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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빠져나가야 된다. 생명키트를 챙겨!
등에 비상식량과 약품, 전등 따위가 꾸려진 배낭을 짊어진 짐리림과 에질, 일레는 가이다의 대기나 중력에 자신들의 신체가 얼마나 적응하는지를 챙길 여유도 없었다.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짓을 저질렀다는 당혹감이 그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었다.
-우욱!
탐사선의 주 출입구에 해당하는 해치를 열자마자 짐리림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목 부위를 움켜잡고서는 잠시 숨을 헐떡였다. 가이다의 대기가 아직 그들의 신체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었지만 그리 심각한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금방 정신을 차린 그들은 무작정 앞을 향해 한참을 전진해 갔다.
-저거 뭐야?
느린 걸음으로 탐사선을 등지고 무작정 풀숲을 헤치고 가던 짐리림의 일행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얼어붙고 말았다.
그곳에는 드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고 온갖 낯선 생명체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에질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차라리 이제라도 탐사선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습니다.
-탐사선으로 돌아가도 우리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아누가 날 얼마나 싫어해 왔나? 그런데 이런 일까지 벌이게 되었으니……. 저 생명체들이 꼭 해를 끼친다고 생각 말고 용기를 내서 접근해 보자.
짐리림은 크게 숨을 몰아쉬고 낯선 생명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섰다.
-조심하십시오.
뒤에서 일레가 광자총을 들고 바짝 붙어 섰다. 에질도 늦을 세라 허겁지겁 뒤에서 그들을 쫓아갔다.
-지금은 이런 눈에 안 보이는 생명체들보다는 눈에 안 보이는 생명체들이 자신의 몸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더 두려워해야할걸.
짐리림은 사실 이 알 수 없는 생명계에서 뜻하지 않게 미생물에 감염되는 것이 두려웠지만 그간의 연구결과로 볼 때 당장은 그럴 가능성이 적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한 순간 한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급선무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가이다의 생태계를 파악하고 그에 적응하는 것이 필요했다.
-내 예상이 맞았어. 이 생명체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아.
짐리림은 거대한 뿔이 양쪽으로 난 생명체에 가까이 다가가 중얼거렸다. 일레는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광자총을 겨눈 채 가까이 다가서지 않았다.
-이 생물은 식량으로도 쓸 수 있겠는데.
짐리림의 말에 에질은 몹시 역겨워해 하며 진절머리를 냈다.
-저걸 먹는단 말입니까?
그 말에 짐리림은 에질에게 불쑥 다가갔고 에질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생명키트에 있는 식량으로는 겨우 60회 정도 보급이 가능하다. 그 이후에는 어쩌겠나? 탐사선으로 순순히 돌아가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는 상태로 있고 싶은 건가?
-그래도 이건……
짐리림은 에질을 거세게 잡았다.
-이봐! 지금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데가 아니야! 불평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탐사선으로 돌아가!
짐리림이 에질을 다그치는 동안 뿔 달린 동물들이 모두들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일레는 조금 긴장을 풀고서 겨누던 광자총을 약간 밑으로 내려놓으며 짐리림과 에질에게 다가서려 하다가 크게 겁에 질려 다시 광자총을 들었다.
-뭐야?
총구가 자신들에게로 향하자 놀란 짐리림과 에질이 겁에 질린 일레의 시선을 쫓아 등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거대한 송곳니를 지난 커다란 생명체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저, 저건 분명히 포식 생명체가 맞겠죠?
-가만히 있어봐.
짐리림은 뿔 달린 생명체에게 했던 것처럼 서서히 앞으로 다가섰다. 거대한 송곳니는 짐리림의 행동에 잠시 우뚝 멈춰 섰다가 배를 땅에 깔고서는 앉았다. 더욱 대담해진 짐리림은 더욱 가까이 다가갔지만 커다란 송곳니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것 봐 우리를 먹이로 생각하는 게 아니야.
짐리림이 등을 돌리고 에질과 일레에게 말하는 순간, 거대한 송곳니는 땅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 힘차게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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