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조금 지나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맨 처음 투표할 것"이라는 '엄포'에 아빠는 "쉽지 않을 거다" 딱 한마디의 말을 나에게 남겼다. 그 때서야 그 말이 이해가 갔다. 막무가내로 들이대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사이에서 나의 자리를 유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계속 시계만 쳐다보고 6시가 되길 기다렸다. 할아버지 할머니들께는 약간 죄송한 마음도 있었지만 맨 처음에 투표하겠다는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기에 꿋꿋하게 투표소 문 앞에서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부동의 자세를 유지했다.
드디어 6시 나의 바람대로 맨 처음 투표를 했다. 뭔가 뿌듯하고 감격스러웠다. 나처럼 이번 지방선거에 처음으로 참여한 젊은 유권자를 찾기 위해 투표장 앞에서 서성인지 3시간이 지났을 무렵 어렸을 때부터 한 동네서 같이 자란 나의 친구가 보였다.
"세미야~ 하나만 물어보자."
"뭔데?"
"이번에 처음으로 선거에 참여한 소감이 어때?"
"음...나는 이번 선거가 첫 선거라 매우 떨리고 설렜어. 그래서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해서 후보들을 선택했어. 후보들이 거리 유세하는 것도 봤고 공약도 꼼꼼히 따져봤어. 정치인들, 이제는 좀 잘 해 주셨으면 좋겠어."
투표 마감 30분 전인 오후 5시 30분 다시 투표소를 찾았다. 여전히 투표소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투표 마감 시간이 가까워오자 경찰차가 등장했다. 아기들과 함께 투표하러 온 가족, 택시타고 급하게 온 사람, 뛰어오는 아주머니, 마지막 1분을 남겨둔 5시 59분에 헐레벌떡 투표소를 찾은 부부.
정확히 오후 6시가 되자 투표소의 문은 닫혔고 투표함은 경찰차의 보호아래 옥천군 개표장으로 옮겨졌다.
<오마이뉴스> 프레스카드와 옥천군 선관위에서 발급한 보도요원 카드를 목에 걸고 개표장 안으로 들어갔다. 빠르게 돌아가는 전자 개표기, 초조하게 바라보는 후보자 측 사람들, 개표를 유심히 지켜보는 사람들, 프레스센터에서 실시간으로 개표 현황과 사진을 전송하는 옥천신문 기자아저씨 까지. TV 에서만 보던 개표장 풍경은 나에게 마냥 신기하고 새로웠다.
지방선거가 끝났다. '당선자'들의 현수막이 거리에 나부끼고 있다. 사람들은 당선 가능성 없는 사람에게 표를 주는 것을 흔히 '사표를 던진다'고 말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는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나의 작은 한 표지만 옳은 방식으로 묵묵히 정치를 행하는 후보에게 작게나마 힘이 되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 정직하고 올바르게 정치에 뜻을 품고 있는 풀뿌리 정치인들이 보여주려 했던 희망. 그 희망은 언젠가 빛을 발할 것이라는 작은 기대를 난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쓴 웃음을 지으면서도 시험과 레포트로 힘들어하면서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오마이뉴스 5.31 지방선거 특별취재팀과 선거일기.
많이 부족하고 어설펐지만 내 나름대로의 선거에 대한 접근이었다. 이번 접근을 통해 정치에 대한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소망을 불어넣어 주며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다는 큰 가르침을 깨달았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마지막 선거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