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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표.(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표.(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모습을 감췄던 박근혜 전 대표가 다시 등장했다.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하루 앞두고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재림'을 전한 대다수 신문은 그가 격앙돼 있다고 전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당 대표 후보 지원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심각한', '불쾌한',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표는 "전당대회가 이렇게 불공정하게 치러지면 내년 당 대선 후보 경선을 공정하게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격앙된 박근혜, 속내는...

못할 얘기는 아니다. 형식만 놓고 보면 경선 공정성을 걱정하는, 지극히 원칙적인 염려다. 박근혜 전 대표의 '엄정중립' 선언에 배치된다고 비판할 여지는 별로 없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격앙된' 모습을 전한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가 국가보안법·사학법·행정도시법 등에 대한 염려도 밝혔다"고 전했다.

이 '염려'는 특정 후보를 겨냥하고 있다. 바로 이재오 후보다. 국보법은 '붉은 사상'을, 사학법은 리더십 부재를, 행정도시법은 수도권 편향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이 삼중 걸쇠에 딱 걸리는 게 바로 이재오 후보다. 그러니까 박근혜 전 대표는 이재오 후보 당선을 염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특정 후보 당선을 염려한다면 다른 특정 후보에 표를 몰아줘야 한다. 바로 강재섭 후보다. 아니나 다를까 강재섭 후보는 어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이재오 후보와 경쟁하는 게 아니라 이명박 후보와 경쟁하는 기분을 느끼면서 싸워왔다"며 이명박 전 시장의 경선 개입 사례를 거론했다. "6개월 전부터 조직적으로 대리전을 지속해 놓고 이제 와서 대리전은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꼼수"라는 말도 덧붙였다. 대리전은 불가피하고, 박근혜 전 대표의 대리인은 자신이라는 말이다.

지난 이임식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와 이재오 의원.
지난 이임식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와 이재오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흥미로운 건 이명박 전 시장 측의 대응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한 발 내미니까 이명박 전 시장은 한 발 뒤로 물러선다. 당 대표 유세 도중 이재오 후보의 남민전 전력이 문제 되자 "한나라당이 골수보수로 회귀하려 하는가"라고, 대놓고 욕했던 이명박 전 시장이었다.

하지만 요 며칠 새의 모습은 다르다. 본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정두언 의원과 조해진 전 서울시 정무보좌관이 어제 당사를 찾아와 "이명박 전 시장은 누구도 돕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오 후보 본인도 "나는 서민의 대리인일 뿐 누구의 대리인도 아니다"라고 했다.

한쪽에선 한 발 내밀고 대리전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다른 한쪽에선 한 발 물리고 대리전을 부인한다. 배경이 뭔가? 이재오 후보가 우세를 보이고 있다는 증좌다. 그래서 이재오 후보는 역풍을 경계하고, 강재섭 후보는 뒷바람을 기원한다.

한나라당, 유연해져라

결과는 알 수 없다. 한나라당 당 대표 선거는 1인2표제 방식으로 치러진다. 이게 변수다. 당 대표 경선이 대리전 양상으로 흐르는 게 사실이라면 1순위 표에 올인하는 전략을 쓸 것은 불문가지다. 2순위 표는 몰라도 1순위 표에 대한 단속은 치열할 것이다. 이러다 보면 박근혜-이명박, 두 대선주자의 당내 세력규모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경선에 뛰어든 당사자들로선 가슴 졸이게 하는 변수이지만 지켜보는 국민 입장에선 흥미로운 관전거리다. '누가 더 센가'를 가늠해볼 수 좋은 잣대다. '누가 더 센가'를 알면 '누가 치받을까'를 예상할 수도 있다.

어차피 대권 경쟁기간은 1년 시한부로 정해져 있다. 대권 예비경선인 당 대표 경선의 공정성은 이미 무너졌다. 만에 하나, 전당대회 이틀 후 치러지는 원내대표 경선에서마저 특정 대선주자 측이 승리하면 힘은 한쪽으로 급격히 쏠린다. 열세를 보이는 쪽에선 앉아서 당할 수 없다. 치받아야 한다.

치받을 거리는 뭘까? 앞으로 되돌아가자. 박근혜 전 대표는 국보법과 사학법, 행정도시법을 걸었다. 이 대립구도가 지속된다면 한나라당은 사상과 지역 문제로 패 갈림 현상을 보일 수 있다.

이게 문제다.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지상과제는 외연 확대다. 그러려면 유연해져야 한다. '사상 정조대'를 벗어야 하고, 자청한 '위리안치'를 풀어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다른 데도 아니고 같은 당 구성원을 향해 사상과 지역 문제를 제기했다. 이건 족쇄다.

물론 탈출구는 있다. 집안이 복잡할수록 밖에 대고 화풀이 하는 법이다. 이 방법을 택하면 된다. 조건도 썩 괜찮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도마 위에 올랐다. 사학법 재개정 문제는 '개봉박두'를 수없이 예고해 놨다. 이걸로 밀어붙이면 된다.

그럼 행정도시법은? 어차피 당 의견이 조정될 사안이 아니다. 이른바 '대수도권' 논쟁에서도 보지 않았는가. 뒤로 물리는 게 상책이다. 나쁠 건 없다. 내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호재로 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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