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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지역에서 우리밀을 가장 많이 재배하고 있는 합천군 적중면과 초계면 일대의 밀밭에서 밀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처음엔 온통 푸른 물결이더니 이젠 이삭이 패어가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논갈이를 할 무렵에 피어나는 자운영도 온 들녘을 아름답게 수놓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을 황홀하게 하고 있습니다.

▲ 한 학생이 감사의 편지를 낭독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만큼은 소중하고 은혜롭습니다.
ⓒ 정일관
적중면에 있는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 아이들도 새 학기를 맞이한 후 그저 푸른 모습으로 일렁이기만 했는데, 변덕스런 봄날씨처럼 흐렸다 갰다 하면서 이제 조금씩 그 청춘의 이삭들이 패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참 날씨가 맑고 좋은 날인 4월 28일, 원경고등학교 아이들은 부모님들을 모시고 제3회 '효도의 날' 행사를 열었습니다.

▲ 풍물 동아리 '두드리패'의 여는 마당입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닦은 기량을 부모님들 앞에 선보여서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 정일관
효도의 날 행사는 매년 열리는 네 번의 '학부모학교' 중 부모님들이 참가하는 공식적인 첫 행사이기 때문에 큰 기대감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사이기도 합니다.

▲ 수화 동아리 '소리빛'의 수화 공연 <웃어요>. 수화는 그 자체로 참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합니다.
ⓒ 정일관
오후 3시가 지나면서 학부모들은 학교에 잇달아 당도하였고, 담임 선생님과 편안한 상담을 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모두 강당에 모이니 학부모와 학생들, 그리고 선생님들로 가득 찼습니다. 학생회 회장과 부회장의 사회로 효도의 날 행사는 시작되었고 교장 선생님의 인사말과 학생회장의 인사말, 그리고 학부모회 회장의 인사로 이어졌습니다.

▲ 통기타 동아리 '통'의 기타 연주에 맞춰 학부모님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기타 연주에는 교장 선생님도 참가하였습니다.
ⓒ 정일관
첫 번째 무대는 감사의 편지 낭독이었습니다. 10명의 아이들이 차례로 나와 준비한 감사의 편지를 또박또박 읽어나갈 때, '아, 저 아이들의 뱃속에 언제 저런 마음들이 자리 잡고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철든 소리들을 하여 부모님들을 감동시켰습니다.

3학년 아이들은 부모님을 넉넉하게 안심시켰고, 1학년 때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였던 아이도 이제는 2학년이 되어 의젓하게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였으며, 1학년 아이들은 비록 어린 마음이지만 앞으로 열심히 살아갈 것임을 다짐했습니다.

▲ 선생님들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합창.
ⓒ 정일관
이어지는 작은 공연은 그 바탕이 동아리 활동이었습니다. 학기 초에 결성된 동아리가 총 17개였는데, 그 중에서 풍물 동아리 '원경 두드리패'가 여는 마당으로 신명나는 선반 풍물 공연을 보였고, 수화 동아리 '소리빛' 아이들은 노래 <웃어요>를 예쁜 수화로 표현하였습니다. 통기타 동아리 '통'에서도 가요 <만남>과 <연가>를 연주하였는데, <만남>은 어머니들이, <연가>는 아버지들이 함께 이어 불러서 흥을 돋우기도 하였습니다.

▲ 학부모님들의 <강아지똥> 합창. 예쁜 민들레꽃을 피우는 강아지똥처럼.
ⓒ 정일관
선생님들도 마음을 내어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가 동지적인 만남으로 함께 나아가기를 기원하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힘껏 합창하였고, 학부모들도 모두 무대에 올라와 백창우씨의 동요 <강아지똥>을 아이들에게 선사하였습니다.

▲ 발을 씻어드리기 전, 부모님과 눈길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부모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 정일관
작은 공연 후에는 학생들이 부모님들의 발을 씻어드리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한 번도 발을 자녀에게 맡겨보지 못한 부모들에게는 아찔하고 소중한 경험이었고 아이들도 부모님 발을 씻겨드리면서 더욱 깊은 친화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 씻은 발을 정성스럽게 닦고서 양말까지 신겨드린 후에 부모와 아이는 어느 때보다도 깊은 포옹을 하였습니다.

▲ 부모님 어깨에 손을 올린 아이들, 서로 평온하고 친근한 기운을 전하겠지요.
ⓒ 정일관
그리고 <어머님 은혜>를 부르고 하나 되어 아이들은 외쳤습니다. "부모님 감사합니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부모님 힘내세요"하고 말입니다.

▲ 어떤 어머니의 발을 씻어드리고 있는 어떤 아이의 손. 손과 발이 만나는 저 지점에 세상을 구제하는 어떤 힘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 정일관
효도의 날 행사는 끝났지만 다음날까지 학부모학교는 이어졌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이들과 함께 체조하고 들판 산책을 나갔습니다. 날이 흐리더니 산책이 끝나기도 전에 비가 왔습니다.

학부모님들은 답례로 일일 교사가 되어 토요일 1교시에 아이들에게 삶의 경험을 전했으며, 마음공부를 통해 날이 맑았다가 흐렸다가 비가 오는 것처럼 우리들 마음의 오묘한 변화도 살피면서 지혜롭게 마음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 모두가 하나 되어, 둥글게 하나 되어 <어머니 은혜>와 <사랑으로>를 부르며 두 손을 꼭 잡았습니다.
ⓒ 정일관
다시 날이 말끔히 갠 오후에 부모님들은 학교를 떠났습니다. 아직 열매를 맺기에는 험한 날들이 많아 소나기에, 태풍에, 땡볕에 낙과처럼 떨어지기도 하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갈무리한 경험들은 반드시 달콤한 열매로 맺어지리라는 희망 하나씩을 안고 말입니다.

봄의 한 가운데를 원경고등학교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성현께서 "은혜를 서로 느껴야 참다운 평화 세계가 되나니라" 하셨습니다. 

* 정일관 기자는 원경고등학교의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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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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