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탄 것은 군부대 시절인 20대 초반 무렵이다.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세발자전거를 타거나 최소한 중,고등학교 시절에 자전거를 처음 타게되는 일반적인 경험으로 보면 내 경우는 매우 특별한 사례다. 상병시절에 부하사병에게 어렵사리 배운 자전거는 늦게 몸에 익혀서인지 몰라도 지금도 그리 능숙하지 않다.
그런 내가 지난 3월에 철인 3종 경기 입문용 사이클을 하나 장만했다. 일반용 자전거 타기에도 능숙하지 않은 내가 사이클을 장만하고 장거리 경주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요즘엔 이 자전거타기에 한창 재미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몸의 중심을 잡아가며 페달을 돌리는 양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긴장감과 얼굴에 바람으로 닿는 속도감은 날이 갈수록 자전거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연료 없이 사람의 근력만으로 추진력을 얻어 달리는 자전거는 가장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이다. 운동부족으로 허리둘레가 늘어나는 사람들이 체지방을 줄일 수 있는 확실한 유산소 운동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전거 타기다. 이래저래 장점만 갖추고 있는 이 자전거를 이용해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여행과 '자전거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6월 첫 주간 주말, 교보문고에서 발견한 신간 <아메리카 자전거여행>(한겨레출판, 홍은택 지음)은 요즘들어 자전거타기 매력과 동시에 왠지 모를 갈증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마치 생수처럼 다가온 책이다. 그것은 단순히 운동삼아 자전거를 타는 것에서 벗어나 자전거를 통해 넓은 세계와 교류하며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하프타임...자전거로 7000km를 달리다
<아메리카 자전거여행>은 저자가 지난 2005년 5월 26일부터 8월 13일까지 80일 동안 미국을 자전거로 횡단한 기록이다. 하루 평균 80km정도를 달리며 길 위에서 만난 다양한 자전거여행가들은 물론 수많은 미국내 소도시나 마을들을 접하며 체감한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자전거는 다리의 연장일 뿐 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다. 안장위에서 보는 세상은 차 안에서 보는 네모 세상과 다르다. 미국을 횡단하는 동반자로 자전거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전거가 지향하는 가치로 미국을, 그리고 내 자신을 보고자 했다."
저자의 고백처럼 600여 쪽에 달하는 이 책은 자전거로 떠난 미국 횡단길 (트렌스 아메리카 트레일)에서 겪어 본 사람들과 마을,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자연에 대한 경이로운 체험들이 가득하다. '저전거는 사람들의 마음을 연다'는 저자의 체험은 책을 읽는 동안 당장이라도 자전거를 끌고 넓은 세계로 여행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저자는 마흔 초반의 나이에 미국을 횡단하는 이 모험적인 자전거여행을 '인생의 하프타임'에 비유한다. 인생의 뜻을 세운다는 30대 삶을 마무리하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다는 40대에 인생의 후반부를 대비하는 정신적, 육체적인 숨돌림의 여유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여유로움은 약 7000km에 달하는 장거리 자전거여행에서 오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인 인내를 함께 동반한다.
저자는 개인적으로 인생의 하프타임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여정을 밟으면서도 사람들이 "도대체 왜 그 먼 길을 자전거로 횡단하느냐?"라는 질문에는 "재미를 위해서(for fun)"라고 일갈한다. 사실,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서야 80일 동안 자전거 하나에 의지해 낯설다면 낯선 미국땅을 횡단하는 모험을 단행할 수 있었을까?
'생활혁명'...일상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자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 특유의 재미있고도 유쾌한 문장과 더불어 다양한 환경에서 만나는 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저자의 내밀한 감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으론 수영과 사이클, 마라톤으로 이루어진 철인 3종 경기(트라이애슬론)로 단련된 스포츠 마니아다운 체력과 끈기를 엿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물론, 저자가 소개하는 이러한 미국횡단 자전거여행이 일부 스포츠마니아나 체력 좋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가 80일 동안 만난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 만남 속에는 사람사는 진솔한 향기와 여행자의 다양한 사연들이 가득하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긍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른바 '자전거 혁명'이다. 때문에 이 책은 가장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이자, 건강에도 좋은 자전거 예찬론에 가깝다. 우리 주위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굳이 자전거로 떠나는 장거리여행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삶 가운데 자전거를 적극 활용하는 작은 '생활혁명'을 소망한다.
저자는 "자전거 타기는 긴 거리를 달려서가 아니라 자신이 페달을 밟은 몇 미터의 거리에도 성취감을 느낄 줄 아는 삶의 한 방법이다"고 말한다. 두 바퀴로 서서히 굴러가는 자전거 안장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차 안에서 내다보는 속도감 있는 네모난 세상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전거는 다리의 연장일 뿐 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라는 말에 동감한다.
만약, 저자의 희망대로 '자전거로 한반도의 해변을 한바퀴 도는' <판 코리아 트레일(pan korea trail)>이 생긴다면, 나는 자전거 혁명의 동지로서 이 여행에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