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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고향집에 돌아온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단 오랜 여정에 지친 몸을 편히 쉴 수 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곧 올 거라는 말을 들은 것 때문만도 아니었다. 이곳은 그녀가 가슴 속 깊이 사랑을 담았던 바로 그곳이었다.
피가 배어 나오는 상처에 자신의 속치마를 찢어 동여매 주던 일. 어떻게 음식을 먹을지 몰라 가만히 앉아 있던 그 사람을 위해 따가운 시선에도 그의 접시로 옮겨주었던 일.
이른 새벽 정원 옆에 바위처럼 앉아 물안개를 보고 있던 그의 뒷모습. 고독과 알지 못할 분노에 자조와 냉소가 흐르던 그의 깊은 눈. 자신의 몸에 박힌 독침을 거침없이 입으로 빨아내 주던 그 사람. 그 상처가 그의 분노로 인하여 오히려 미안한 마음마저 가졌던 그 때. 갑작스런 현진도사의 공격에 마음 졸였던 일.
바로 여기 손가장에서 있었던 일들이었다. 정고헌(庭睾軒) 연못가에 앉아 물끄러미 어둠에 잠긴 물을 바라보니 새록새록 그 사람의 모습이 스치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았고, 자신의 마음도 확인했던 곳이었다.
손가장의 장주 손불이는 전과 다름없이 자신을 반겨주었다. 그리고 전과 다름없이 정고헌을 내주었다. 더구나 손불이의 아내 경여는 불편한 몸임에도 저녁식사를 같이했고, 송하령이 아기를 가진 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매우 부러워했다. 언제까지라도 손가장에 머물러 있어도 좋다는 말을 하면서… 두 분 모두 좋은 분들이었다.
나중에… 그 사람과 같이 이렇게 큰 집은 아니더라도, 아니 그녀가 얼마 전 들렀던 소주의 담가장에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원 한쪽에 연못을 파고 난간을 걸쳐 놓으면 더 좋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아니 그 어디라 해도 좋았다. 그 사람과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초막인들 어떠랴!
그녀는 무의식중에 품속에 있는 금낭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그 안에는 그녀가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들이 들어 있었지만 그녀는 오직 하나 노리개를 찾아 그 감촉을 느꼈다. 그것은 어느 날부터 찾아온 그녀의 버릇이었다.
"언니… 이것은 어머니가 언제나 가슴에 달고 계셨던 노리개라 했어요. 평생 어머님을 자상하게 돌보지 못한 아버님이 어머님께 주신 유일한 것이라 들었어요. 그래서 어머님은 다른 것보다 이것을 유독 좋아하셨다 해요."
담소혜가 준 물건이었다. 오빠를 원망하거나 누구를 탓하지 않은 여자였다. 오히려 서먹서먹한 송하령을 배려하고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더구나 아기까지 가진 사실을 알자 아예 송하령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정해 주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유독 아꼈던 물건을 송하령에게 준 것은 담가장의 안주인이 그녀라는 의미였다.
"언니…!"
생각에 깊이 잠겨 있던 송하령은 뒤에 누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서가화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어맛…!"
손에 들려있던 금낭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경사진 정원석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 연못가로 빠져 들어갔다. 송하령은 급히 상체를 구부리며 손을 뻗었다. 다행이었다. 비록 물에는 빠졌지만 금낭이 손에 잡혔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팔소매에 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미… 미안… 놀래키려고 한 것은 아닌데…."
서가화가 당황하며 변명했다. 분명 아기를 가진 송하령을 놀라게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니었고,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다가온 것도 아니었다. 단지 깊이 생각에 잠겨있던 송하령이 스스로 놀란 것뿐이었다.
"아니야… 괜찮아…."
송하령은 소매와 금낭에서 떨어지는 물을 털면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 혼이 나간 사람 같아… 또 그 사람 생각하고 있구나?"
전에도 서가화는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지금 송하령에게 서가화는 정말 고마운 존재다. 아마 서가화마저 곁에 없었다면 견디지 못했을지 모른다. 송하령은 대답 대신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금낭을 열었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혹시나 떨어지면서 무언가 빠진 것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서가화가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떨어뜨렸어?"
"응… 물에 빠진 걸 건졌어."
"다행이네… 또 만지작거리고 있었구나?"
송하령이 꺼낸 든 것은 비취로 만든 노리개였다. 금색 수실이 달린 비취에는 '복(福)' 자가 섬세하게 양각되어 있었다. 수실에 물기가 느껴졌지만 그래도 아무 이상이 없어 다행이었다. 그녀는 양손으로 수실의 물기를 조심스럽게 스며 나오게 했다. 아무래도 수실이 상하지 않게 완전히 말리려면 바람에 자연적으로 말라야 할 것 같았다.
"……!"
그녀는 노리개를 놓고 다시 금낭 안의 물건을 꺼내다가 멈칫했다. 그녀의 얼굴에 당황이 스쳤다. 손에 잡혀 나온 한지(漢紙)는 물에 젖어 찢어진 조각이었다.
(안돼…!)
그녀는 속으로 외쳤다. 그리고 금낭 안에 든 한지 조각을 찾아 조심스럽게 꺼냈다. 다행스럽게 조각은 모두 찾았지만 그녀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눌러 물기를 짜냈다. 그리고 접혀진 한지조각을 더욱 세심하고 조심스런 움직임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선명한 붉은 색깔에 물들어 있는 하얀 한지. 바로 사부 귀진자가 그녀를 위해 만들어 준 부적이었다. 이미 붉은색 주사(朱砂)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번져 있었고, 만질수록 풀어지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 왔다. 사부께서 반드시 몸에 지니고 있으라 신신당부하셨는데… 절대 몸에서 떼어내거나 훼손시키지 말라고 하셨는데…. 불현듯 알지 못할 불안감에 그녀는 가늘게 몸을 떨었다.
"언니… 그런데 이상하지? 손가장의 분위기가 전하고는 확실히 달라…."
송하령의 변화를 알지 못하고 조잘대는 서가화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녀는 당황하고 있었다.
송하령이 당황하는 그 시각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방 안에서도 당황스런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은 조국명과 그의 수하인 요광대(搖光隊) 수석조장인 반중유(潘重愈)였다.
반중유는 나이가 사십대 전후로 보였는데 떡 벌어진 어깨와 호리호리한 몸매가 힘과 민첩함을 두루 갖춘 인상을 주었다. 더구나 날카로운 눈매와 두툼한 입술이 강인하다는 느낌도 주었다.
"……!"
조국명의 얼굴이 굳어있었다. 그는 앞에 앉아있는 반중유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는데 웬만해서는 조국명이 보이지 않는 태도였다. 반중유 역시 얼굴이 굳어있었는데 그렇다고 조국명의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본 대주가 그동안 자네에게 섭섭하게 대한 게 있었던가?"
"없었소. 본인은 대주 밑에서 일하면서 정말 존경할만한 분이라고 생각했소. 이것은 거짓이 아니오."
반중유의 얼굴에는 추호도 거짓이 없어 보였다.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문제는 서로 갈 길이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 길이 달랐을 뿐이었다. 지금 그는 자신의 호칭을 '속하'가 아닌 '본인'이라고 하여 조국명의 수하가 아닌 대등한 존재임을 표현하고 있었다.
"자네의 행위를 부인하겠다는 뜻인가?"
"……!"
"자네는 나에게 거짓말을 했네. 아주 교묘한 시각에 나를 만나 당황해 하는 나를 이끌고 여기까지 오게 했지."
조국명은 탁자 위에 놓인 전서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전서는 항상 균대위에서 사용하는 것이었고, 글씨로 보아 단사가 보낸 것이었다.
"옥형위장이 직접 쓴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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