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지난 10년 최고의 책> 특별기획을 진행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전문가와 시민기자, 누리꾼 패널들이 뽑은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을 기본 자료로 삼아, 선정자문위원회의 자문 그리고 누리꾼 투표 등을 거쳐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 10권을 선정해 최종 결과를 5월중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와 더불어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 서평 기사를 공모해 좋은 기사로 선정된 경우 소정의 특별원고료(사이버머니)를 지급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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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홈피나 블로그 등에는 주인장을 알리는 짧은 글귀가 있는데 내 경우는 '금속말을 탄 도시의 유목민'이다. 이런 글귀는 보통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른 문구로 바꾸기 마련이지만 나는 일년이 넘어도 아직 바꿀 마음이 없다. 아마도 자전거와 여행을 좋아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나를 표현하게된 이 대표적 문구는 홍은택님의 자전거 여행기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들고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은, 저자도 나처럼 자전거를 애용하며 도시에 사는 평범한 생활인이라는 동질감 이외에 나도 자전거로 멀리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꿈과 용기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다(게다가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이 여행을 감행했다).
장거리 자전거 여행의 좋은 선례와 용기를 심어준 책이지만, 실제 넓디 넓은 땅 미국을 그것도 자전거로 횡단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더군다나 미국은 속도와 경쟁이라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자전거와는 거리가 먼 나라가 아닌가.
이 용감무쌍한 저자는 혼자서 미국 버지니아주의 요크타운에서 서부 오리건주의 플로랜스 지역까지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이라는 6800km의 횡단코스를 평균 13Km의 속도로 세 달 동안이나 달렸고 3Kg의 몸무게가 빠졌다고 한다.
화석연료가 아닌 인간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로 돌아가는 자전거. 소진에서 지속으로 경쟁에서 협동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혁명적인 발명품 자전거가 속도와 경쟁의 나라 미국 사회를 횡으로 가르며 달려간다. 이 자전거 여행기 속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지 무척 궁금하고 호기심이 이는 책이다.
자전거, 세상을 만나는 또 다른 눈
자전거는 다리의 연장일 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다. 안장 위에서 보는 세상은 차 안에서 보는 네모 속 세상과 다르다. 미국을 횡단하는 동반자로 자전거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전거가 지향하는 가치로 미국을, 그리고 내 자신을 보고자 한다. 내 자신 중에서 특히 몸의 반응이 궁금하다. 언젠가부터 몸이 나와 분리된 존재라고 느껴졌다. - 본문 중에서
나도 해외까지는 아니어도 버스나 기차에 애마 자전거를 싣고 짬짬이 국내 자전거 여행을 해보았지만, 자전거 여행에서 몇 킬로미터 되는 거리를 얼마만에 달려갔다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수십 킬로미터를 온종일 달리더라도 넓고 깊게 여행하는 묘미가 있는 것이 자전거 여행의 본모습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당시에 이 여행기를 신문사에 연재해야 하기에 귀찮고 피곤해도 글감과 이야기를 찾아 도로만이 아닌 도로가의 마을에 찾아 들어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어야 했다. 덕분에 자전거 여행기에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담긴 풍성한 글이 되었다.
저자는 그런 삶의 이야기를 만나고 글로 연재하는 게 힘들었다고 책 속에서 엄살을 피우지만, 사실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 소소한 삶의 이야기는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주 마주치게 된다. 3개월 동안 6800Km의 길 위를 지났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삶을 만났을지는 미루어 짐작하기도 힘들다.
이 길고 긴 횡단 길에서 만난 수많은 라이더들과 평범한 미국 소시민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다양한 삶의 애환이 책 구석구석에서 진하게 묻어난다. 자전거가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보다도 인간의 삶과 친밀하고 친숙한 것이라 가능한 것이리라. 더불어 지나치는 미국땅 곳곳에 대한 적절한 깊이의 역사적, 문화적 설명이 곁들여져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새롭고 색다른 지식과 인상을 심어준다.
나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
저자가 3개월간 지나왔던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은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를 멀리 돌아가는 길로, 1976년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척되었다고 한다. 총 길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열두 번을 왕복해야 하는 머나먼 거리이다.
하루 평균 80km를 달리던 그는, 40kg이 넘는 무거운 무게의 짐을 조금씩 줄여가는 과정을 거치며 인생에서도 덜어내야 할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지고 산다. 집착이 많을수록 무거운 삶을 산다. 짐의 무게는 그 사람 집착의 무게다. 역시 자전거 타기는 보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여행 그 자체인 것 같다.
언덕길, 외로움, 무거운 짐,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 자전거 여행은 인생과 너무도 비슷해서, 나라는 존재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여행 떠나기를 자신의 소망 중 하나로 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로키 산맥을 넘기 위해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고 믿었다. 그 험준한 산에 오르는 순간 절정의 감격 같은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강렬한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목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서 그냥 마음이 편해졌을 뿐이다. 그런데 그 뒤부터 페달을 밟는 게 즐거워졌다. 페달을 밟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과정이 됐다. - 본문 중
삶의 방식, 자전거 타기
10킬로그램 나가는 내 애마 잔차는 7배가 넘는 무게의 주인을 태우고 잘도 달린다. 가끔 자가용을 혼자 타고 운전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상념이 떠오른다. 몸무게가 70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한 사람을 나르기 위해 300마력을 내는 2000킬로그램의 큰 괴물을 움직이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가! 내가 사는 도시 서울은 출퇴근때 이런 나홀로 운전자가 70%를 넘는 곳이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삶의 방식이다. 퀘이커라는 저자의 자전거 동지는 자전거 타기는 소비적인 사회와 전쟁으로부터 해방됨을 뜻하며 석유와 비만을 해결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자전거타기가 정착된 사회는 속도와 경쟁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다. 그것은 사치스럽고 빨리 돌아가는 사회에 대한 대안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 자전거 타기는 위협적이고 선동적인 행위라고 하는 책 속의 글이 외침처럼 강렬하게 다가온다.
운전과 비행에 익숙한 미국인들이 자전거 페달을 밟는 순간,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 석유 소비량을 한꺼번에 25퍼센트만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이 공감이 간다. 나도 소비적인 사회와 전쟁으로부터 해방됨을 뜻한다. 속도와 경쟁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사회를 원하는가? 그럼 자전거를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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