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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업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구직자가 만들어 준 종이학.
ⓒ 이명숙
"중학교 검정고시 합격하고 이제 고등학교 검정고시 준비중이에요."
"우와, 우리 민석이 자랑스럽다. 해 낼 줄 알았다니까. 고졸 검정고시도 반드시 합격할 거야."
"해야죠."
"그래, 고졸 검정고시까지 합격하면 그 다음에는 뭐할래?"
"컴퓨터 그래픽 공부를 할 거예요. 놀아봤으니까 이제 공부해야죠."

2003년도 성취프로그램을 수료한 민석(가명)이가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최연소 참가자로 중학교 중퇴인 그는 자활대상자를 담당하는 직업상담원의 연계로 성취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이 16세, 학력 중퇴 참가신청서를 받아든 순간 학력 난에 눈길이 머물렀다. 열여섯이면 아들보다 두 살 많은 나이인데, 한창 학교를 다닐 나이에 중학교를 중퇴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무엇일까.

참가신청서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일었다. 열여섯 아이가 붙들고 있는 삶의 무게가 그대로 전해졌다. 상담을 하면서 그런 적은 있지만 참가신청서를 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참가자에 대해 어떤 편견도 갖지 말 것.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내 생각으로 재단하지 말 것,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놓고,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민석이의 삶이 궁금해졌다.

이혼한 아버지와 새어머니, 도피처인 컴퓨터게임... 초등 6학년의 가출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민석이는 아들보다 더 어려보였다. 어두울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미소는 맑았고, 성격 또한 활발했다. 민석이는 첫 날 프로그램이 끝나자 "제가 당구장에서 새벽 1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아침에 조금 지각할 수도 있어요"라고 했다. 그렇게 하라고 하자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이틀째 되는 날, 쉬는 시간에 민석이가 다가왔다.

"선생님, 컴퓨터 잠시 써도 돼요? 서류를 하나 보내야 되거든요."
"우와, 손가락이 보이지 않네. 엄청 빠르다. 얼마나 연습을 하면 이렇게 된대."

컴퓨터를 쓰라며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자판기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날아다녔다. 손놀림이 그렇게 빠른 것은 처음 보았다. 민석이는 전직 프로게이머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컴퓨터 게임에 빠지기 시작한 그는 5학년 때부터 학교 가는 날보다 PC방에 가는 날이 더 많았다. 아버지의 회초리보다 게임의 유혹이 훨씬 강했다. 꿈 속에서도 게임을 했고 세상의 모든 것이 게임처럼 보였다. 임요환을 비롯한 프로게이머가 우상이었고 그렇게 되는 게 꿈이었다.

게임을 못하게 하자 6학년 때부터 가출하기 시작했다. PC방을 전전하며 지내다 배가 고프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민석이보다 열 살 많은 새엄마와 두살배기 남동생, 아버지가 있었다. 새엄마는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의 제자였다.

단란했던 가정은 민석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은 끊이질 않았고, 3학년 겨울방학 때 결국 어머니는 집을 떠났다. 어머니가 떠난 후 일년도 되지 않아 아버지는 새엄마를 집에 들였다. 민석은 집이 싫었다. 엄마가 없는 집이 싫었고, 아버지가 싫었고, 새엄마가 싫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달려 나와 안아주던 엄마가 있던 집에, 이모보다 더 젊은 여자가 들어와 아버지와 히히덕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달아나고 싶었다. 아버지와 새엄마로부터 멀리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게임은 유일한 도피처였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아버지도, 새엄마도, 보고 싶은 엄마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직 게임만이 자신의 세상이었다. "밥과 게임 중 어느 것을 택할래" 하고 물으면 당연히 게임을 선택했다.

밥은 굶을 수 있지만 게임을 하지 않고는 단 한 시간도 살 수 없었다. 보고 싶은 엄마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아버지와 새엄마에 대한 증오를 잠재울 수 있는 길은 게임뿐이었다. 하루 만에 끝나던 가출이 일주일, 이주일 지속되었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더 나빠지기만 했다.

중학교 1학년 4월에 민석이는 무작정 서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만화방과 PC방에서 잤고 끼니는 돈이 있으면 두 끼, 없으면 굶기도 다반사로 했다.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편했다. 아버지와 새엄마를 보지 않아도 됐고, 게임을 하는 동안 엄마에 대한 그리움도 잊을 수 있었다. 돈이 떨어지면 PC방 청소를 해주고 약간의 수고비를 받기도 했다.

"그래픽디자이너로 성공해 엄마 찾고 싶어요"

스타크래프트 실력은 아무도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PC방에서 살다시피 하기를 5개월 되던 어느 날, 프로게이머를 육성하던 사람들의 눈에 띈 민석은 테스트를 걸쳐 정식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한때 국내 랭킹 200위 안까지 들었지만 밥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오직 게임에만 몰두해 있는 생활에 싫증이 날 무렵 아버지가 찾아왔다. 미워하고 증오까지 했던 아버지였지만 민석은 눈물이 났다.

1년만의 프로게이머 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온 민석은 마음을 잡고 살 테니 방 하나만 얻어달라고 아버지께 부탁했다. 아버지는 민석에게 방 하나를 구해 주었다. 그렇게 민석은 자활대상자로 우리에게 의뢰가 되었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해 가고 있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아빠를 용서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반항하는 방법이 틀렸던 것 같아요. 이제 공부하고 싶어요. 하지만 아버지한테 돈을 받아쓰기는 싫어요. 우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할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실력이 있어야 되니까 직업훈련학교에서 컴퓨터그래픽 공부를 하고 싶어요."

민석은 프로그램을 수료한 후 바로 직업훈련학교 컴퓨터 그래픽과정에 들어갔다. 그는 프로게이머가 아닌 그래픽디자이너로 성공하고 싶다고 했다.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성공해서 엄마도 찾아보고 싶다고 했다.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상처가 독이 되어 쓰러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상처를 딛고 더 강하게 일어서기도 한다. 민석은 어린 나이에 그 또래 아이들이 상상도 못할 상처를 지닌 채 방황을 했다. 자칫 잘못하면 범죄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도 있었지만 결국 자신의 상처를 이겨낸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여운이 길게 남는다. 민석아, 장하다. 그래 아프겠지만 조금씩 용서하고, 그렇게 상처를 치료해가면서 살다보면 세상은 살아갈 만한 것 아니겠니.

기사 내용중 일부 바로 잡았습니다

저는 현재 고용안정센터 직업상담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어린 나이에 가출해 방황하다가 직업상담을 거쳐 이제는 검정고시에 합격해 자활의 꿈을 키워 나가고 있는 민석(가명)이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기사를 쓴 것은 지금도 방황을 하고 있는 많은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상담한 내용을 토대로 기사를 쓰다보니 일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부분은 바로 잡았습니다. 기사의 내용 중에 프로게이머를 폄하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음을 밝히며 관계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저는 열심히 살면서 자활의 꿈을 키우고 있는 민석이가 이 기사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명숙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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