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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천동계곡 쪽으로 소백산을 오르면 산을 오르는 길의 절반 이상에서 계곡의 물과 함께 할 수 있다.

계곡의 물은 힘차다. 그리고 날렵하다. 우리는 발 디딜 곳을 찾기도 어려운 바위 사이를, 물은 날렵한 자태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빠른 속도로 아래쪽을 향해 쏟아져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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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물은 부드럽기도 하다. 아마 그 부드러움이 없었다면 그 많은 바위 사이를 상처 없이 지나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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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꽃을 보았을 땐 '아니, 아직도 목련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산행길에 마련된 안내판 덕분에 알게 됐다. 이건 목련이 아니라 함박꽃 나무였다. 다른 말로 산목련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이 꽃과 여러 곳에서 마주쳤는데, 자태가 매우 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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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산에 오르는 가족을 만나면 참 특별한 느낌이 든다. 산은 사실 혼자 오르기도 힘든 곳이다. 그런데 아빠는 한 손으로는 등에 업은 딸을 받쳐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들의 갈 길을 끌어준다. 사랑이란 말 이외의 것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모습이다. 그럼 엄마는? 엄마는 평상시의 삶 자체가 그렇다. 그리고 그 엄마가 받쳐주기 때문에 아빠의 사랑이 오늘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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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쯤을 지나서 소나기를 만났다. 출발할 때는 '쨍'하도록 화창한 날씨였기에 아무 준비도 안 했다. 그래서 꼼짝없이 빗줄기를 모두 뒤집어쓰고 계속 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정상을 600m쯤 남겨두었을 때, 비가 잠시 그쳤다. 안개 속에서 사람들의 윤곽이 뿌옇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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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에 오르긴 했지만 빗줄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냥 카메라를 품속에 넣은 채 조심조심하면서 비로봉임을 알려주는 표석만 촬영했다.

어찌 보면 이건 내가 산 정상에 올랐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집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는 정상에 올랐다는 그 사실 하나가 주는 만족감도 말할 수 없이 크다. 그 만족감을 내 기억 속에만 담아두긴 싫었다.

그래서 정상임을 알려주는 표석 사진을 악착같이 찍었다. 사진을 더 찍기 위해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려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비에 젖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추위를 견딜 수 없었다. 결국 곧바로 다시 산 아래로 걸음을 떼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 김동원
안개는 시야를 열어주지 않는 대신 가까운 풍경을 신비롭게 감싸며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그래서 안개가 감싸면 주목의 분위기도 더욱 신비롭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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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내려왔을 때 나무들 사이로 다시 '쨍'하고 햇빛이 비쳤다. '히, 약 오르지' 하고 날름 혓바닥을 내미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는 화내지 않고 그저 '아이고, 귀엽다 귀여워'라고 생각하며 씩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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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가 적신 땅을 다시 햇살이 따뜻하게 어루만지면서 길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비온 뒤 산행에서, 그것도 소나기가 지나간 뒤에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 김동원
내내 비가 내린다면 모를까, 잠시 산을 훑고 지나가는 소나기라면, 이 비는 산행을 더욱 특별하게 해줄 수 있다. 물방울이 맺힌 나뭇잎 풍경은 햇빛이 물방울을 다 거두어간 다음의 모습과 완연히 다르다. 그러니 소나기가 내릴 때 그 비를 쫄딱 맞고 산을 오르내려야 한다고 해도 억울해하지 마시라.

햇빛이 가꾸는 풍경이 있는가 하면, 나름대로 놀라운 예술적 손길을 지닌 소나기가 빚어내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경도 있다. 그 때문에 비가 오면 산은 물이 빚어낸 한 폭의 수채화가 될 수 있다. 서울로 오는 내내 축축한 옷 때문에 불편했지만 소백산의 소나기가 선물한 그 수채화는 그러한 불편을 충분히 보상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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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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