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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초입에서 벚꽃을 만났다. 벚꽃은 하얗다. 누군가 눈처럼 하얗다고 말한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말이 맞는다면 벚꽃은 어찌보면 우리들이 아직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지난 겨울 그 하얗던 눈의 추억으로 피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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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진달래가 나의 걸음을 멈춰세웠다. 그리고는 말한다. "눈의 추억은 버려. 이제 세상을 분홍빛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진달래의 분홍빛은 화사하다. 나는 그 분홍빛의 따사함에 녹아들어 미련없이 눈의 추억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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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추억을 버리는 순간, 그때부터 벚꽃은 그냥 하얀 꽃이다. 하얀 꽃은 빛처럼 환하다. 가로등이 숙면에 든 한낮의 남산길에선 하얀 꽃이 길을 하얗게 밝히고 있었다. 그 길을 걸어가면 남산의 길은 정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깊숙이 속으로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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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과 더불어 노랑도 봄의 빛깔이다. 개나리가 이끌고 오는 그 빛은 재잘재잘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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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모두 가지를 타고 올라가 하늘 높은 곳에서 '펑펑펑' 꽃망울을 터뜨렸다. 한낮에 보는 폭죽의 축제 같았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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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이런이런. 남산의 한가운데서 나는 이제 꽃에 갇혔다. 꽃에 갇히는 것은 꽃의 가슴에 갇히는 것이다. 꽃의 가슴은 부드럽고 달콤하다. 꽃은 그 자태와 색깔 그리고 향기로 우리들을 마취시킨다. 꽃에 마취되면 우리들의 의식은 몽롱해지고 그 가슴에 갇혔을 때 행복하고 황홀하다. 나는 갇혀 있으면서도 갇혀 있음을 모른다. 남산의 한가운데서 나는 그렇게 꽃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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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꽃들은 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지를 따라 걷고 있다. 가지가 휘어지면 꽃들도 그 굴곡을 따라 휘어지며 가지의 길을 함께 따라간다. 그 뿐만 아니다. 꽃들은 내가 걸어가면 나를 따라온다. 나는 한자리에 머물던 걸음을 일으켜 세워 슬슬 다시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길을 내내 꽃들이 함께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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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과 함께 걸기 시작하면서 슬슬 장난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장난질을 치다보니 꽃은 꽃이면서 동시에 열매이기도 하다. 같은 꽃이라도 피어나면 꽃이지만 주렁주렁 달려있으면 그때는 열매이다. 맛은 어떨까? 따먹어 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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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서 자란 내게 있어 이 하얀 꽃, 그러니까 벚꽃은 항상 개구리알을 연상시켰다. 서울서 자란 사람들은 그 개구리알의 자리에 팝콘을 대신 채워넣곤 했다. 나는 팝콘보다는 개구리알의 상상력을 더 좋아한다. 벚꽃이 개굴개굴 울어대는 상상으로 키득키득 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키득거리며 꽃과 장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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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와서 올려다보니 남산타워가 꽃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 남산은 산이 아니라 꽃의 바다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 남산은 높이와 깊이를 동시에 갖춘 산인 셈이다. 나는 산을 오르면서 바다 속 깊은 곳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바다를 빠져나올 때는 장난의 즐거움도 있었다. 그래도 옷은 하나도 안 젖고 말짱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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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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