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예정됐던 남북한 간의 열차 시험운행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북한이 이전에 남북한 간의 합의를 번복한 적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열차 시험운행을 위한 분 단위 행사계획까지 마련된 상태였다. 남한 정부당국자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은 수천명을 동원해 개성역 정비를 하는 등 준비를 했고 "열차시험은 문제 없다"고 여러 번 공언했다.
남한 정부당국자는 지난 24일 익명을 전제로 기자들에게 "24일 오후 이후에 북한 내부에서 어떤 재조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 과정에서 군부가 방향을 틀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막판에 북한군부에게 밀릴 정도면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북한체제는 김 위원장이 유일 권력으로 군부가 막판에 뒤집을 수 없다"며 "처음 열차 시험운행을 결정한 것도 김 위원장이고 막판에 뒤집은 사람도 김 위원장"이라는 분석도 있다.
항상 미국의 공격위협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북한사회에서 군부의 위치는 원래 막강했다. 마오쩌둥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더구나 1990년 중반 북한이 대량의 기아을 겪으면서 제대로 가동되는 조직은 군대밖에 없었고 이에따라 '선군정치'를 내세우면서 북한군부의 힘은 더욱 더 커졌다.
원래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군대
이번에 열차 시험운행을 했다면 곧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때 열차 방북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국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각종 자재를 열차로 수송하는 수순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차츰차츰 한 단계씩 가면 북한사회는 사실상 개혁·개방으로 가게 된다. 열차 시험운행이 성공했다면 북한사회의 개혁·개방은 사실상 50%는 이뤄진 것이나 마찬가지로 볼 수 있었다.
따라서 그 속성상 어느 사회, 어느 국가에서나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군부, 특히 북한군부 입장에서 볼 때 열차 시험운행은 탐탁치 않았을 것이다.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는 군사분계선을 지나게 된다. 북한군부로서는 철도 주변의 군사시설을 다 옮겨야 하는 등의 부담이 있다.
따라서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갈 때 가장 큰 반대세력은 북한군부일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런 군부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중국의 사례가 한 가지 힌트를 준다. 지난 1978년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선언했다. 경제에 힘을 쏟게 되니 국방비와 군대 규모를 줄여야 했다. 원래 보수적인 군부는 개혁·개방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군부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덩샤오핑은 중국 군대가 기업을 운영해 돈을 벌 수 있도록 했다.
중국 군대의 소유 기업은 한때 1만5000개에 이르렀다. 군대는 땅·자원·시설·인재·자금 등 기업 운영과 장사에 필요한 것은 다 가지고 있었다. 단 없는 것은 외부로터의 관리와 감독 뿐이었다. 총을 가진 군대가 하는 사업인데 세무서나 세관, 지방 정부는 감히 간섭할 수 없었다.
개혁·개방의 혜택을 군부가 보게 해야
결국 나중에 문제는 심각해졌다. 군대가 너무 기업운영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훈련에는 무관심하게 되었고 중국경제의 골칫거리인 밀수까지 직간접적으로 연관됐다. 결국 1997년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은 군대가 운영하는 기업을 3년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정리하도록 했다. 이는 한편으로 군대 운영비를 중국정부가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 만큼 경제가 성장했고, 개혁·개방이 절대 후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4월 24일 제18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북은 한강 하구 모래 공동개발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한강 하구는 면적 130㎢에 강에서 흘러와 쌓인 모래만 10억㎥에 달하는데 이를 채취할 경우 수도권 골재난 해소·임진강 홍수 방지·군사대치 긴장해소 등에 도움이 된다. 한강 하구의 일부는 바로 북한군부의 관할지역이다. 이 사업이 잘 되고 시스템을 갖추면 북한군부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
개성공단만 해도 북한군이 남침할 경우 기갑부대 기동로다. 개성공단 때문에 북한군이 십 몇킬로미터를 뒤로 물러났고 사실상 예성강이 휴전선이 되버렸다. 남북 경협에 종사하는 한 기업인은 "만약 전쟁을 해서 북한군을 그만큼 뒤로 물러나게 하려면 수만명의 피와 수백억 달러를 들여도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금강산 역시 군사 분계선과 접해 있다. 북한군부가 이 지역에서 남북간에 사업이 벌어질 때 뭔가 혜택을 받아야 개혁·개방에 찬성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묵인할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