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을 경계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낮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가운데 월드컵이 개막했다. 13일에는 마침내 한국의 첫경기인 토고와의 시합도 펼쳐졌다.
토고와의 경기가 예정됐던 13일 전후, 야간자기주도학습(이하 야자)을 실시하는 거의 모든 대한민국의 고등학교는 이를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물론 일찌감치 '어떤 결정'을 낸 학교는 당연히 그 결정을 따랐을 것이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우리나라의 첫 경기를 집에서 볼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이날 하루만이라도 야자를 없애달라고 학교(담임)에 부탁했다.
학교측은 고민에 빠졌다. 학생들의 인간다운 삶과 건강권의 보장을 위해 0교시와 강제 야자를 없애라는 간절한 외침은 귓등으로도 들은 척 하지 않던 바로 그 학교가 말이다. 월드컵의 위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얼마 간의 고민 끝에 학교들이 내놓은 대답은 ▲한국의 경기가 있는 날은 야자 없음 ▲한국의 첫 경기날에만 야자 없음(나머지는 야자 실시) ▲월드컵과 상관없이 야자 강행 등으로 정리된다.
'강제야자'는 불법인데...
야자를 안 하게 된 학생들은 쾌재 속에 '대~한 민국'을 외치며 응원도구를 챙겨 집과 응원장으로 향했다.
교실에 남아 야자를 해야 하는 아이들은 공부보다는 구시렁거리는 데 더 마음을 모았다. 선심쓰듯 '야자없음'을 결정한 학교들의 인기는 순식간에 천국보다 높이 올랐고, 평상심(?)을 유지한 학교는 지옥보다 무서운 아이들의 원망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야자를 하고 안 하고의 차원을 넘어서 생각해 봐야할 것이 있다. 학교들이 마치 배려처럼 야자를 일시적으로 중단했지만, '강제 야자'는 애시당초 불법이다.
경기도의 경우 '2003년 경기도교육청과 교원노조간 단체교섭'을 통해 '강제 보충 및 자율학습은 어떠한 경우에도 금지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교육부에서도 2004년 교원노조와의 단체교섭에서 이와 동일한 내용을 합의해 일선 학교에 공문으로 여러 차례 시행 지침을 내려보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작 일선 학교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여전히 자율을 가장하고 학생들의 동의를 위장하여 '강제 야자'를 시행해왔다. 그러다 월드컵이라는 행사 앞에서 마치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척 슬쩍 '꼼수'를 부린 것이다.
'불법 강제 야자'가 아니었다면 아이들이 학교에 이런 부탁을 하는 일도, 학교측이 이를 두고 고민에 빠져 '꼼수'를 쓰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월드컵 기간 중 '강제야자' 중단, 야자의 정당화?
학교의 이런 의도를 알 리 없는 아이들은 하루만이라도 야자의 굴레에서 벗어나 월드컵 경기까지 보게 해 준 학교에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다. 지금껏 학교가 '강제 야자'라는 불법 행위를 자행해 온 것은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결국 학교는 '강제 야자'는 당연한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학생들에게 심어준다.
아이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불법 강제 야자'에 대한 비판력이 흐려지고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내면화하여 학교에 '복종'하게 된다. 무서운 세뇌교육의 힘 앞에서 아이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소리에는 귀를 막고 평상심(?)으로 꿋꿋하게 '야자'를 강행한 학교들의 굳은 의지는 혀를 내둘러도 모자랄 지경인 것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이중으로 권리를 박탈당한 아이들의 하소연만이 애처로울 뿐이다.
학생들의 의사를 왜곡하는 강제 규정과 얄팍한 속임수로 그들의 인권을 침해하며 불법적인 것마저도 정당화·내면화하도록 만드는 학교 교육이 이르고자 하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학교의 인권 현실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숨이 가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