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레가 광자총을 굳게 잡고 위협했지만 쉬림은 물러서지 않았다.
-어디 쏠 테면 쏴 보십시오. 이런 부당한 행위에는 따르지 않습니다.
-저리가!
일레는 뒷걸음치며 광자총을 겨누었고 쉬림은 성큼성큼 다가서며 광자총의 총구를 꽉 잡았다. 순간 엄청난 빛이 쉬림의 몸을 꿰뚫으면서 그의 몸을 조각내었고 뒤에 위치한 조정실의 기기들을 파괴했다. 굉음과 함께 탐사선의 선내에 비상경보음이 울렸다.
-이런 멍청이!
일레는 당황한 나머지 미처 광자총의 강도가 최고로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채 엉겁결에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광자총의 강도를 최저로 맞추면 상대를 기절 시키는 정도로도 끝낼 수 있었고, 총구를 잡은 쉬림도 일레가 정말 누군가를 쏴 죽일 생각은 없다는 판단 하에 과감히 나선 것이 목숨을 잃는 상황으로까지 간 것이었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라 광자총이 파괴한 기기로 인해 탐사선의 안위까지도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아누는 정신없이 망가진 기기를 돌아보며 미친 듯이 승무원들을 호출했고 짐리림 일행은 당황해 하며 황급히 조정실에서 빠져나갔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구데아와 에아가 승무원들과 달려왔을 때 조정실의 상황은 크게 악화되어 있었고 일부는 불꽃까지 내고 있었다.
-가이다의 중력에 끌려가고 있다.
구데아는 조각난 쉬림의 시체와 파괴된 조정실을 보며 어찌된 영문인가를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당장은 그런 것을 따질 경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높은 각도로 끌려가다가는 가이다의 대기와 마찰을 일으켜 탐사선이 타 버립니다.
-각도를 낮춰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계기판이 모두 엉망이 되어 버렸네.
-제가 해 보겠습니다.
또 다른 항해사인 벨릴이 나서 조정간을 잡고 조금씩 가까워 오는 푸른 가이다를 바라보았다. 벨릴은 온 정신을 집중해 탐사선의 진입각을 조정했다.
-각도가 너무 낮으면 가이다의 대기로부터 튕겨져 나가네.
긴장한 구데아가 이미 벨릴이 알고 있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벨릴은 오직 감에만 의존한 채 조정간을 조금씩 조정해 나갔다.
-모두 자리를 잡고 앉으십시오. 곧 가이다의 대기권에 진입합니다.
벨릴은 차분하게 지시했고 승무원들은 모두 그의 말에 따라 자리를 잡고 앉으며 속으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기억을 되새겼다. 승무원 중 누군가가 모두의 머릿속에 울리는 상념을 주지시켰다.
‘내 고향 하쉬, 붉은 거포아(하쉬행성의 태양)와 갈색의 오하길(하쉬행성의 가까이에 있는 혹성)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곳. 그곳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이여 안녕,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안녕. 생명의 행성 가이다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늦기 전에 도착하기를......’
아누는 그런 상념을 내어 뱉는 자가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가이다의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마찰로 인해 탐사선의 주위가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하자 이를 잊고 말았다.
-우욱!
여기저기서 가벼운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탐사선은 외부에 압력이 가해지면 내부에서는 완화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급작스럽게 가해지는 압력은 승무원들에게 다소간의 고통을 줄 수밖에 없었다.
-가이다의 지표면에 곧 착륙합니다! 뭐든지 꼭 잡으세요!
벨릴이 비명과도 같이 소리를 질렀고 탐사선은 굉음을 내며 착륙했다. 탐사선 안은 나동그라지는 승무원들과 뒹구는 물건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들 괜찮습니까?
탐사선이 멈춘 후, 벨릴은 풀썩 튕기며 위로 거세게 부딪히는 바람에 머리에서 노란 피를 흘리며 승무원들을 뒤돌아보았다. 아누가 가이다의 중력에 적응이 안 된 두 다리로 뒤뚱거리며 일어나 소리쳤다.
-어서 짐리림을 잡아오게. 그 때문에 이 일이 벌어지게 된 거야. 어서!
승무원들이 역시 뒤뚱거리며 조정실에서 나간 뒤 아누는 창 밖의 광경을 보고서는 경이로움에 온 몸이 잠시 굳어버렸다.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 가이다여.
아누의 눈에 온통 초록색의 생명으로 뒤덮인 가이다의 장엄한 풍경이 들어왔다.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