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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년의 명차 '포티나인'을 리메이크 한 포드의 컨셉트 차량
ⓒ 포드자동차
올 해 1월의 디트로이트 모터쇼는 마치 영화 '백 투더 퓨처'를 보는 듯 했다. '카마로', '닷지 챌린저' 등 50~6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의 클래식카들이 대거 리메이크 되어 선을 보였던 것이다.

제너럴모터스(GM)가 부도설에 시달리고 포드 역시 매출이 바닥을 기는 등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빅3'의 위상은 말이 아니지만 최소한 모터 쇼 현장에서만큼은 과거의 영광이 되살아 난 듯 활기에 넘쳤다. 미국의 빅3가 기사회생의 카드로 전면에 내세운 것은 바로 '복고'다.

복고열기는 올 해 새삼스럽게 시작된 것은 아니다. 폭스바겐이 왕년의 인기 모델 '비틀'을 다시 선보여 큰 인기를 끈 것을 지켜 본 뒤, 포드는 2000년 명차 '썬더버드' 리메이크 모델을 출시했고 크라이슬러는 'PT크루저'로 짭짤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과거'에서 돌파구 찾는 미국의 '빅3'

복고 열풍이 미국의 매스마켓 수준에서 확실한 지지세를 얻기 시작한 것은 바로 지난 해부터다.

커다란 전면 그릴에 강력한 엔진, 강인하고 육중한 차체로 복고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중형 세단 '300C'가 대박을 터뜨리자 복고가 확실하게 팔리는 키워드임이 시장에서 입증된 것이다. 300C는 기본형 모델이 3만5000달러에 달하는 고급차임에도 불구하고 출시 2년 만에 30만대가 넘게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한 바 있다.

현재 복고를 주제로 출시했거나 개발 중인 모델은 10여대에 달한다. GM이 시보레 브랜드로 카마로를 내놓았고 '임팔라'와 '스팅그레이'를 후속 모델로 개발 중이다. 포드는 이미 출시한 머스탱과 썬더버드 외에 '포티나인'이라는 복고풍 컨셉 모델을 선 보였고 심지어 '페어레인'이라는 복고 미니밴까지 출시할 계획이다.

▲ 다임러-크라이슬러의 복고풍 자동차 '닷지 챌린저'
ⓒ 다임러-크라이슬러
이런 신차들은 외형은 복고를 지향하지만 엔진 등 기계적 성능이나 편의장치, 전자장비 만큼은 현대의 첨단기술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복고바람의 근원은 어디일까. 미국의 마케팅 컨설턴트 존 그레이스는 9·11 이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반미 정서가 복고 열풍의 또 다른 배경이라고 지적해 눈길을 끈다.

그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은 지금 극도의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하고 "외부로부터 위협을 느끼면서 과거 미국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내 주던 복고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끌리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커다란 뒷날개를 뽐내던 59년산 캐딜락이나 근육질 디자인의 69년산 GTO 등은 바로 이런 과거 미국의 자신감을 상징하는 차들이라는 것.

복고는 일본차와 독일차 사이에서 뚜렷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던 미국의 빅3에게 어쩌면 필연적인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GM의 경우 품질에서는 도요타의 간판 방식 생산라인을 벤치마킹하며 고장 없는 일본 차를 모방하려 했고, 브랜드 면에서는 벤츠-BMW의 정밀한 서스펜션과 빈틈없는 디자인을 모방해 캐딜락을 유럽의 럭셔리 모델과 경쟁하는 브랜드로 키우려고 애를 썼다.

지난 10여 년의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빅3는 이들 경쟁자들을 따라잡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품질에서는 여전히 일본 차에 2% 부족하고 브랜드 파워에서는 유럽 차에 뒤지는 상황만큼은 끝내 반전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50~60년대의 풍요와 넉넉함은 일본과 유럽의 차들이 갖지 못한 미국만의 경쟁력이었다. 빅3는 '좋았던 그 시절'을 풍미했던 왕년의 명차들을 되살려 일본과 유럽의 차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미국차만의 고유한 브랜드와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에서 시장의 돌파구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뜨거운 복고 열풍, '고유가'가 변수

▲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선 보인 시보레 '카마로'의 리메이크 모델
ⓒ GM
▲ 50~60년대 복고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카마로의 실내 디자인
ⓒ GM
흥미로운 것은 복고열풍이 젊은 시절에 이들 차량을 운전해 보았던 올드 세대뿐 아니라 현재의 젊은 층에서도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CNW마케팅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복고 자동차에 대한 호감도는 50대 이상에서 76%를 보인 반면, 35세 이하 그룹에서는 이보다 오히려 더 높아 무려 83%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복고 차들은 뚜렷한 외형적 특징을 가진데다 근육질 이미지, 강력한 엔진 등이 남성적 매력을 물씬 풍긴다는 것이 미국의 젊은 자동차 매니어들의 반응이다.

복고 열기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바로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기름 값 때문. 이들 근육질 복고차들은 남성적 매력이 핵심인 탓에 한결같이 수천CC의 배기량을 자랑하는 강력한 엔진을 달고 있는데 요즘 같은 고유가 시대에 과연 이런 차들이 얼마나 팔릴지 불분명 하기 때문이다.

환경 보호 열기에 편승해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이 고연비를 자랑하는 하이브리드 차들을 수 십 만대 팔아 치우며 승승장구 하는 반면, 빅3는 거꾸로 고래처럼 기름을 먹어대는 '머슬카'로 생존을 모색하는 상반된 모습이 공존하는 것이 지금 미국 자동차 시장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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