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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문짝으로 만든 오잇대. 만든 이의 재치가 엿보인다.
헌 문짝으로 만든 오잇대. 만든 이의 재치가 엿보인다. ⓒ 정판수
버팀대는 보통 그 고장에 나는 걸 이용한다. 일반적으로 대나무를 많이 쓰지만 그게 없으면 생나무가지를 잘라 쓰기도 하고, 헌집 부수고 새집 지을 때 나온 문짝도 좋은 재료가 된다. 이마저 없으면 돈을 주고 산 쇠버팀대를 이용하지만.

현수교 모양의 오잇대. 곧 늘어진 줄을 타고 오이가 주렁주렁 매달릴 테지.
현수교 모양의 오잇대. 곧 늘어진 줄을 타고 오이가 주렁주렁 매달릴 테지. ⓒ 정판수
그런데 그 모양이 가지각색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농투사니들의 투박한 마음이 담겨 있다. 농민들은 부러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갖다 쓸 뿐이다. 기교를 부리지도 않는다. 되는 대로 갖다 꽂는다. 그러면 저절로 채소가 어울리는 하나의 작품이 된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구치게 만든 오잇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구치게 만든 오잇대. ⓒ 정판수
조선시대 산수화와 인물화는 양반 귀족의 그림이었지만, 풍속화와 민화는 서민의 그림이었다. 거기에는 바로 민초들의 삶이 담겨 있었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어떤 의도 없이 만들어 세운 버팀대가 그들의 삶과 일치된 또 하나의 예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굵은 대나무를 이용한 고춧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형태.
굵은 대나무를 이용한 고춧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형태. ⓒ 정판수
그리고 그것들의 가장 큰 의의는 하나하나 닮았으면서도 똑같지 않은 데 있다. 고춧대만 보더라도 그렇다. 대나무 하나하나가 고추를 지탱하는 것도 있고, 굵은 대나무를 이랑 양쪽에 박은 뒤 가느다란 시누대를 사이사이 넣은 것도 있다.

또한 고추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대나무를 사람 '人'자 모양으로 얽어놓은 것도 있고, 그 모양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세운 것도 있다.

양쪽에 굵은 대나무를 세우고 사이사이 시누대와 줄로 이어놓은 고춧대.
양쪽에 굵은 대나무를 세우고 사이사이 시누대와 줄로 이어놓은 고춧대. ⓒ 정판수
오잇대도 마찬가지다. 대나무를 가지째 꺾어와 그대로 땅에 꽂아놓은 것도 있고, 고춧대처럼 두 줄로 사람 '人'자 형태로 하늘로 받들게 한 것도 있고, 솥발 모양으로 안정감 있게 세 개를 박아놓은 것도 있다. 뿐인가, 현수교 모양으로 줄을 길게 늘어뜨려 매달아놓은 듯한 것도 있다.

잠시 본 것만 해도 이런데 세세히 둘러보면 얼마나 다양할 것인가.

사람 人자 모양의 고춧대. 세운 모습 하나하나가 조금씩 다 다르다.
사람 人자 모양의 고춧대. 세운 모습 하나하나가 조금씩 다 다르다. ⓒ 정판수
그리고 고추를 버텨주는 대나무의 모습이 여러 가지를 연상케 한다. 어찌 보면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 깃대를 들고 입장하는 선수단의 모습 같기도 하고, 부대 사열 중에 군인들이 높이 쳐든 총검으로 보이기도 하다.

상점에서 파는 쇠버팀대를 이용한 고춧대. 창검을 연상케 한다.
상점에서 파는 쇠버팀대를 이용한 고춧대. 창검을 연상케 한다. ⓒ 정판수
그러나 역시 대나무가 곧추 선 모습은 동학혁명 때 농투사니들의 유일한 무기였던 대창으로 보는 게 그 의미를 살린다. 고추의 매운 맛이 탐관오리의 폭정에 맞선 농투사니들의 매운 맛과 통하고, 꼿꼿이 선 대는 백산에서 봉기한 농민군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마대. '마'는 산우(山芋)·서여(薯囊)라고 하는 약초.
마대. '마'는 산우(山芋)·서여(薯囊)라고 하는 약초. ⓒ 정판수
이제 웬만한 바람이 불어도,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도 버팀대로 하여 고추, 오이, 가지, 토마토, 마는 큰 흔들림 없이 잘 자라 줄 것이다. 그래야만 달내마을 어른들의 얼굴이나마 조금이나마 웃음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덧붙이는 글 |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에서 달 ‘月’과 내 ‘川’의 한자음을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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