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탐사선이 동해에 떠 있다. 그들이 어느 수준까지 '액션'을 취할지는 두고봐야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사태가 격화될수록 정작 손해를 입는 쪽은 제3자인 '미국'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충실한 '동북아 파트너'인 일본은 이번 사태 때문에 결과적으로 미국에 엄청난 '불효'를 저지르는 셈이다.
일본 역시 처음에는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산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종래에 '조용한 대응'을 기조로 해왔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예상 밖의 강수를 둠에 따라, 일본으로서는 더이상 섣불리 행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물러서자니 국가 위신 문제가 걸리는 상황이 된 셈.
강경한 한국, 난처해진 일본
지금 일본정부가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은 한국 정부는 어차피 '강경한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국 여론이 강경할 뿐만 아니라 정부 역시 '강경한 대응'으로 태도를 바꿔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 밀리게 되면 한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다. 안그래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국민적 신망을 잃어가고 있는 한국 정부는 독도에서마저 밀리면 더이상 갈 곳이 없다. 대선을 1년8개월 정도 앞둔 상황에서, 이번에 어설픈 대응을 하면 노무현 정부는 '다음'을 기약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한국 정부가 여기서 쉽사리 물러날 수 없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사태 악화를 피하려거든 일본 정부가 물러나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의 '브레이크'는 이미 상당 정도 여론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한국 정부가 혹시라도 예전처럼 브레이크를 밟지 않을까'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이대로 상황이 더 악화되면 일본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동북아 패권에 중대한 흠집을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이는 미국의 역내 패권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의 대외전략에도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동해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문제가 불거진 4월 14일 시점에서 볼 때, 일본의 도발은 미국의 역내 전략을 도와주는 측면이 있었다. 다름 아닌 6자회담 문제와 관련해서다.
미국이 반 년 가까이 금융제재를 했음에도 북한은 굴복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달 9일부터 12일까지 도쿄에서 열린 동북아시아협력대화에 참석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차관)은 "우리는 6자회담이 늦어져도 나쁘지 않다"며 큰소리를 치기까지 했다.
상황이 그대로 더 악화됐다면 미국으로서는 6자회담을 계속 유지할 만한 에너지를 잃을 가능성이 있었다.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4개국을 계속 6자회담에 묶어두는 일도 벅차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도발 덕분에 6자회담은 잠시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미국은 '6자회담 파국'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일단 시간을 벌었다. 이 정도까지는 일본이 '효도'한 셈이다.
미국, 독도 도발로 시간 번 건 좋았으나...
그러나 한국이 뜻밖의 태도를 보임에 따라 상황은 일본이 의도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사태가 계속 악화되면 당사자인 한국과 일본도 에너지를 소모하겠지만 누구보다도 큰 손실을 보는 건 미국이 될 것이다.
미국의 기본적인 동북아 전략은 '미국·일본·한국이 연대하고 가급적 중국·러시아까지 끌어들여 북한을 압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일관계가 계속 악화되면 이 전략에 중대한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제적 관심이 6자회담에서 다른 것으로 전환된 것까지는 미국에게 좋았다. 그러나 미국의 파트너인 한국과 일본이 지나치게 싸우는 것은 북한을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하며 이는 대북 압박을 목표로 한 미국 주도의 국제 연대에 분열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정부는 주권적 대응을 할 것이기에 일본이 도발을 멈추지 않는다면 한·일관계는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일본을 묶어 북한을 압박하려던 미국의 전략이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위성국 간에 분열이 생긴다는 것은 미국의 역내 지도력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는 미국의 '은덕'을 한 몸에 입은 일본이 미국에 '불효'를 저지르고 미국을 곤경에 빠뜨리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일본의 국제적 위상에까지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일본은 확실히 외교적으로 취약한 나라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사실 역사적으로 일본은 '외교 박약아'였다.
일본은 전근대 시대에는 한반도의 '방해' 때문에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을 기회가 없었다. 근대(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에 접어들면 조선·중국이 기본적으로 일본을 불신했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늘 소외됐다. 그럼에도 일본이 20세기 초반에 한반도와 만주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서구열강의 협조와 일본의 군사력 덕분이었다.
일본이 '외교 박약아'라는 점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지금도 역내 국가들과 끊임없는 분쟁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는 잘 드러난다.
일본인들은 동북아 이외 지역에서는 자신들의 평판이 좋다고 자평하지만 이는 일본의 외교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일본이 '돈 봉투'를 많이 뿌리기 때문에 생긴 결과일 뿐이다. 일본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부딪힐 필요가 없는 나라들의 입장에서는 '돈 봉투'를 뿌려대는 일본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일본이 한일 관계에서마저 실패한다면, 이는 일본의 외교력 실태를 드러내는 것 이상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일본 해상보안청 탐사선이 독도의 단단한 바위에 부딪쳐 파손되기라도 한다면 이는 단순히 선박의 파손에 그치는 게 아니다. 일본 외교의 파손, 나아가 미국의 역내 전략 파손까지 이어질 것이다. 독도에 근접할수록 일본이 미국에 '불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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