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토굴이라 일컬어지는 보현정사. 기와장 하나 단청 하나 없는 모습이 오히려 정겹다.
토굴이라 일컬어지는 보현정사. 기와장 하나 단청 하나 없는 모습이 오히려 정겹다. ⓒ 권미강
경북 문경 백화산 자락에는 현공스님의 수행처인 보현정사가 자리하고 있다. 스님의 수행처니 절 사(寺)자가 아닌 집 사(舍)자를 쓴다. 동안거와 하안거를 철저하게 지키시는 스님인지라 보현정사는 늘 고즈넉하다. 또 백화산 자락의 깊은 품 안에서 온갖 나무들과 꽃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방문객은 마음을 청정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 이곳이다.

백화산 계곡을 잇는 법의 다리를 건너야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보현정사의 심신 돈독한 불자들이 기와장 하나 단청 하나 없이 지붕 한쪽이 푹 내려앉은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을 비우는 ‘무소유’를 눈으로 몸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보현정사에 야단법석 시끌벅적한 날이 있다. 사월초파일 석가탄신일이다. 물론 이날은 모든 사찰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각종 행사를 연다. 더욱이 요즘은 축제적인 성격을 띠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사부대중의 눈을 즐겁게 한다.

보현정사의 석가탄신일 행사는 ‘야단법석’으로 치러진다. 타이틀 자체가 야단법석(野壇法席)이다. 불교 용어에서 유래된 야단법석은 "들판에 단을 쌓고 불법을 설파한 야외법회"에서 온 말이다.

서양화가 김석환선생의 티작품전. 계곡에 아무렇게나 펼쳐논 모습이 토굴스럽다.
서양화가 김석환선생의 티작품전. 계곡에 아무렇게나 펼쳐논 모습이 토굴스럽다. ⓒ 권미강
보현정사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두드리고 노는 가운데 자아성찰을 이룰 수 있는 소중한 계기를 이루고자 한다는 취지에서 야단법석을 행사명으로 삼았다.

1993년부터 시작했던 야단법석은 원래 10월경에 열렸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석가탄신일로 옮겼다고 한다. 하지만 보현정사 불자들이 그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10월에도 그들만의 소규모 야단법석을 치르고는 있다.

올해 야단법석은 4·5일 양일간에 걸쳐 열린다. 첫 날은 주로 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서양화가이자 예원예술대학교 객원교수인 조신 김용호선생의 "김용호 스케치"전과 서예전각가인 고천 김동수선생의 "단오절 부채" 전, 서양화가이자 공주대학교 교수인 소동 김석환선생의 "티셔츠에 그려진 또 다른 그림" 전, 조각가이자 환경미술가인 초산 이강식선생의 "이 뭣고 새" 전, 마곡사 화림원 정현스님의 "선화(禪畵)" 전, 도예가 이산 김락겸선생의 "야생화" 전이 열린다.

특히 올해는 티베트 화가이자 디자이너인 앙상(Ang Sang)의 "여성, 그 영원한 고향" 전이 열려, 깊은 불심과 달라이라마의 고향인 티베트의 정서와 티베트 여성들의 삶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작가들에게서 직접 작품을 받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가들에게서 직접 작품을 받는 재미가 쏠쏠하다. ⓒ 권미강
석가탄신일 당일에는 법요식과 함께 행위예술가인 카니 김석환 선생과 김은미씨의 퍼포먼스 "가세 가세 피안의 세계로" 를 비롯해 광효 김기철 선생(화랑선차)의 햇차 실습, 다양한 선차 시연이 있다.

작가들이 직접 참여해 다포에 그림을 그려주고 (서예전각가 고천 김동수 선생), 화선지와 천에 그림과 글씨를 써주며 (서예가 노영 선생) 돌에다 불상 새겨서 찍어주기도(서예전각가 공재 진영근 선생)하고 다등(茶燈) 제작 시연(카니 김석환 선생)도 한다.

이외에도 돌탑 쌓기, 예술돌 찾기, 오색종이에 발원쓰기, 페이스 페인팅, 어린이들을 위한 추억의 뻥튀기와 계곡에서의 화전 코너도 마련된다.

보현정사의 불자들로 이루어진 보현악단인 ‘소리풍경’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악단으로 색스폰. 트럼펫. 플룻. 오카리나 합주를 들려주고 형곡중학교 2학년 최주혁군이 대금독주로 꽃의 동화와 칠갑산을 연주하는 등 어느 축제보다도 다양하고 알찬 프로그램으로 꾸며져 있는게 보현정사의 야단법석이다.

개인 소장품이나 여러 가지 물건을 판매할 수 있고 회원 상호간 물물교환도 하는 프리마켓 형식의 자유시장인 보현 바자르도를 개장해 이날 행사의 재미를 더한다고 한다.

야단법석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카니 김석환선생이 찰흙인형만들기 시연을 하고 있다.
야단법석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카니 김석환선생이 찰흙인형만들기 시연을 하고 있다. ⓒ 권미강
그 내용으로 보나 취지와 의미로 보나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성자 라마크리슈나의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라는 말처럼 야단법석은 석가탄신일에 맞춰 담아내는 행복의 축제인 듯 싶다.

무엇보다 보현정사 토굴에 쓰여진 글귀를 이해한다면 이 날의 행복은 더욱 가슴 깊이 다가서리라. 다음은 보현정사 토굴수칙이다.

-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한 물로 화분을 적시며 난초 잎을 손질할 줄 아는 이라면 굳이 화가가 아니라도 좋다.

- 고요한 달밤에 거문고 안고 오는 벗이나 단소를 손에 쥐고 오는 이가 있다면 굳이 줄을 골라 곡조를 아니 들어도 좋다.

- 이른 새벽에 홀로 앉아 향을 사르고 산창에 스며드는 달빛을 볼 줄 아는 이라면 굳이 불경을 아니 외워도 좋다.
보현정사에서는 모두가 부처님마음이다. 빙그레 웃으시면 그 웃음이 바로 가슴으로 전해진다.
보현정사에서는 모두가 부처님마음이다. 빙그레 웃으시면 그 웃음이 바로 가슴으로 전해진다. ⓒ 권미강


- 구름을 찾아 산따라 바람을 베개하고 바위에 기대어 잠든 스님을 보거든 굳이 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좋다.

- 저문 봄날 지는 꽃잎을 보고 귀촉도 울음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이라면 굳이 시인이 아니라도 좋다.

- 해 저문 산야에서 나그네를 만나거든 어디서 온 누구인지 물을 것도 없이 굳이 오고가는 세상사를 들추지 않아도 좋다.

덧붙이는 글 | 보현정사는 문경 백화산자락에 있습니다. 문경도자기전시관과 문경새재 국도 휴게소에서 옛날 이화령고갯길로 가시다 보면 부광요가 나오는데 그 길로 쭉 들어가면 됩니다. 
홈페이지는  http://www.yadanbs.com/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상식을 가지고 사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