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안(가명, 고3)이는 일주일에 두 번, 오후에 등교를 한다. 월요일과 목요일, 점자(점으로 이루어진 맹인용의 글자. 두꺼운 종이 위에 도드라진 점들을 일정한 방식으로 나타내어, 맹인이 손가락으로 만져 읽을 수 있도록 하였음)를 배우러 복지회관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는 3급 시각장애인이다. 시력이 아예 없는 상태는 아니지만 거의 사물을 분간할 수 없다. 교육부(학교)에서 쓰는 공식 용어로는 '특수교육대상자'.
명안이가 다니는 학교는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가 아니라 비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일반학교이다.
장애아(주로 시각장애아를 의미하나 꼭 그렇지는 않다)를 특수학교에 격리 수용하여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학교에서 일반아동과 공학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통합교육'의 일환으로 명안이는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를 선택했다.
그러나 정작 학교에는 명안이를 위한 마련된 교육 환경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안전하게 교내를 다닐 수 있는 시설도 없고, 시험과 관련한 적절한 조치, 그 밖의 모든 것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학교는 순식간에 위험이 도사린 무서운 곳으로 변하고 만다. 모두가 명안이 혼자서 인내하고 감당해야 할 뿐이다.
"야자 시간엔 위험해서 교실 밖을 거의 안 나가요"
그저 같은 반 친구들이 명안이의 손을 잡고 함께 다니거나 안내를 해 주는 정도가 최선의 방법이다. 명안이의 유쾌한 성격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다행히 친구들은 명안이와 함께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학교 안의 길들은 이제 기억이 다 돼 있어서 혼자서도 넘어지지 않고 웬만큼은 다닐 수 있어요. 하지만 밤(야간자기주도학습, 일명 '야자')에는 조명 말고는 빛이 없으니까 위험해서 교실 밖을 거의 안 나가요. 친구들한테 자꾸 부탁하기도 미안하고…."
명안이는 '보는 힘'으로 학교 안의 곳곳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힘'으로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밤이 되면 '기억의 힘'은 동화 속 이야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3학년이 되면서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기에 생각 끝에 더 늦기 전에 점자라도 배워두는 것이 낫겠다 싶어 명안이는 장애인 복지회관엘 나가기로 했다. 학교에서는 이를 '배려'해 주는 것으로 '성의'를 보였다.
하지만 정작 해결된 문제는 아무 것도 없다. 학교는 명안이에게 어떤 '배려'를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 하고 그러기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구체성은 없이 장애 학생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차별의 사회적 폭력 없애기까지 얼마나 더 상처가 필요한가?
들리는 말로는 "차별하지 않고 학교에 받아주는 것만 해도 어디냐"라거나 "장애인이 특수학교에나 갈 것이지 왜 일반학교에 와서 모두를 죄인 취급 받게 하느냐"는 등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볼 멘 소리를 늘어놓는 일부 학교, 일부 교사들도 있다고 한다.
그들이 사람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한 번이라도 고민했다면 그런 천박한 발상에서 비롯된 발언을 함부로 내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말들이 장애인 '차별'을 넘어 무서운 사회적 폭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그들이(어쩌면 우리 모두가) 알게 되기까지는 아직 더 많은 상처가 필요한 것일까.
지난 14일, 장애 학생의 차별없는 교육권을 요구하며 37일째 단식농성을 벌이던 장애인교육권연대 측과 만난 자리에서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유치원과 고교과정에서 장애인 의무교육의 내용을 담은 특수교육진흥법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총리의 약속 이행은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지만, 더욱 다양한 영역에서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야한다는 국민적 인식의 확산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하다.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꿈인 명안이. 제대로 된 교육환경 속에서 온전한 혜택을 누려보지도 못했으면서 타인에 대한 아름다운 배려를 생각하는 그를 보며, 그가 꿈꾸고 만들어 갈 세상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편을 갈라 가두지 않고 넉넉하게 감싸며 함께 나누어 가지는 행복의 나라였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