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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3년 전남지방경찰청과 완도경찰서가 완도군의회에 통보한 회신문. 이 문서에서 경찰은 나주경찰부대가 인민군 위장전술을 수행했다고 확인했다. 이 문서는 지난 2003년 처음 공개됐다.
지난 93년 전남지방경찰청과 완도경찰서가 완도군의회에 통보한 회신문. 이 문서에서 경찰은 나주경찰부대가 인민군 위장전술을 수행했다고 확인했다. 이 문서는 지난 2003년 처음 공개됐다. ⓒ 안현주
그 동안, 한국전쟁 당시인 50년 7월 전남 해남군, 완도군과 진도군 일대에서 경찰로 구성된 소위 '나주경찰부대'가 북한 인민군의 공격에 밀려 후퇴하면서 인민군으로 위장해 민간인 수백명을 학살했다는 증언과 주장이 있어왔다.

22일 경찰청 과거사위가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함에 따라 나주경찰부대 사건의 실체가 어느 정도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나주시의회, 완도군의회 등을 중심으로 진상규명 요구가 제기돼왔다.

이와 관련 전남지방경찰청과 완도경찰서는 지난 93년 9월 10일 당시 완도군의회 유귀석 의장에게 보낸 공문에서 나주부대의 실체와 함께 인민군으로 위장해 민간인을 총살한 사실을 공식 문서로 통보한 바 있다. 93년 8월 당시 유족들과 완도군의회가 제출한 진정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 통보였다.

경찰청은 이 문서를 통해 "50년 7월 하순경 무방비 상태에 있는 호남지역을 (인민군이) 물밀 듯이 점령하면서 남하하였으며 나주경찰서 부대 역시 해남 남창리까지 밀려 내려왔다"면서 "이때 남창에 도착한 나주부대가 완도경찰서로 전화를 한 사실이 있는데, 나주경찰부대가 전시 위장전술로 '우리는 인민군이며 완도로 간다'고 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나주부대가 완도에 도착했을 때 인민군을 환영하는 인파가 완도중학교에 몰려들었고 한 여인이 인민군 만세를 불러 현장에서 총살했다"며 "이때 4명∼5명을 검거 사살했다는 말이 있으나 보다 상세히 진술할 만한 참고인이 없어 내용은 입증하기 지난하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 10월 당시 완도군 유족회 구성을 추진하고 있는 김보희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나주부대는 해남을 시작으로 완도와 진도 등지에서 인민군으로 위장해 인민군을 환영하는 사람들을 사살해 바다에 수장시켰다는 증언들이 있다"면서 "당시 주민들은 인민군이 오면 인민군을, 국군이 오면 국군을 환영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경찰의 위장전술로 학살된 분들이 1000여명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편 지난 2004년 11월 출범한 경찰청 과거사위는 10대 조사 과제 중 하나로 나주부대 사건을 결정하고 조사를 진행해 왔다. 경찰청 과거사위는 22일 조사 결과 발표에 앞서 21일 전남 해남읍 해리 소재 우물터와 전남 완도읍 중앙리 소재 구 완도 중학교 (현 게이트볼장) 등 현장을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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