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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형위의 위장은 단사다. 반중유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그 내용은 틀린 것이 거의 없소. 송소저는 분명 위험했소. 옥형위의 이개조가 그녀를 호위하고 있었지만 그들 중 살아 돌아간 인물은 아무도 없을 거요.”
“.............!”
“또한 이가장 역시 지금쯤은 폐허로 변한지 오래되었을 것이오. 송소저 역시 그곳으로 갔다면 지금까지 살아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소. 이미 그곳에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이나 말이오.”
“과연 그럴까? 자네 역시 풍철한을 모르는군. 사람들은 간혹 풍철한을 보며 오해를 한다네. 거구에 그저 덤벙대는 인물로만 알고 있지. 기껏해야 검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네. 허나 그것이 그가 무서운 점이네.”
“.............?”
“그는 매우 치밀하지. 누구보다도 치밀하다네. 그는 자신 없는 일에 절대 뛰어드는 법이 없네. 수없이 확신을 가질 때 뛰어들지. 더구나 멍청스럽게 자신을 공격해 오는 자들이 자신보다 강함을 알면서 기다리는 만용 따위는 그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네. 그가 만약 자신이 없었다면 도망을 쳤을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그곳을 공격한 자들이 오히려 당했을 것이네.”
반중유는 미심쩍은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이 보아온 풍철한이 그런 인물이라곤 생각해 보지 않았다. 더구나 이가장에 대한 공격은 과다할 정도의 전력이 투입된 것이어서 설사 풍철한이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 해도 그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곳을 공격한 인물들을 몰라서 하는 소리요. 오행기 중 흑룡기와 칠로단 중 삼로단이 가세했소. 더구나 천지회 고수 사십여 명이 그곳 공격에 투입되었단 말이오.”
조국명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흑룡기가 무엇인지, 칠로단 중 삼로단이 어느 정도의 전력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반중유의 태도로 미루어보아 만만치 않은 전력이었을 터였고, 거기에 천지회의 사십 명 정도 고수가 투입되었다면 매우 어려운 싸움이었을 것이다. 풍철한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반중유가 나직했지만 따지듯 말을 이었다.
“대주 역시 본인을 추궁할 자격이 있소? 짐작이지만 대주는 이미 모든 정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형위장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이곳까지 왔소.”
조국명의 입가에 마른 미소가 걸렸다. 약간 비웃는 듯한, 그러면서도 매우 흥미롭다는 기색이었다.
“하루가 지나기 전에 눈치는 챘지. 하지만 어리석게 전서를 보내고 어쩌구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 모르는 척 따라오면 뭔가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정주로 향한다고 하기에 이 곳 손가장을 생각했다네. 이가장을 탈출한 모용정(慕容姃)과 독접(毒蝶) 호낭자(胡娘子)가 이곳으로 스며들었음을 확인했거든.”
속이고 속는 것이다. 서로의 의중을 간파했고 그것을 서로 적절하게 이용했을 뿐이다. 반중유가 고개를 끄떡였다. 자신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다만 그의 임무는 어쨌든 송하령을 이곳으로 데려오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있어.”
“무엇이오?”
“왜 균대위를 배반했는가? 무엇이 자네를 균대위까지 배반하도록 만들었는가?”
그러자 반중유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반문했다.
“그러는 대주는 어떻소? 대주께서는 조금 더 솔직해 보시는 게 어떻소? 대주는 배반하지 않았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소? 본인에게 그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
그 말에 조국명은 내심 뜨끔했다. 이 자가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인가? 허나 그는 노련하게 표정을 변화시키지 않고 다시 물었다.
“이곳이 본거지인가? 이곳에 모용화천이 있는 것인가?”
“어차피 대주의 목적도 송하령 소저를 이곳으로 데려오는 게 아니었소?”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겠지. 역시 이곳 손장주는 의심이 가는 인물이었어. 손장주는 어느 정도 위치에 있나? 비겁하게 주모를 납치해 무슨 수작을 꾸미려 하는 것이지?”
그 때였다. 밖에서 걸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수작을 부리려는 것은 조국명 바로 자네이지. 노부는 수작을 부린 적이 없어.”
이미 방문은 열렸고, 말이 끝나기 전에 손불이가 들어왔다.
“드디어 모습을 나타내셨소?”
조국명은 전혀 당황함이 없는 기색으로 말을 되받았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정식으로 인사를 하는 게 좋겠군.”
손불이는 망설임 없이 조국명의 맞은편 의자에 몸을 걸쳤다. 여유 있는 모습이었지만 조국명은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밀려들어 헛바람을 집어 삼킬 정도였다. 갑작스럽게 일개 상인인 손불이가 아니라 일대종사의 위엄이 물씬 풍기는 무림인처럼 보였다.
“노부는 한 평생 손불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모용화천이라는 사람이네. 천지회 회주 중 하나이기도 하고 또한 천동의 동주이기도 하지.”
조국명은 갑자기 둔기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모용화천이 손불이였다니..... 더구나 천동이라니....? 모용화천이 천동의 동주라니 이 무슨 말인가? 갑작스런 사실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균대위 소속 요광대(搖光隊)를 맡고 있는 대주 조국명이오.”
조국명은 정신을 가까스로 수습하며 포권을 취했다. 적이지만 이제 일개 상인이 아니라 천동의 동주요, 천지회 회주의 신분이다. 예의를 갖추어 주는 것이 도리. 손불이는 여전히 느긋한 미소를 띠었다.
“자신의 신분에 대해 그거 말고 덧붙일 생각은 없는가? 노부는 모두 밝혔다네.”
무엇을 더 추궁하고 있는 것일까? 일순 조국명이 당황한 기색을 떠올렸다. 분명히 손불이는 뭔가를 알고 있다. 어떻게 안 것일까? 아니 손불이가 이 음모의 주역이라면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할지 몰랐다. 조국명이 머뭇거리자 손불이가 얼굴을 굳혔다.
“스스로 자신을 상대할 가치가 없는 인간으로 만들 셈인가? 어차피 밝혀져야 할 것이라면 떳떳하게 말하는 것이 금의위(錦衣衛) 장군이자 비원(秘苑) 소속 비영대주(秘影隊主)가 취할 태도가 아닌가....!”
알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내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면밀하게 조국명의 과거와 지금까지 살아 온 세월을 되돌아 볼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어떻게 알았소?”
“신검장주, 아니 비원의 삼대통수(三大統帥) 중 한 명인 풍철영이 자신의 동생보다 더욱 믿는 자네라면 충분하지 않은가?”
“...........!”
“이번 자네의 임무는 역시 송하령 그 아이를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었지. 결국 지금까지 황실과 비원에서 이용했던 담천의 마저도 우리 손을 빌려 죽이려 말이야....... 추악한 네 놈들이 과거에 그의 부친을 처리했던 것처럼 말이야......”
손불이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는 마치 조국명을 꾸짖듯 딱딱 부러지는 어조로 말했다. 조국명의 안색이 붉어졌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손불이를 노려보았다.
“어디 있나? 비원의 주력은 어디에 머리를 처박고 숨어있는 것이지? 부친을 이용해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막을 모르는 자식까지 이용해 균대위를 움직이게 하고, 제마척사맹인가하는 무림맹을 만들어 우리와 상잔(相殘)하게 한 후에 모습을 드러낼 셈인가? 그 와중에서 성가시고 귀찮은 자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나중에 무슨 장군이네, 공신이네 하면서 시호(諡號)나 내려주고 끝내려는 속셈이겠지.”
손불이는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조국명은 이를 악물며 외쳤다.
“담명 장군을 죽인 것은 분명 당신이오. 그 사실까지 남에게 전가시키려 하지 마시오.”
손불이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 인정하지. 균대위가 존재하는 한 노부의 꿈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했어. 더구나 균대위 수장을 물러난 뒤에도 균대위의 인물들은 그의 말 한마디에 목숨을 바칠 수 있을 정도였지. 노부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죽이고 싶었어. 그리고 그 사실을 꿰뚫고 있던 비원... 바로 네 놈들이 그 기회를 제공했지. 결국 노부도 네 놈들에게 이용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그 후에 얼마나 후회했는지 알아?”
손불이는 분노하고 있었다. 그의 음성이 점점 높아가고 있었다.
(제 96 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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