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전세계의 관심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임박설이었다. "미사일에 연료 주입을 끝냈다" "최소한 미국의 알래스카까지 타격이 가능하다" "미국이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미사일방어체제(MD)의 가동에 들어갔다"는 등의 보도가 한국과 일본, 미국 언론에서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일부 한국언론은 "18일 오후 4~5시께 미사일 발사할 듯"이라고 시간까지 확정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 사실상 오보였다. 한국정부의 입장은 북한이 준비 중인 발사체가 미사일인지 아니면 인공위성 발사용 로켓인지도 아직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북한사회는 아주 폐쇄적이고 접근이 힘들다. 미사일 관련 보도는 사안의 성격상 거의 전적으로 익명으로 등장하는 정부소식통이나 군 관계자들의 입을 빌려야 한다. 북한정부와 접촉해 확인할 수도 없다. 이런 어려움이 있지만 이번 미사일 발사 임박설을 둘러싼 전세계 언론들의 태도는 지난해 5월 역시 세계를 놀라게 했던 북한 핵실험 임박설과 똑같았다.
지난해 북한 핵실험 임박설을 복기해보자. 2005년 4월 22일 미 <월스트리트저널>이 북한 지하 핵실험 준비설을 보도했고, <뉴욕타임스>는 5월 6일 북한 함경북도 길주의 터널공사가 1998년 파키스탄 핵실험 터널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비슷한 보도가
, 한국의 <조선일보>, 일본 언론 등에서 쏟아져 나왔다. 팻 로버츠 미 상원 정보위원장은 5월 8일 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존 맥롤린 미 중앙정보국(CIA) 전 국장대리는 이날 "북한이 핵무기 실험을 한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라며 "북한이 다음 단계로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한다면 더욱 놀라운 발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핵실험 임박설과 닮은 꼴
곧 전쟁이라도 터질 듯한 분위기였고 '6월 위기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그해 5월 14일 북한이 남북 당국자 회담을 제의하자 '위기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지난해 9월 19일 6자회담 공동성명이 나왔다.
이번 미사일 임박설이나 지난해 핵실험 임박설이나 언론들의 보도행태는 비슷하다. '맞거나 말거나 일단 쓰고 보자', '보도가 맞으면 좋고 안 맞으면 할 수 없다', '가능성'을 마치 '현실성'인 양 보도하는 식도 마찬가지다.
언론들의 북한관련 보도는 마치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들춰내는 기사 같다. 끊임없이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시킴으로써 생존력을 확보하는 그런 기사 말이다.
지난 2003년 이라크전쟁 전 부시행정부가 대량살상무기 위험을 과장했고 이를 그대로 받아썼던 언론 가운데 <뉴욕타임스> 등은 나중에 반성했다. 그런데 북한관련 보도에서는 이런 모습도 없다.
이런 언론들의 보도윤리를 떠나 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전세계 언론들의 북한 미사일에 대한 일방적 추정보도가 오히려 김정일정권의 의도에 말려드는 듯한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19일 일본에 있는 조·미평화센터의 김명철 박사는 KBS 제1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는 조총련계 2세로 김정일 위원장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심리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북한)의 핵무기도 그런 것입니다. 핵무기가 있다, 없다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이 있다고 보는 것이 기본입니다… 우리나라에 핵무기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핵무기, 조선민주인민공화국에 핵무기가 있다고 미국이 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의 발언의 요지는 간단하다. 북한에게 실제로 핵무기나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그렇게 믿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래야 북한의 협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김명철 박사가 북한정부를 공식 대변하는 인물을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의도는 충분하게 표현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설이 한창일 때 거의 공식적 언급을 하지 않음으로써 세계 언론들의 '상상력'을 한층 더 자극했다.
"북미 직접 협상하라" 압력 커져
부시행정부는 이라크와 이란 핵 문제에 집중하면서 북핵문제는 방치해놓은 상태였다. 북한이 계속 요구하는 북미 직접대화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미사일 발사 임박설이 홍수처럼 쏟아지면서 북핵 문제에 관심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압력을 받게됐다. 당장 미 공화당 내부에서도 북미 직접 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리처드 루가(공화)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25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이 미국을 사정권에 뒀다면 "북미 양자간 문제"라며 부시행정부에 북미 양자간 미사일 협상을 벌일 것을 촉구했다. 존 워너(공화) 상원 군사위원장, 상원 외교위 소속인 척 헤이글 의원(공화)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물론 가장 화끈한 해결책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일 것이다. 지난 22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했던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대포동 미사일 발사대를 선제 공격해도 미국과 갈등을 빚으면서 남북관계를 개선시켜왔던 남한을 북한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전혀 가능성 없는 주장이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태평양 건너에 있는 미국 또는 동해 바다 건너의 주일미군을 공격하는 것보다 휴전선에서 불과 수십㎞ 남쪽에 있는 주한미군을 공격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있다고 하자. 북한이 한번은 미국 본토로 미사일을 쏴 기분은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무차별 보복 공격을 받아 초토화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북한이 이 정도 예상도 못할 집단으로 규정하는 데는 북한 위협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들마저 이런 위협론에 편승하는 것은 오히려 북한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으로 귀착되고 있다.
흥미로운 게임이다. 비이성적인 이미지를 이성적으로 계산하는 북한과 냉철한 언론보도를 자임하는 언론들의 비이성적인 보도가 엇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