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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북한이탈주민) 김영식씨(36세/가명)는 매일 아침 신문을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현재 다니는 직장에는 북한 출신인 것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표준어 억양을 가다듬기 위해서다. 이전 직장에서 북한 출신인 것이 알려진 뒤로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고 결국 직장을 그만둔 아픈 기억이 있는 그로서는 서울말 연습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올해 2월 통일연구원이 펴낸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새터민 실업률은 일반 국민의 4배에 이르고 월 근로소득 100만원 미만인 사림이 65.4%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직업이 있다고 답한 새터민도 51.9%가 일용직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도 새터민 3명중 2명은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직장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씨가 서울말 연습에 목을 매는 것도 지나친 일은 아니다.

김씨는 “직장에선 주로 듣는 편이고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나서지 않는다. 남한 말은 영어가 많이 섞여 있고 모르는 단어가 많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외국어나 마찬가지다. 억양을 고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말이 통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면서 “하나원에서 남북한 언어 차이에 대해 교육받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내용들에 그쳤고 사회에 나와서는 따로 교육 받을 기회가 없기 때문에 신문이나 방송을 보고 개인적으로 노력하지만 쉽진 않다”고 말한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을 통하게 하지만 때론 소외된 이들에겐 견고한 장벽을 쌓기도 한다. 거꾸로 언어로 쌓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통로를 만드는 노력으로 소외된 이웃과 거리를 좁힐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국립국어원이 소외계층 언어실태 파악을 위한 연구 사업을 꾸준히 벌여오고 있는 것은 칭찬받을 만하다. 국립국어원은 작년 국제결혼 이주여성 언어실태를 조사한데 이어 올해에는 새터민 언어실태 조사에 나선다.

ⓒ 국립국어원
국립국어원 양명희 학예연구관은 “흔히 새터민들은 우리와 말이 통하기 때문에 언어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남북한이 같은 뜻에 다른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고 특히 남한은 외국어와 외래어 사용이 많기 때문에 새터민들에게 언어 문제가 주는 고통이 크다”며 “이번 실태 조사를 통해 새터민들이 언어 적응과 관련해서 겪고 있는 문제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교육 내용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새터민 언어실태 조사를 위해 연구 용역을 공개모집하고 있으며 채택된 연구에는 사업당 5천만 원의 연구비가 지원될 예정이다. 서류 접수는 6월 13일까지이며 자세한 사항은 국립국어원 홈페이지(www.korean.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국어능력인증시험(KET) 시행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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