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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참여연대 동구주민회 김영숙 사무국장. 다양한 이력만큼이나 시민운동, 주민운동에 대한 그의 고민은 깊고 풍부하다.
ⓒ 허미옥
"동구주민회가 사무공간을 만들고 집기 등을 마련할 때였어요. 저는 예전처럼 '예산이 얼마나 들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소식을 들은 회원들이 책상·소파·책장 등등을 하나둘씩 가져온 거예요. 결국 사무실 공간 꾸미는 데 예산이 거의 안 들었어요.

어떤 일을 할 때 사업비 확보나 담당자 배치를 고민하는 대부분의 시민단체 방식과는 다른 거죠. 이전 시민단체에서의 경험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에요."


7년 동안 대구 참여연대에서 활동했었다는, 소위 '베테랑 시민운동가'인 김영숙(39, 현 대구참여연대 동구주민회 사무국장)씨는 이렇게 입을 뗐다. 그는 소위 공중전이라고 할 수 있는 권력감시운동과 주민밀착형 운동이 어떻게 다른지, 주민 속으로 한발짝 다가서면서 새삼 느꼈던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사회과학서점을 거쳐 줄곧 시민단체에서 일하던 김영숙씨는 2005년 의외의 결정을 내렸다. 7년 동안 활동하던 시민단체 상근자 생활을 접고 주민 운동을 위해 대구의 한 동네로 풍덩 뛰어든 것. 그리고 대구참여연대 동구주민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이런 변신은 다소 이례적이다. 대부분 시민운동 경력 7·8년차가 되면 부장, 또는 국·처장이 되고 조직표 위쪽에 이름을 올리기 때문이다.

물론 김영숙씨에게도 '사무국장'이라는 직함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사무실을 혼자 지켜야 하는, 그야말로 인센티브 없는 국장이다. 사무실 청소, 홍보자료 배포, 우편물 발송부터 담당 공무원·지역 국회의원 등을 만나는 것까지 동네에 관련된 일은 모두 그녀 몫.

김영숙 사무국장에게 새로운 운동을 맛보게 한 대구참여연대 동구주민회는 대구 동구에 거주하는 대구참여연대 회원들의 모임이다. 2005년 활동을 시작한 새내기 주민 운동 단체지만, 법률학교·부모 성교육 등 실속 있는 프로그램으로 출범 1년 반 만에 주목을 받고 있다.

주민 운동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있는 김영숙씨를 지난 6월 30일 만났다.

하수구 공사, 쓰레기 수거... 모든 게 사회 이슈

- 줄곧 해오던 사회단체 일을 접고 동구주민회 활동을 하기로 결정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98년에 대구참여연대가 창립됐는데 4년 정도 활동하다 보니 지역주민들과 좀더 가까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구·북구·수성구 등 3개 지역에서 지역모임을 꾸리게 됐는데 동구는 회원의 열의도 남달랐고, 공항 소음 등 지역문제도 많아서 의기투합이 잘 됐다. 2년 정도 준비하다가 2005년 동구주민회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기계적으로 일하는 게 힘들었다. 회원들 의견도 들으면서 소통하고 싶은데 참여연대는 그럴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회원 중심이 아니라 상근자들이 열심히 움직여서 대구시를 상대로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회원들이 사무실에 찾아와도 컴퓨터 앞을 떠날 수 없었고 눈 마주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것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결국, 태어나서 줄곧 동구에서 살아왔고 동구 모임을 계속 꾸려왔던 내가 동구주민회를 맡게 됐다."

▲ 동네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녀, 세상을 보는 눈, 생활패턴뿐만 아니라 외모도 많이 변했다. 치렁치렁 검은색 긴 생머리, 어느새 짦은 퍼머에 적갈색 브릿지까지..그녀의 즐거운 ‘삶’은 지속되고 있다.
ⓒ 허미옥
- 동네 활동가가 되고 나니 어떤가?
"일단은 모든 생활 근거지가 동네로 변했다. 대구장애인연맹과 함께 사무실을 쓰고 있는데 점심을 직접 해먹는다. 야채는 일주일 전에 생협에 주문하고 당일 찬거리는 근처 시장을 이용한다. 식사 담당은 장애인연맹에서 활동하는 휠체어 장애인이 맡고 있다. 올해부터는 회원들과 함께 주말농장 활동도 시작했는데 최근 배추 세 포기를 수확해 김치도 담가 먹었다.

이 머리 어떤가? 회원이 운영하는 동네미용실에서 한 거다. 그동안 긴 생머리를 질끈 묶고 다녔더니 미용실 언니가 '마음대로 작품 만들어도 됩니까?'라면서 3시간만에 이렇게 바꿔놓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대구 동구에서 살아왔지만 동네는 늘 스쳐가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곳을 바라보는 내 시각이 많이 변했다.

얼마 전 동네 하수구 공사를 한다면서 인도 블록을 파헤쳤다. 원래는 유모차나 휠체어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턱이 낮은 곳이었는데 공사가 끝난 다음에는 턱이 훨씬 더 높아져 있었다. 이제 이런 게 보이기 시작하는 거다. 또 동구는 쓰레기 수거를 민간에 위탁하고 있는데 구청에서 할 때보다 수거도 제대로 안 되고 주민들의 분리수거도 부실해 보인다. 이런 모든 일들을 메모해 두고 언젠가는 지역 사회 이슈로 만들겠다고 고민하고 있다."

- 주민들과 사업하면 재미난 일이 많을 것 같다. 주민회 활동에 대해 주민들은 어떻게 보나?
"늘 새롭다. 얼마 전에 법률학교가 열렸을 때 일이다. 월요일에 학교가 시작되는데 토요일까지도 신청한 주민이 달랑 3명뿐이었다.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토요일 저녁에 다시 한 번 홍보물을 돌리기는 했지만 효과에 대한 기대는 반반이었다. 그런데 일요일 저녁부터 사무실 전화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월요일 오전까지 전화 문의가 이어지더니 그날 오후 첫 강의시간에는 38명의 수강생이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서프라이즈! 주민들에게 한 수 배우다

▲ 동구 주민회에서 2분 만에 준비된 안주다. 각종 야채는 생협에서 주문한 것이고, 김치는 얼마 전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배추로 담근 것이다. 술과 함께 슈퍼에서 안주로 딸려왔던 과자는 이날 찬밥신세였다.
ⓒ 허미옥
-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웃음). 그냥 있는 그대로 즐기기로 했다. '행복하다'는 말로 압축할 수 있지 않을까.

비슷한 예는 또 있다. 2005년 어느 날 우리 사무실 근처의 아파트에 살고있는 한 주부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청소라도 좋으니 여기서 할 일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생소한 제안에 당황해서 어떻게 할지 몰랐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는 주부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대화 상대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던 거다. 우리 사무실에 와서 수다도 떨고 작은 일을 돕기도 하면서 눈에 띄게 밝아졌다.

작년에는 동구주민회 영상교육을 수료했고 현재는 동구지역 놀이터 실태조사에도 열심이다. 매년 1회씩 열리는 '부모 성교육' 홍보 담당자로 나서기도 했는데 프로그램을 알리는 홍보지도 직접 돌리고 동네 주민들과 함께 교육에 참가하기도 했다.

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단체를 '소개'하고 사업이나 교육에 참가하라고 '종용'하지만 그분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다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끔 전화해서 '차 한 잔 하시죠?'라며 불러내거나 안부 전화만 했을 뿐이다. 이 분의 변화를 보면서 회원 100명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것보다 훨씬 더 기뻤다."

- 그래도 힘든 점이 있을 것 같다.
"당연하다. 어딜 가나 중요한 것은 자금이다. 자금이 충분하지 않아 욕심나는 사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는 미혼이라는 내 상황에서 오는 한계다. 동네 활동에서 주로 주부들을 만나는데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육아와 자녀 교육, 남편과의 갈등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내공(?)'이 딸린다. 동구주민회 강옥련 대표가 옆에서 도와주기는 하지만…."

▲ 지난해 진행된 영상제작교육 ‘카메라로 만나는 행복한 세상’
ⓒ 허미옥
- 동구주민회는 이제 1년 된 단체다. 올해가 중요할 것 같은데.
"지난해 가장 큰 교훈은 주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오늘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세상 뒤집히는 일이 아니라면, 당연히 '주민 만나는 일'보다 순서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두번째는 삶의 공간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우리가 직접 움직이면 동네가 바뀐다는 경험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동구지역 내 어린이 소공원 실태 조사 및 개선 작업'을 통해 성과를 내고 싶다.

세 번째는 주민들이 꾸준히 자신을 표현하도록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지난해 '시민영상제작교육'을 진행했고, 올해는 아예 '시민영상뉴스제작단' 양성을 위한 교육을 하고 있다. 주민들이 제작한 작품을 동구인터넷방송이나 동구케이블 등을 통해 방송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마지막으로 주민운동이 유연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거다. 2004년부터 지역 사회 이슈였던 아양교, 보도교 문제가 아직도 답보 상태다. 지난 5.31 지방선거 전에 동구청과 합의한 내용이 있었지만, 그들은 약속을 또 어겼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월 4일 신임 구청장 취임식 행사에 1인 시위자로 나설 예정이다."

맥주와 소주를 모두 비우고, 취재수첩이 30장을 넘기면서 팔뚝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지만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사실 기자는 지난 2001년부터 2002년까지 한 시민단체에서 김영숙 국장과 함께 근무했다.

그때 그녀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시민운동, 회원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갈증, 소통과 공유가 부족한 시민운동의 관행 때문에 많이 고민했다. 4년이 지난 지금, 김영숙 국장은 자신의 가슴 속에 꼭꼭 담아뒀던 고민을 동네 골목골목에서 하나 둘씩 풀어내고 있었다. 그는 그런 자신을 '행복하다'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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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동구 주민회를 소개합니다!

▲ 동구주민회 사무실 개소식에 모인 회원들
대구참여연대 동구주민회(http://happylog.naver.com/dgcham.do)는 대구참여연대 회원으로서 동구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2005년 동구에 사무실을 마련한 주민회는 ▲ 법률학교 ▲ 부모 성교육 ▲ 미디어제작 교육 등의 사업을 진행했다.

2006년 주민회는 훨씬 더 바빠졌다.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 시나리오' 공모사업에 떡하니 붙은 것.

▲ 동구주민이 만드는 지역뉴스(영상교육) ▲ 어린이 소공원 실태조사 및 개선운동 신나는 어린이 공원 만들기 문화사업 ▲ 풀뿌리 주민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주민교육사업 등을 진행하면서 작년에 비해 한 걸음 더 주민들에게 다가갈 예정이다.

이외에도 동네 어린이 도서관 만들기 사업도 조금씩 준비 중이다. 아파트 경로당 2층의 빈 공간에 일단 눈도장을 콱 찍어 두었고, 회원과 동네주민들의 논의도 활성화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 포털 사이트에서 책 쿠폰 기증사업에 또 덜컥 당첨되어, 100여만 원의 책을 구입할 수 있는 행운도 안았다. 1년 반 만에 거둔 작은 성과, 그들이 이룬 변화가 동구뿐만 아니라 대구 사회를 바꾸는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캠페인은 ㈜아모레페시픽, ㈜기린, ㈜쇼비티가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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