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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남북공동선언 6주년 기념만찬이 지난 8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중국이 (북한에) 들어오면 중국의 힘은 휴전선까지 오고, (반대로) 우리가 적극 진출하면 우리의 힘이 압록강까지 진출한다"고 말했다.
6·15남북공동선언 6주년 기념만찬이 지난 8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중국이 (북한에) 들어오면 중국의 힘은 휴전선까지 오고, (반대로) 우리가 적극 진출하면 우리의 힘이 압록강까지 진출한다"고 말했다. ⓒ 이철우

지난 9일 <중앙일보>에는 "DJ, '중국의 북한 진출 소홀히 보면 후회할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8일 6·15 남북정상회담 기념 만찬에서 "중국이 (북한에) 들어오면 중국의 힘은 휴전선까지 오고, (반대로) 우리가 적극 진출하면 우리의 힘이 압록강까지 진출한다"며 "이 문제를 소홀히 하면 크게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중국의 북한 경제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발언을 계속해왔다. 한 예로 올해 1월 6일 83회 생일을 맞아 노무현 대통령의 축하난을 들고 온 조기숙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북한은 미국이 자꾸 압박하니까 지금 기댈 데가 없어 중국에 기댄다"며 "북한도 이를 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 정부가 이런 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는 한국 언론들도 많이 보도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북한이 중국에 국가적으로 인수·합병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북한의 대중 교역규모는 15억8000만 달러로 10억5500만 달러에 그친 남한을 크게 앞질렀다. 국제위기기구(ICG)는 최근 북한은 대외교역의 40%, 소비재 수입의 8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대(對) 중국 경제 의존도가 50%를 넘을 것으로 본다. 북한이 소비하는 한 해 연료의 70~90%와 수입식량의 3분의 1을 중국이 대준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기자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평양의 관문인 순안공항에서 팔던 코카콜라도 중국산이었다. 평양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북한의 주요 소비재들이 전부 중국산"이라고 전한다.

그런데 기자가 남북 관계나 중국 전문가들의 모임에 나가보면 이와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이 된다거나 중국이 북한을 국가적으로 인수·합병할 것이라는 관측은 과장"이라며 "6자 회담 등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런 말이 오히려 중국을 자극해 한중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 정부의 정책 결정과정에 관여했던 한 전문가는 "중국의 북한경제 포섭론은 사실 전략적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들고 나온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논리는 남북 경협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조지 부시 행정부와 한나라당을 설득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며 "그런데 언론들이 너무 과장해서 보도하다 보니 중국이 아주 기분나빠 한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연변 지역을 돌아보고 왔던 한 학자는 "한국에서는 북한이 국경지역의 철도를 북한과 연결시키고, 나진항의 일부를 임대하기로 했다고 보도됐다"며 "그러나 이는 아직 아이디어 수준이고 실제 실현 전망도 대단히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박건일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발생하는 월간지 <통일시대> 3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중국의 대북 영향력 확대에 대해 한국에서 우려가 나오는 것은 오해"라며 "특히 미국 시각으로 중국을 해석하는 학자들이 심하다"고 비판했다.

중국의 근본주의적 정책 수립 눈여겨 봐야

지난 해 10월 2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간 경협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사진은 두 정상이 회담 전 악수를 나누는 모습.
지난 해 10월 2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간 경협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사진은 두 정상이 회담 전 악수를 나누는 모습. ⓒ AP=연합뉴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뒤 중국을 방문하면 상당한 대접을 받던 인물이다. 한 예로 지난 2004년 7월 김 전 대통령이 방중했을 때는 장쩌민 당시 중국 중앙군사위 주석이 영접했다. 장 주석은 김 전 대통령에게 "나의 펑여우(朋友·친구)"라고 불렀다.

이는 단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니었다. 일방적 친미국가이던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다. 따라서 중국 입장에서 볼 때 김 전 대통령은 대단한 우군(友軍)이었다.

이런 김 전 대통령이 중국의 북한경제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여러 번에 걸쳐 공개적으로 우려하고 비판하는 것에 중국은 크게 당혹할 것이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개의치않고 똑같은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고있다. 더구나 항상 자로 잰 듯 신중하게 발언하는 김 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직접적 표현을 사용하면서 말이다.

왜일까? 역사에 관심이 많은 김 전 대통령은 중국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을 것이다. 사실 중국의 대북원조가 아직까지는 북한 정권을 좌지우지할 정도는 아니다. 북한 정권의 자존심도 아주 강하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조금씩 잠식당하다 보면 나중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한국의 역대 정권이 친미적으로 행동했던 것도 결국 한국의 미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주 원인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은 어떤 문제를 미봉책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근본적으로 푸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된 동북공정을 보자. 원래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뒤 많은 한국인들이 백두산과 연변지역을 방문해 "만주는 우리땅"이라고 주장을 했다. 이에 자극받은 중국은 지난 1995년 리펑 당시 총리가 한국의 이홍구 총리에게 그런 행동을 자제시켜 줄 것을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 정부가 국민들의 의사 표현을 일일히 통제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 간도문제가 한국 국회에서 계속 논란이 되고, 북한이 평양지역 일대의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시도 등을 하자 중국은 동북공정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방법이 파격적이다. 한국의 역사인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켜 버린 것이다. 일반적 상식이라면 "일부 한국 관광객들이 '만주는 우리땅'이라고 말하는 것은 영토 주권의 침해다, 중국은 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정도의 강한 항의에 그쳤어야 했다. 그러나 중국은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한국인들의 만주 영유권 주장의 근거를 없애버렸을 뿐 아니라 유사시 북한 땅까지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논거를 마련했다.

현대사만 봐도 1950년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또 1972년 극좌적인 문화대혁명이 한창일 때 중국이 그들 표현대로라면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과 감히 수교협상을 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처럼 중국은 상식을 뛰어넘는 행동을 여러 번 했던 나라다.

현재 북한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전략적으로 중요한 외곽 방어선이다. 만약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주한미군은 압록강까지 미치게 된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안보적 위기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경제적 이익 때문에 미국과 극단적 대립은 할 수 없다. 그래서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을 주선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최대한 중재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지 부시 행정부가 북핵 문제에 대해 "대화는 하되 협상은 하지 않는" 전술을 사용하면서 계속 북한만 몰아붙인다면? 그러면서 미·일 동맹의 강화, 인도와의 관계 강화 등으로 중국에 대한 포위를 강화한다면? 최악의 순간에 이르면 중국이 아예 북한을 접수해버리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이 때는 중국 정부가 직접 통치하기보다는 친중파가 권력을 장악하도록 해 사실상 북한을 중국의 위성국가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현재 북한의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이런 상황을 대비한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북한이 중국의 위성국가화가 된다면 미국은 중국과 전쟁을 각오하기 전에는 북한을 건드릴 수 없을 것이며, 동북아시아에서 중요한 전략적 실패를 맛볼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궁극적으로 이런 상황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개인적으로 만난 한 여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이 굳이 6월말에 방북을 하려는 것은 더 이상 북한이 중국이 기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김정일 위원장을 설득하기 위해서"다.

물론 학자들의 주장과 김 전 대통령의 주장 사이에는 인식차가 있다.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의 견해가 100% 올바르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남북 문제와 동북아 정세에 관한한 최고의 고수인 김 전 대통령의 우려는 귀담아 들을 이유는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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