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입에서 벚꽃을 만났다. 벚꽃은 하얗다. 누군가 눈처럼 하얗다고 말한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말이 맞는다면 벚꽃은 어찌보면 우리들이 아직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지난 겨울 그 하얗던 눈의 추억으로 피는 꽃이다.
분홍빛 진달래가 나의 걸음을 멈춰세웠다. 그리고는 말한다. "눈의 추억은 버려. 이제 세상을 분홍빛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진달래의 분홍빛은 화사하다. 나는 그 분홍빛의 따사함에 녹아들어 미련없이 눈의 추억을 버렸다.
눈의 추억을 버리는 순간, 그때부터 벚꽃은 그냥 하얀 꽃이다. 하얀 꽃은 빛처럼 환하다. 가로등이 숙면에 든 한낮의 남산길에선 하얀 꽃이 길을 하얗게 밝히고 있었다. 그 길을 걸어가면 남산의 길은 정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깊숙이 속으로 속으로 들어간다.
분홍과 더불어 노랑도 봄의 빛깔이다. 개나리가 이끌고 오는 그 빛은 재잘재잘거린다.
꽃들은 모두 가지를 타고 올라가 하늘 높은 곳에서 '펑펑펑' 꽃망울을 터뜨렸다. 한낮에 보는 폭죽의 축제 같았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오호, 이런이런. 남산의 한가운데서 나는 이제 꽃에 갇혔다. 꽃에 갇히는 것은 꽃의 가슴에 갇히는 것이다. 꽃의 가슴은 부드럽고 달콤하다. 꽃은 그 자태와 색깔 그리고 향기로 우리들을 마취시킨다. 꽃에 마취되면 우리들의 의식은 몽롱해지고 그 가슴에 갇혔을 때 행복하고 황홀하다. 나는 갇혀 있으면서도 갇혀 있음을 모른다. 남산의 한가운데서 나는 그렇게 꽃에 갇혔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꽃들은 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지를 따라 걷고 있다. 가지가 휘어지면 꽃들도 그 굴곡을 따라 휘어지며 가지의 길을 함께 따라간다. 그 뿐만 아니다. 꽃들은 내가 걸어가면 나를 따라온다. 나는 한자리에 머물던 걸음을 일으켜 세워 슬슬 다시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길을 내내 꽃들이 함께 해주었다.
꽃들과 함께 걸기 시작하면서 슬슬 장난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장난질을 치다보니 꽃은 꽃이면서 동시에 열매이기도 하다. 같은 꽃이라도 피어나면 꽃이지만 주렁주렁 달려있으면 그때는 열매이다. 맛은 어떨까? 따먹어 보진 않았다.
시골서 자란 내게 있어 이 하얀 꽃, 그러니까 벚꽃은 항상 개구리알을 연상시켰다. 서울서 자란 사람들은 그 개구리알의 자리에 팝콘을 대신 채워넣곤 했다. 나는 팝콘보다는 개구리알의 상상력을 더 좋아한다. 벚꽃이 개굴개굴 울어대는 상상으로 키득키득 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키득거리며 꽃과 장난쳤다.
내려와서 올려다보니 남산타워가 꽃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 남산은 산이 아니라 꽃의 바다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 남산은 높이와 깊이를 동시에 갖춘 산인 셈이다. 나는 산을 오르면서 바다 속 깊은 곳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바다를 빠져나올 때는 장난의 즐거움도 있었다. 그래도 옷은 하나도 안 젖고 말짱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