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이 36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기부했다. 그것도 그 많은 돈의 대부분을 자식뻘 되는 친구인 빌 게이츠 재단에 쾌척했다. 이유는 "빌 게이츠가 믿음이 가고 그가 잘 할 것 같아서"란다.
이 소식을 접하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그가 참으로 크게 깨우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잘 사는 길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에게 자식이 셋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재산을 상속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길을 택하지도 않고 아무 조건 없이 그 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것이다.
"부가 왕조적으로 세습 되어선 안 된다"
그는 "내 자식들이 내가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물려받을 수는 없다"며 "부가 왕조적으로 세습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현인이 아니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말이다. 그의 자식들도 이런 아버지의 뜻을 일찍부터 이해했는지 그들도 이미 자신들의 자선재단을 각기 운영하고 있다.
흔히들 '이 세상에 쓰고 간 만큼이 자기 돈'이라고 하는데 그런 관점에서도 워렌 버핏은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이고, 돈쓰기의 모범을 보인 사람이다. 미국이 밉다가도 진정으로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기부문화의 전통에 있다.
미국 기부문화의 정점에는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있다. 카네기는 65세가 되던 1900년 "부자인 채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던 자신의 철강회사를 5억 달러에 처분한다.
당시의 일본 정부 예산이 1억 3천만 달러였다고 하니 그 돈이 얼마나 큰 돈이었는지는 쉽게 짐작 가는 일이다. 그는 "부자의 인생은 두 시기로 나누어야 한다. 전반부는 부를 획득하는 시기이고, 후반부는 부를 분배하는 시기여야 한다"며 그때부터 돈 벌기를 중지하고 돈쓰기에 나서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미국 전역에 수많은 도서관을 건립하였으며 선행기금을 창설하고 교육진흥기금과 장학기금 등에 기부하였다.
그리고는 84세 되던 해에 "돈은 벌기보다 쓰기가 어렵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빈손으로 고향 스코틀랜드에 돌아가 묻혔다. 카네기의 기부는 어릴 적 입은 작은 은혜에 대한 보답이었다.
피츠버그에서의 소년 시절 카네기는 한 사설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카네기는 거부가 되고서도 그 도서관의 따뜻한 배려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 고마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카네기를 위대한 기부자로 만든 계기가 된 것이다.
악명 높은 기업인 카네기가 세상의 존경을 받는 이유
한때 사회의 지탄을 받는 악명 높은 기업인이었던 카네기가 지금은 세상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인물이 되었다. 미국에는 카네기를 시발점으로 해서 록펠러, 포드 같은 기업인들이 기부를 통해 부의 사회 환원을 지속적으로 행해오고 있으며 그 정신은 오늘날에도 빌 게이츠나 테드 터너 등에 의해 면면히 계승되어오고 있다.
이러한 전통이 부자를 존경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워렌 버핏은 그 명예로운 기부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아름다운 전통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기부 현실은 어떤가. 우리에게도 고액기부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도 1조원을 기부한 재벌이 있었고, 또 다른 재벌은 8000억 원을 내놓은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기부 행위가 그 기업들이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직후거나 총수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구속되는 마당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그 사건들이라는 것이 다 재산의 불법상속과 관련된 일이라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의혹의 눈길을 보내게 한다. 세금으로 납부했어야 될 돈을 면죄부의 대가로 기부했다는 비판도 있다. 반대 급부를 바라는 기부는 기부가 아니다.
반대급부를 바라는 우리나라 부자들
이제 우리의 부자들도 다 같이 잘 사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빌 게이츠는 "부자들은 사회에 특별한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우리의 재벌들도 세계의 부호 리스트에 심심치 않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기부자리스트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부자 이웃들은 아직도 나누기보다는 모으기에 급급하고 있다. 나와 내 가족이 잘 살기 위해 모으고 더 많은 재산을 세습하기 위해 모은다. 부는 축복일 수도 있지만 저주일수도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부의 세습 과정에 가정의 화목이 깨어지는 경우를 흔히 본다. 부모가 남겨놓은 재산 때문에 자식 간에 의가 상하거나 심지어는 소송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로 있으며 부모가 남긴 재산으로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본다.
남겨놓은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툼의 강도는 더욱 커진다.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세습한 셈이다. 우리의 부자들이 부를 세습하기 위해 애쓰는 이 순간에도 월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이들은 미국 정부의 상속세 폐지 움직임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상속세 폐지는 혐오스러운 시도"라며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균등을 보장하고 부유층에 특혜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속세는 존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부자들과 선진국의 부자들은 왜 이렇게 생각이 다를까. 그 이유는 부를 행복으로 바꾸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부를 행복의 원천으로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나눔의 실천이다. 개인의 행복 차원에서도 나눔을 생각할 때이지만 사회 전체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도 이제 나눔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기부는 분배가 고르지 못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춰 우리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부에는 할머니들만 있다
우리나라 기부에는 할머니들만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김밥할머니, 떡장수할머니, 삯바느질 할머니들만이 기부를, 그것도 평생을 힘들게 모은 재산을 기부해서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것이 연중행사처럼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이런 훌륭한 할머니들께만 기부를 맡겨놓을 것인가. 이만큼 경제적으로 성장한 나라의 일원인 우리가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을 할머니들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대부분 생애를 조금 더 갖기 위해 노력하는데 소비한다. 조금을 이루면 좀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조금 더 조금 더 하다 결국은 다 이루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그것도 기껏해야 내 자신과 가족이 잘 살기 위해 하는 노력이다.
이제 눈을 조금 크게 뜨고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크게 이룬 사람일수록 사회에 대한 채무는 크다. 그런 점에서 워렌 버핏의 기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언제쯤 그런 현인을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