인 정서에 맞지 않다며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이 취임 1주년 기념으로 지난 9일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을 통한 아파트 공급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인터뷰에서 추 장관은 송파 신도시에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한국 정서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토지 가격이 오르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도입 불가' 의사를 피력했다.

추 장관은 인터뷰에서 우선 "과거 경기 상황에 따라 건설·부동산 규제가 냉온탕을 오가다 보니 정책이 신뢰를 얻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적절한 판단으로 보인다. 주지하듯이 정부 정책, 특히 경제와 관련한 정책, 그 중에 무엇보다도 부동산 관련 정책은 정책 추진에 대한 경제 주체들의 신뢰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 장관이 "한국적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근거 아닌 근거를 들며 송파 신도시에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을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발언은 별다른 논리를 수반하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미덥지 않게 들린다.

아파트 공급 방식에는 토지와 건물을 임대하느냐 분양하느냐에 따라 세 가지 적용 가능한 방식이 있다. 첫째는 토지와 건물 모두를 분양하는 방식이고, 둘째는 토지는 임대하되 건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이며, 마지막은 토지와 건물 모두를 임대하는 '공공임대' 방식이다.

추 장관의 "한국적 정서" 발언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공급 정책에 한 번도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을 적용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인 듯싶다. 따라서 추 장관의 말대로라면 이들 중 토지와 아파트 건물 모두를 분양하는 첫 번째 방식과 모두를 임대하는 세 번째 공공임대 방식, 이 두 가지가 '한국적 정서에 맞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식은 단순한 정서 차원이 아니라 제도상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다른 주택공급방식들이 문제 더 많아

우선 토지와 아파트를 모두 분양하는 방식은 많은 문제점들을 낳는다. 특히 근본적으로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개인의 호주머니 속에 그대로 넘겨주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부동산 가격의 급상승을 차단하기는커녕 이를 방조하고 온갖 비효율과 부정의를 양산한다.

그리고 토지와 아파트 건물 모두를 임대하는 공공임대 방식의 문제점은 토지뿐만 아니라 건물도 임대하기 때문에 개인의 사유재산적 유인이 사라져 버린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아파트 건물에 대한 개인의 관리와 보호노력은 자연스럽게 약해지므로 건물이 쉽게 낙후되고 심지어는 단지 자체가 슬럼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 토지뿐만 아니라 건물까지 임대하는 것은 효율성의 측면에서 지나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추 장관의 인터뷰에 비추어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는(?)' 두 가지 아파트 공급 방식을 고려해 본 결과 이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안고 있음이 명백히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들 방식만을 고집할 것인가?

반면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은 앞의 두 방식에서 표출되는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일거에 차단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식이다. 우선 토지는 개인에게 매각하지 않고 임대료를 거두기 때문에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 도입 불가의 근거로, 추 장관은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 하에서 "토지 가격이 오르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도 언급한 점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열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언의 진의를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으나, 부디 토지 가격이 오르면 임차인의 저항을 야기하여 임대료를 쉽게 올릴 수 없다는 뜻은 아니길 바랄 따름이다.

만일 이러한 뜻으로 한 발언이었다면 "아예 불로소득을 환수하지 않겠다"는 의미와 그다지 다르지 않고 이렇게 되면 결국 '한국적 정서'에 맞는 방식은 불로소득을 환수하지 않는 제도라고 주장한 것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정부가 보여 온 부동산 정책의 방향성과는 완전히 배치(背馳)되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인터뷰 전반에 추 장관이 그토록 강조한 정책의 신뢰 확보도 마땅히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아니라 임차인을 배려하여 임차인에게 예측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불로소득을 일소할 수 있는 확실한 제도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다. 세부적인 조정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령 10년 단위로 임대료를 조정한다는 조건을 계약서에 명시한다든가 10년 이내에도 예외적인 급격한 환경 변화가 생기면 조정 가능하다는 단서 등을 달면 그만이지, 빈대 한 마리 잡겠다고 초가삼간 다 태울 필요는 없는 일이다.

시행 여부와 관련해서도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은 우리나라에만 도입되지 않았을 뿐이지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에서는 적절하게 적용됨으로써 충분한 효과를 누리고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특히 싱가포르의 경우 본 방식을 근간으로 한 주거 정책 덕택에 많은 국가적 혜택을 누리고 있음을 쉽게 목도(目睹)할 수 있다.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이 이처럼 분명하고도 확실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도입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 정서에 맞지 않아 도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든지, 혹은 "토지 가격이 오르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식의 막연한 우려를 근거로 애초에 논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일국의 정책집행자가 취할 것으로 보기에는 매우 아쉬운 태도라 아니할 수 없다.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이 현재의 국면에 대한 해답

아파트 공급정책이 소기의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투기적 가수요 억제를 통한 불로소득의 우선적인 차단이 기본 전제라 할 수 있다. 불로소득이 차단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한 경제 교과서적인 논리만 가지고 섣불리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폈다가는 오히려 투기적 가수요만 충족시키고 부동산 가격은 오히려 상승 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나오는 통계들을 고려해 보면 강남권을 비롯한 전반적인 아파트 공급 물량은 충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공급 정책은 아직까지는 시기적으로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발표된 '송파신도시'를 비롯한 각종 공급대책에 대해서는 효과적으로 시행할 방법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투기적 가수요를 적절히 차단함과 동시에 토지불로소득을 환수하면서 안정적으로 아파트 공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을 통해 아파트 공급정책을 실시할 경우 토지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은 임대료를 통해 적절히 환수할 수 있는 동시에 건물은 개인의 것으로 분양함으로써 사유재산제가 갖는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음은 앞에서 충분히 밝혔다. 다시 말해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이 현재의 국면에서 공급정책을 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송파신도시 예정지의 80% 이상이 국유지임을 감안할 때 더욱 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추병직 장관의 철학 부재가 아쉽다

이 정도면 재론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이쯤 되니 한 나라 건설교통의 수장을 맡고 있는 관료의 일관된 정책 철학의 부재(不在)에 대해 아쉬움이 느껴진다. 앞에서 확인한 내용들을 이해하는데 그다지 대단한 이론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혹시 정책을 위한 일관된 경제 논리가 아닌 다른 관점에서의 논리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상대당의 지방선거 후보 경선자가 비록 변형된 것이긴 하지만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을 통한 아파트 공급을 선점적으로(?) 선언하였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모두가 주지하고 인정하듯이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국민이어야 한다. 이에 재론의 여지가 있는가. 그렇다면 만일 어떠한 정책이 당리당략과 한 발 떨어져 생각해 볼 때 국민을 위하여 타당한 것으로 인정된다면, 뒤돌아 볼 필요 없이 집행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정책 집행자의 좀더 멀리 보는 눈과 널리 듣는 귀가 아쉽다.

덧붙이는 글 | 조영민 기자(ymcho82)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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